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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코스닥으로 가는 ‘바늘구멍’
[머니] 코스닥으로 가는 ‘바늘구멍’
  • 이정환
  • 승인 2001.02.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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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이 말하는 기업공개 전략 “매출 적어도 성장성 보여줘라”
“올해 등록해야 합니다.
내년까지 가면 너무 늦어요.”
“그러지 말고 올해까지는 지켜봅시다.
올해에는 매출이 두배 정도 늘어날 것 같아요. 내년에 제값 받고 파는 게 낫지 않을까요?”

코스닥 등록시기를 놓고 벌어지는 이러한 실랑이는 대개 벤처캐피털의 승리로 끝난다.
어렵사리 코스닥에 올려놓고 나서도 6개월이나 기다려야 하는 벤처캐피털로서는 가능한 한 빨리 코스닥에 올라가는 게 좋을 수밖에 없다.


“보통 성장곡선의 7부 능선에서 들어가는 게 제일 좋다고 말합니다.
성장 초기단계 때는 제값을 받기 어렵고, 안정기에 접어들어 성장성이 둔화되는 조짐을 보일 때는 너무 늦죠.” 우리기술투자 정만회 이사의 말이다.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처럼 보일 때 뛰어들라는 이야기다.
기울기가 가장 가파를 때 시장의 기대도 꼭대기에 이른다.
정 이사는 서두를 필요도 없지만 준비만 돼 있다면 굳이 미룰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시장 진입 초기에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하면 영원히 인기없는 주식으로 머무를 수 있어요. 떨어진 주가는 시장만 좋아지면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지만 처음부터 바닥을 기는 주가는 아무리 실적이 좋아도 좀처럼 오르기 어렵죠.”7부 능선에서 올라타라 시장의 움직임도 잘 살펴야 한다.
성공하는 기업공개의 첫번째 조건은 시장의 흐름을 잘 잡아타는 것이다.
어떤 기업은 본질가치의 수백배에 달하는 공모가를 받는가 하면, 어떤 기업은 본질가치에도 못미치는 대접을 받기도 한다.
화려한 신고식을 치르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눈에 띄는 둥 마는 둥 하다가 투자자들의 관심에서 사라져버리는 기업도 있다.
성장성에 대한 평가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겠지만 시장 분위기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지난해 코스닥에 들어온 기업들의 공모가를 살펴보면 이런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6월에 등록한 옥션의 공모가는 본질가치 920원의 4만3478%에 이르는 40만원이었다.
그러나 12월에 등록한 금화피에스시의 공모가는 본질가치 2만8210원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1만3500원에 그쳤다.
만약 옥션이 12월에 등록했더라도 40만원을 받을 수 있었을까. 옥션뿐만이 아니다.
6월에 등록한 23개 기업은 평균적으로 본질가치의 398%에 이르는 공모가를 받았다.
그러나 11월에 등록한 9개 기업은 본질가치에도 못미치는 평균 82%의 공모가를 받아야 했다.
공모가는 6월에 천장을 쳤다가 10월부터는 본질가치 밑으로 떨어졌다.
“흔히 발행시장은 유통시장에 3개월 정도 후행한다고 합니다.
지난해 통계를 보면 3월에 최고점에 이르렀던 코스닥 주가가 신기하게도 3개월 뒤인 6월 발행시장에 그대로 반영됐습니다.
4월 들어 주가가 하락하면서 7월부터는 발행시장의 열기도 급격히 식었지요.” 코스닥 등록 전문 컨설팅 업체인 에스아이피오 박성호 이사의 얘기다.
박 이사는 “최근 코스닥시장의 주가 급등이 계속 이어진다면 4월 무렵에는 발행시장이 또 한차례 호황을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이사는 시장 상황을 봐가면서 등록시기를 맞추라고 조언한다.
대주주 지분을 어느 정도 가져갈 것인지도 결정해야 한다.
KTB네트워크 문성희 과장은 “공모 후 대주주 지분이 50%면 적당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문 과장은 “지분이 낮을 경우 경영이 불안정할 수 있고 기술 기반의 회사라면 CEO가 회사에 애정을 못 붙이고 나가버려 회사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대주주 지분은 많을수록 좋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현대증권 신용각 차장은 확실한 아이템을 잡으라고 충고한다.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체적으로 기술을 확보하고 있어야 합니다.
장비나 수입해다 파는 업체는 평가받지 못해요. 유료화가 가능한 통신 콘텐츠가 있다면 환영받을 수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업체라면 매출액이 50억원은 넘어야 하고 제조업체라면 연간 성장률이 30% 이상은 돼야 합니다.
” 매출이나 순이익의 크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지난해 코스닥에 들어온 미디어솔루션은 매출액이 22억원, 순이익은 2억원에 지나지 않는다.
특별한 경우지만 옥션은 매출 15억원에 39억원의 적자를 기록하고도 당당히 코스닥에 들어갔다.
심지어 LG텔레콤처럼 적자가 1617억원에 이르는 기업도 코스닥에 들어갈 수 있다.
매출이 안정적이고 성장성을 입증할 수 있다면 코스닥 등록의 벽은 그리 높지 않다.
한국기술투자 민봉식 소사장은 “적은 매출이라도 자체 기술력을 바탕으로 조금씩이라도 순이익이 늘어나고 있다면 얼마든지 코스닥에 올라갈 수 있다”고 말한다.
