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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다시 부는 은행가 회오리
[포커스] 다시 부는 은행가 회오리
  • 유상규(한겨레)
  • 승인 2001.02.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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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경제수석 발언 파문 일파만파…기업-외환 합병설까지 나돌아
은행권이 최근 다시 합병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은행권의 합병 바람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 경기도 일산 국민은행 연수원에 불었던 헬리콥터의 흙먼지 바람과 함께 일단 ‘국민-주택은행 합병, 한빛은행 중심의 금융지주회사’라는 큰 두줄기로 가닥이 잡히며 휴지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2월21일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이 한 조찬 강연에서 “민간 중심의 금융지주회사가 더 나올 것”이라고 언급한 이후 은행간 짝짓기에 대한 온갖 시나리오가 떠돌고 있다.
이 수석은 자신의 발언에 대해 “합병이 아니라 금융지주회사가 나올 것이란 것이었으며, 이는 신한은행이 추진하고 있는 지주회사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신한은행의 금융지주회사 설립 추진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돼왔으며, 2~3개월 안에 매듭지어질 전망이어서 이 수석의 언급대로라면 별로 새로울 게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수석의 해명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의 발언 직후 기업은행과 외환은행이 합병에 긍정적 의사를 밝혔고, 신한은행도 대형화 전략의 추진시기를 앞당기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이밖에 다른 은행들의 합병추진과 관련한 입소문도 유통의 속도와 양이 부쩍 늘었다.
때문에 최근 다시 불고 있는 은행권 새판짜기 바람의 진원지가 정부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부가 스스로 정한 2차 금융구조조정의 시한이었던 2월 말을 앞두고 실적을 내기 위해 ‘밀어내기’를 했다는 게 이런 시각의 근거다.
기업은행 노동조합은 “청와대와 금융감독원 등에서 2월13일 합병을 검토하라는 지시가 떨어져 다음날 바로 실무팀이 구성됐다”고 주장했다.
두 은행의 고위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두 은행간 합병의 시너지 효과에 대한 검토보고서가 작성됐다는 사실이 확인돼, 노조쪽 주장이 사실에 근거하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이경재 기업은행장은 이에 대해 “국민-주택은행이 합병돼 거대은행이 탄생하면 나머지 은행들은 생존의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최근 은행들의 움직임은 자연스러운 것임을 강조한다.
이 행장은 “국내 금융시장의 규모가 너무 작아 초대형 은행이 두개나 태어난다면 틈새시장을 노릴 수 있는 여지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거물이 판을 휘젓게 되면 작은 은행들은 숨쉴 틈이 없다는 얘기다.
기은 노조와 은행장의 상반된 주장을 종합해보면 적어도 이 수석의 발언이 은행권에 잠재해 있던 불안감을 촉발시켜 몸집 불리기를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한 계기가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현재 추가 합병이 가장 진전된 형태로 나타난 은행은 기업-외환이다.
두 은행은 자체 작성한 검토보고서에서 합병의 시너지 효과가 상당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주가 수준이 비슷하고, 자산과 예수금 규모 등이 대등합병에 무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전산쪽 기종이 같기 때문에 합병에 따른 비용부담이 비교적 적을 것이라고 분석됐다.
특히 외환은행은 여신 포트폴리오면에서 상당한 개선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외환은행의 기업대출은 대기업 대 중소기업이 6 대 4 정도인데, 기업은행과 합병이 이뤄지면 중소기업 비중이 6, 대기업이 4로 역전돼 건전화된다는 계산이다.
기업은행 노조는 외환은행과 합병 추진사실이 공개되자 즉각 은행장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노조는 정부가 기업은행을 외환은행과 합병하려는 것은 현대건설 문제를 우량은행인 기업은행과 섞어 ‘물타기’하려는 속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기은행장은 3월1일 밤 시석중 노조위원장을 만나 합병문제를 논의한 뒤, 2일 사내게시판에 올린 담화를 통해 “국민경제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중소기업 지원·육성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부실은행과의 합병 또는 지주회사 설립은 추진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노조도 2일 새벽 사흘 동안의 행장실 점거농성을 풀었다.
그러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물론 아니다.
이 행장의 ‘부실은행과의 합병은 하지 않겠다’는 말은 뒤집어보면 외환은행이 부실은행이 아니라고 하면 추진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대건설 문제의 조기매듭이다.
외환은행이 현대건설의 짐을 벗어던질 수 있다면 기업-외환은행의 합병은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는 게 지배적인 전망이다.
외환은행이 2월26일 서둘러 현대건설 처리방안을 발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특히 이들 두 은행의 통합은 단순 합병이 아닌 지주회사 방식으로 진행될 전망이어서 또다른 은행들의 추가 참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은행권 새판짜기의 또다른 변수는 신한은행 중심의 지주회사다.
신한은행의 지주회사 설립 후 운영과 관련된 전략 자문을 맡아온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애초 2001년까지 지주회사 체제 정착, 2003년까지 겸업화의 시너지 극대화, 그 이후 합병 및 신사업 진출확대 등의 시간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신한은행은 최근 “지주회사 설립 직후 바로 우량 금융기관과 통합을 추진하겠다”고 전략을 수정 발표했다.
신한은행은 다양해진 고객들의 수요에 맞추기 위해서는 겸업화가 더욱 시급해졌다고 보고, 대형화 전략의 추진 시기를 앞당길 계획이다.
만일 정부가 바라는 방향으로 은행권의 새판짜기가 이뤄진다면, 국내 은행권은 4~5개의 대형은행이 각축을 벌이는 상황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인위적인 은행 대형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미국 시장에서도 초대형 은행들이 퇴조하고 오히려 소형은행들이 약진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경기가 하강국면에 접어들면서 큰 은행들이 경기대응 능력에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특히 정부가 밀어붙이는 방식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어윤대 교수(고려대)는 “은행이 스스로 살 길을 찾도록 해야지 강압적으로 합병을 한다면 노조뿐 아니라 주주쪽에서도 상당한 문제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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