UPDATED. 2024-04-24 16:44 (수)
[초점] 통안증권 급증, 이자부담 ‘허우적’
[초점] 통안증권 급증, 이자부담 ‘허우적’
  • 조준상/ 한겨레 경제부
  • 승인 2001.10.1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발행액 본원통화 두배 넘어… 이자 지급 위해 통화 증발·물가상승 악순환 국회의원은 이렇게 물었다.
'통화안정증권(통안증권) 발행액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 이자 지급액이 급증하고 있다.
'이에 한국은행 총재는 답변했다.
'해외부문의 통화증발 압력을 해외부문 자체 안에서 흡수할 수 있도록 외화수급 조절대책을 강화하고 통안증권을 국채로 전환하는 문제를 정부 관련 부처와 협의해 중장기적으로 추진하겠다.
' 지난 9월24일 열린 한은에 대한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도 국회의원들과 한은 총재는 이런 ‘모범적’이고 판에 박힌 문답을 되풀이했다.
발상을 바꾸지 않는 한 앞으로도 이런 소모적인 문답은 지루하게 계속될 것이다.
통안증권은 시중에 지나치게 통화가 많이 풀려 물가상승 압력을 낳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한은이 통화를 환수할 목적으로 발행하는 증권이다.
총통화의 50% 안에서 발행할 수 있으며, 만기는 14일, 28일, 63일, 91일, 182일, 364일, 371일, 392일, 546일, 2년 등으로 다양하다.
올해 8월 말 통안증권 발행잔액은 75조265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말 66조3777억원에서 8개월 만에 거의 9조원 가량 더 늘어난 셈이다.
본원통화량이 31조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통안증권 발행액이 본원통화의 2배를 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연말에는 발행잔액이 80조원을 훨씬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통안증권 발행액은 1997년 12월의 IMF 사태 이후 급증하기 시작했다.
97년 말 23조4709억원이던 것이 98년 말 45조6733억원, 99년 말에는 51조4892억원으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한은이 지급하는 이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97년 2조7254억원에서 98년 4조8412억원, 99년 3조7992억원, 지난해에는 4조6657억원이 이자로 지급됐다.
올해는 8월 말까지만도 3조2725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3조206억원과 비교해 2500억원 이상 늘어난 것이다.
금리가 낮아지기는 했지만, 올해의 연간 이자 부담액은 5조원을 넘을 전망이다.
한은의 추계에 따르면 2003년까지 통안증권 원리금 도래액은 75조7391억원이다.
시기별로는 올해 하반기 24조8851억원, 내년 38조4219억원, 2003년 12조4321억원이다.
결국 이런 천문학적인 이자 지급을 위해 한은은 통화를 증발할 수밖에 없게 되고, 이는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
그러면 한은은 다시 이를 막기 위해 통안증권을 발행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져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본원통화에 비해 통안증권 발행액이 두배를 훌쩍 넘어선 터라 통화관리 자체가 불가능해질 위험까지 우려되고 있다.
IMF 사태 이후 통안증권 발행이 늘어나는 이유로는 두가지가 꼽힌다.
하나는 주식·채권시장 등 자본시장의 전면적인 개방과 함께 외국인투자 자금이 밀려든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경상수지 흑자가 꾸준히 늘어난 것이다.
통안증권 발행액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길도 결국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통안증권 발행을 줄이는 방법은 크게 네가지다.
먼저 경상수지 흑자를 줄이는 것이다.
가격경쟁력 측면에서는 이 방법은 환율을 하락시켜 수출경쟁력이 하락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수출과 경제성장이 직결되는 현실에서 이 방법은 채택할 수 없다.
두번째 방법은 해외투자를 장려하는 것이다.
국내에 들어오는 달러를 다시 해외로 돌리면 그만큼 국내 통화증발 압력이 줄어들게 된다.
'해외부문의 통화증발 압력을 해외부문 자체 안에서 흡수할 수 있도록 외화수급 조절 대책을 강화한다”는 한은의 설명은 바로 이 방법을 뜻한다.
하지만 90년대 중·후반의 해외투자 열풍이 결국 실패로 끝난 전례나, 국내 산업공동화의 위험성을 고려하면 이런 정책을 으뜸으로 내세우기에는 무리가 있다.
세번째 방법은 재정경제부와 한은이 티격태격하며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통화환수용 국채 발행 방법이다.
이는 통안증권을 통화환수용 국채 발행으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한은은 통화환수용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재정경제부는 '통안증권의 국채 전환은 정부가 균형재정을 이룬 뒤에나 가능하다”거나 '국채발행 확대는 곧 재정부담의 증가”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하지만 통안증권 발행이나 통화환수용 국채 발행이나 막대한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다만 이자를 한은이 지급하느냐, 아니면 정부가 지급하느냐는 것만 다를 뿐이다.
실제로 정부는 한은에게 통안증권 발행의 부담을 몽땅 떠넘긴 채 아무런 부담도 지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통화환수용 국채를 발행할 수 없다면 외국환평형기금채권 발행을 확대할 수도 있을 텐데, 오히려 이 채권의 발행액은 줄어들고 있다.
외국환평형기금채권 발행잔액은 지난해 말 8조4천억원에서 올해 8월 말 8조3천억원으로 감소했다.
올해 들어 2조4천억원을 발행하고 2조5천억원을 상환해 순발행액이 오히려 1천억원 줄었기 때문이다.
통안증권 발행을 조절하기 위한 이들 세가지 방안이 모두 현실적인 여건이나 한은·정부간 협조 부재 속에서 지지부진하다.
통안증권 발행을 줄일 수 있는 네번째 방법은 외국인투자 자금, 특히 외국인 증권투자 자금의 국내 유입량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한은은 이 마지막 방법에 대해선 아예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자본시장 개방과 탈규제화의 정책노선과 배치된다는 이유에서다.
외국인 증권투자 자금 유입을 줄이는 방법은 가변예치의무금제(VDR)를 실시하는 것이다.
이 제도는 외국인 증권투자 자금 중 단기자본의 유입량을 조절하기 위해, 유입되는 자금의 일부를 한은에 저리나 무이자로 일정 기간(6개월이나 1년) 의무적으로 맡기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증권투자에 따르는 비용이 그만큼 늘어나게 되기 때문에 국내 증시로 흘러 들어오는 외국인 증권투자 자금 규모가 줄어들게 된다.
외국인 증권투자 자금은 99년 55억달러, 지난해에는 113억달러가 순유입됐다.
올 들어 지난 7월까지 순유입액은 36억달러에 이른다.
그럼에도 지난 6월과 7월 두달에만 각각 3.7억달러, 4.1억달러가 순유출되는 통계가 잡히자 정부나 한은이나 한목소리로 외국인 증권투자 자금을 더 많이 끌어들여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관된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순간마다 ‘일희일비’하는 셈이다.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유종일 박사는 '국내 증권시장과 외환시장의 현실은 가변예치의무금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통안증권 발행액의 조절은 외국인 증권투자 자금 유입량을 조절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