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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급조된 하드웨어, 텅 빈 콘텐츠
2. 급조된 하드웨어, 텅 빈 콘텐츠
  • 유춘희 기자
  • 승인 2001.10.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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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부족으로 교육용 SW 활용에 어려움… ICT 취지 무색해져 정부가 백년대계를 내세우며 의욕적으로 추진한 교육정보화 프로젝트는 IT(정보기술) 공급업체들에게 커다란 시장을 제공했다.
기업들은 아무리 경기가 침체해도 계획대로 예산을 집행하는 정부 주도 IT 프로젝트를 선호한다.
이 시장은 장비와 솔루션 공급은 물론 시스템통합(SI) 사업까지 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시장이란 점에서 인기가 높다.
IT 업체에게 교육정보화 사업은 입맛에 딱 맞는, 황금이 널린 밭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1997년부터 시작돼 올해 4월에 끝난 1단계 교육정보화 사업에 1조7800억원의 예산을 들였다.
그 가운데 인프라 구축에만 1조4400억원을 배정해 집행했다.
1단계에 쓰기 위해 책정한 예산 가운데 80%를 기반 다지기에 쓴 것이다.
1만64개 학교에 인터넷이 연결됐고, 교사들에게 34만854대의 PC를 지급했으며, 43만1981대의 PC로 1만2897실의 컴퓨터 실습실을 만들었다.
1단계 교육정보화 사업은 각 지역 교육청이 맡아 진행했다.
수의계약이든 경쟁입찰이든 장비를 도입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할 업체를 고르는 일도 그들이 했고, 예산의 일부(학교당 2천만원)만 교육부가 부담했다.
교육부 정보화기획담당관실 관계자는 '각 지역 교육청의 재정 형편과 교육감의 정보화 의지 등에 따라 편차가 있긴 하지만, 정보화의 가장 초보적 기준인 인프라 구축은 완벽히 마무리됐다'고 말한다.
하드웨어만 놓고 볼 때 교육부의 ‘자랑’은 절대 틀린 말이 아니다.
영국이나 미국, 일본보다 인터넷 접속 환경이 좋고 컴퓨터 보급률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소프트웨어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인프라는 높은 수준에 이르렀지만, 핵심인 정보기기를 활용한 다양한 학습활동을 펼치기에는 콘텐츠가 아직 부족하다는 사실에 이른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해 한국, 캐나다, 노르웨이, 싱가포르, 이스라엘, 일본 등 12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육정보화 국제 비교연구’에 따르면 교수·학습 활동에 인터넷 같은 정보통신 기술을 실제로 활용하는 정도를 보면, 우리나라 고등학교가 49%로 9위에 머물렀고, 중학교도 49%로 9위이며 초등학교는 54%로 이스라엘과 함께 공동 5위를 기록했다.
컴퓨터나 인터넷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교육 보조재료가 많지 않기 때문에 나타난 현실이다.
외국 콘텐츠 한글화에 급급 콘텐츠 부족 문제는 당연히 일선 학교에서 먼저 지적한다.
'하드웨어는 돼 있는데 소프트웨어가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지금 그 말의 뜻을 실감하고 있다.
' 서울 K중학교 P교사는 완벽하진 않지만 시설은 뒤처지는 게 없는데,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하드웨어가 생각을 세상에 전하는 틀이라면, 콘텐츠는 생각 그 자체'라며 콘텐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쓸 만한 콘텐츠를 구할 수 없는 것은 우선 예산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지난해 교육정보화 예산 중 콘텐츠 개발 보급 같은 교육자료 개발 부문에는 전체의 3.2%인 199억원이 지원됐다.
그래서 각급 학교에 소프트웨어 구입비용으로 돌아오는 예산은 많아야 200만원 정도. P교사는 '이 돈으론 오피스 패키지와 한 교과목 소프트웨어를 구입하기도 어렵다.
필요한 것을 교사 개인이 구입하거나 다른 학교 교사들과 교환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구입 예산 부족은 교육용 소프트웨어 품질 저하라는 병폐로 이어진다.
교육용 소프트웨어는 특성상 다품종 소량판매 방식이어서 개발원가가 높은데, 예산이 적은 학교 입장에서는 높은 가격을 감당할 수 없다.
결국 개발업체는 영양가 있는 소프트웨어보다 수요자 처지에 맞춰 ‘노력이 덜 든 질 낮은’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교육용 CD롬 타이틀을 개발하다 최근 온라인 교육사이트 운영으로 업종을 바꾼 아이에듀 관계자는 '교사들이 만족할 만한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최소 2년이 걸린다.
이렇게 제품을 출시해도 수익이 적기 때문에 외국 콘텐츠를 들여다 한글화하거나 아예 사업을 포기하는 업체가 많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시중에서 판매되는 소프트웨어 중에는 응용 학습은 없이 교과서를 그대로 베꼈거나, 학습자의 능력 차를 생각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만든 졸속 제품이 많다.
P 교사 역시 이에 동의한다.
'충분한 검증도 없이 보급에만 급급한 제품이 교육 현장에 있어 ICT의 목적인 학습방법 개선효과는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양질의 콘텐츠가 보급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단품판매 방식을 단위 학교당 라이선스 구매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생각해볼 만하다'고 제안한다.