증권사와 코스닥위원회도 매출액 크기보다는 재무제표의 건전성에 비중을 두는 추세다.
결국 문제는 올해 들어 한층 까다로워진 질적 심사요건을 맞추는 일이다.
경영 투명성이나 독립성, 건정성 등을 따지게 되는데 다분히 주관적 요소가 있는데다 꼼꼼히 뜯어보면 걸리지 않을 기업이 없다.
게다가 올해부터 예비심사에서 떨어진 기업은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 재심사를 신청할 수 없게 된다.
결산이 맞물리는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심사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해 심사청구가 가능한 기간은 9개월 정도다.
만약 올해 심사에서 떨어지면 올해 안에는 다시 재심사를 받기 어렵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만큼 심사를 청구하기에 앞서 철저한 사전준비가 필수적이다.
한국벤처컨설팅 송세엽 사장은 코스닥 등록을 상담하러온 업체들에게 경영의 투명성을 강조한다.
별 생각없이 저지른 일이 코스닥 등록의 발목을 잡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흔한 실수로 대주주가 지분변동을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있죠. 지분을 매각하면서 증권거래세를 내지 않았다면 지분변동을 증명할 길이 없어요. 결국 늦게라도 신고하고 6개월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죠. 이런 실수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 부도난 회사에서 직원을 몇명 데려다 쓴다면 업무양수도에 해당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6개월이 지나야 등록자격이 주어지게 된다.
이런 실수들을 일찌감치 발견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꼼짝없이 등록을 연기하는 수밖에 없다.
많은 벤처기업들이 회계업무를 외부 공인회계사에게 맡기는데 이것도 문제투성이다.
고정자산 대장이나 재고자산 목록도 없이 현금유출입만 기록하기도 하고, 대주주와 부당한 거래가 있거나 친인척 회사에 부당한 지원을 하는데도 묻어두기도 한다.
올해부터 이런 회사들은 코스닥 문을 두드리기 어렵게 될지도 모른다.
대우증권 김대환 차장은 “적어도 일년 전에 주간사를 선정하고 회계장부를 깔끔히 다듬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등록준비기업 250개 코스닥으로 들어가는 문은 지난해보다 훨씬 좁다.
증권업협회에 따르면 2월과 3월에 코스닥 등록 예비심사를 청구하겠다고 밝힌 기업은 156개나 된다.
그러나 2월에 예정됐던 79개 기업 가운데 실제로 예비심사를 청구한 기업은 17개에 지나지 않았다.
주가가 다시 주춤한데다 여느 때보다 심사가 까다로울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기업들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몸을 사리는 건 증권사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울며 겨자먹기로 시장조성에 나서야 했던 증권사들은 아무래도 공모가 산정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등록한 174개 기업 가운데 35개 기업이 시장조성에 들어갔고 증권사들의 평가손실은 964억원 가량으로 추정된다.
동원증권 노성환 팀장은 “올해 우리 기업공개팀의 최대 과제는 리스크 줄이기”라고 말했다.
많은 증권사들이 실적을 올리는 것도 좋지만 우선은 시장조성 위험을 피해가자는 내부방침을 세우고 있다.
“기껏해야 4%밖에 안되는 수수료를 받으려다가 시장조성에 수백억원씩을 쏟아붓고 결국은 손절매까지 했지요. 올해는 최대한 보수적인 태도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 현대증권 신 차장은 “다른 증권사와 협상을 벌이다가 공모가를 높게 쳐주지 않는다고 여기저기 옮겨다니는 철새 기업도 많다”고 말했다.
코스닥 등록에 앞서 공모가를 놓고 증권사와도 실랑이를 벌어야 한다.
의외로 최근 코스닥 등록을 희망하는 기업들 가운데는 설립된 지 10년이 넘는 전통 제조기업들이 많이 눈에 띈다.
현대증권 신 차장은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고 달리 돈을 쓸 데도 없는 기업들이 왜 코스닥에 올라오려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등록을 원하는 업체는 많지만 대박을 터뜨릴 만한 기업이 없다는 이야기다.
벤처캐피털 업계에서는 “괜찮은 회사는 이미 지난해에 다 올라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닷21>이 국내 15개 주요 벤처캐피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올해 코스닥 등록을 예정하고 있는 업체는 150개 가량이다.
KTB네트워크가 43개 기업을 등록할 계획이고, 한국기술투자와 산은캐피탈이 각각 32개와 38개 기업을 등록할 계획이다.
나머지 130여개 벤처캐피털이 투자한 기업들까지 포함하면 올해 코스닥 등록 예정물량은 250여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지난해처럼 30% 정도가 떨어진다고 가정하면 올해 코스닥에 올라갈 수 있는 기업은 150개에서 200개 사이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시장이 정상적이라면 주가는 결국 제값을 찾아가게 된다.
한때 시장의 이목을 끌었던 옥션은 등록 한달 만에 무너진 공모가를 8개월째 되찾지 못하고 있고, 지난해 말 턱없이 낮은 공모가를 받았던 기업들은 비교적 튼튼한 상승세를 보여줬다.
성공적인 기업공개라면 반짝 주가를 끌어올리는 것보다 투자자들에게 확실한 기업 이미지를 심어주고 장기적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서 의의를 찾아야 한다.
상황이 불투명하기는 하지만 성장성을 입증할 자신이 있는 기업이라면 코스닥의 좁은 문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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