한 업체 제품에 의존하는 단점은 있지만, 개발업체는 안정적인 공급처를 얻게 되고 학교쪽에서는 좀더 낮은 가격에 대량 구매가 가능한 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생들의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콘텐츠가 없는 건 사실'이라며 '1단계 교육정보화 사업이 하드웨어와 통신 기반 확충에 초점을 맞춰 소프트웨어 개발은 취약했다'고 시인한다.
그러나 그는 '2단계 사업은 인프라의 제대로 된 활용에 맞췄다'며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의 에듀넷 사이트를 통해 교사가 요구하는 다양한 멀티미디어 학습자료를 개발해 무료로 보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듀넷 사이트는 교육부가 콘텐츠 부족 문제가 나오면 거론하는 ‘전가의 보도’다.
이에 대해 일선 학교에서는 '에듀넷 역시 현장에서 쓸 만한 심도 있는 콘텐츠가 없고, 여러 곳에 흩어진 것들을 짜깁기 해놓은 정도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KERIS는 예산 부족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260여종의 콘텐츠를 개발할 계획이지만, 여기에 책정된 예산은 40억원으로, 지난해 예산 57억원보다 줄어든 액수다.
또 하나의 문제는 대부분의 개발업체가 수익성 부족을 이유로 영어나 수학처럼 인기과목 출시에만 집중하고 있어, 다른 과목의 경우 ICT 교육을 진행할 수 없다는 점이다.
특히 예체능계나 실업계 학교에서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교육용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이포인트의 조명진 사장은 '이익을 좇는 개발사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라며, '특수과목 콘텐츠는 정부의 자금지원을 전제로 한 과제 부여 같은 배려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ICT 담당 교사를 대상으로 IT 정보를 제공하는 ‘교육정보화21’의 강신영 국장은 현재의 교육정보화 상황을 '급조된 하드웨어에 텅 빈 콘텐츠'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그는 '이제 기초공사를 마친 상태이기 때문에 잘못한 점만 지적하지 말고, 기둥을 세우고 교육 공간을 만드는 일에 정부와 교사, 관련 업계가 협조체제를 이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방법으로 좋은 콘텐츠 공급을 위해 업체와 교사의 협의체를 구성할 것을 조언했다.
개발업체와 교사가 함께 필요한 콘텐츠와 수요를 파악하고, 교육 현장의 요구가 담긴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또한 정부와 각계 전문가, 학부모, 학생이 참여하는 소프트웨어 심사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를 통과한 우수 제품에 개발비와 판로를 지원하면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영국의 ICT교재연구소

최신 기술로 개발된 ICT 교재를 그저 구입하기에 앞서 전문가의 조언을 얻어가면서 손쉽게 조작해볼 기회는 없을까? 이 대답을 하기 위해 영국 교육부는 ICT 최신교재 연구소(The Learning Lab)를 1999년에 발족시켜 2000년 가을부터 본격 서비스에 들어갔다.
지난 7월 영국 교육부가 ‘교육을 위한 국립 ICT 개발연구센터’라는 이름을 덧붙여준 이 연구소는 교사와 기술자를 잇는 핵심 연구소로 자리잡고 있다.
이 연구소는 설립부터 다른 기관들과는 달랐다.
이곳 연구소장인 스티브 몰리네스 교수는 그와 함께 연구에 참여한 연구진들과 개발한 아이디어를 영국내 가장 큰 두개의 통신회사에 팔아 그 돈으로 연구소를 발족했다.
그리고 연구소로 규모가 확대되면서 설립 운용비 전액을 마이크로소프트사를 비롯한 20여개의 민간회사들이 출자했다.
하지만 이 기관은 영리기관은 아니다.
감독권은 정부에 있으나 운영은 ICT 분야의 전문 교수들과 이 연구소가 위치한 워보함튼대학이 공동으로 한다.
민간 업체들은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해 브리티시텔레콤, 시스코시스템스, 그라나다러닝 등 세계 굴지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교육교재 그리고 통신회사들이다.
이들 회사는 교육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제각기 개발한 최신 설비, 장비, 소프트웨어 등을 이곳에 설치·전시하고 교육 관계자들에게 무료로 사용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따라서 교육 관계자들은 이곳에서 현재 어떤 기술과 교육학습도구들이 개발 공급되고 있는지 체험할 수 있고, 기업쪽에서는 교육현장에서 무엇이 어떤 식으로 공급되기를 바라는지 시장 조사와 더불어 자사 상품에 대한 사용자의 반응도 탐지할 수 있다.
이 연구소는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 교육기관의 관련 연구팀들의 방문을 받기도 하고, 공동연구 계약을 맺기도 한다.
이 연구소의 운영을 맡고 있는 리즈 플레덤씨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깊은 토론과 분석을 위해서 연구소에서는 전문 자문단을 소개해준다.
이 모든 서비스는 무료'라고 강조했다.
이 연구소에 투자하고 있는 그라나다러닝 같은 회사는 교사뿐만 아니라 위보함튼대학의 학생들에게 인터넷을 통해 개인등록을 하게 하고, 그들에게도 시설을 써볼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학생들은 이 시설을 이용함으로써 자신의 시간과 학습진도의 속도에 맞추어 학습을 할 수 있다.
이런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이 연구소에 가르치는 사람뿐만 아니라 학습하는 사람의 입장, 그리고 가르치는 사람과 학습하는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을 관찰·연구하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최봉섭/ 영국 런던대학교 평생학습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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