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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테러 파편에 미국 경제 ‘주름살’
[초점] 테러 파편에 미국 경제 ‘주름살’
  • 함석진/ 한겨레 국제부
  • 승인 2001.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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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테러 불안으로 소비심리 얼어붙어… 미 정부 전례없는 경기부양 대책에 부심 미국 경제의 시름이 다시 깊어지고 있다.
침체와 회복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던 미국 경제는 영화의 한장면 같은 테러와 숨가쁘게 이어진 보복공격으로 당장이라도 파도에 휩쓸리는 모래성이 될 처지다.
그나마 근근이 버팀목이 돼주던 소비분야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 가장 큰 걱정거리다.
소비자들이 언제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시 백화점으로, 자동차 판매점으로 몰려들지 불분명하다.
정부가 이런저런 방법을 다 동원해 겨우 소비에 불을 지핀다고 해도 언제 다시 무너질지 모른다.
추가테러 한번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미국 언론들은 이런 이유로 미국 경제가 앓고 있는 병은 이제 의사의 손을 떠났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내놓고 있다.
앞으로 몇년이 걸릴지도 모를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한 미국 경제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으며, 또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미국 매사추세츠 니드햄에서 가정용 철물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하비 카츠는 미국 테러사건 이후 주문이 2배나 늘었다.
소형 볼트와 너트는 재고까지 바닥날 지경이다.
카츠는 '장사가 잘되는 것을 보니 테러 충격이 얼마나 큰지를 알겠다'고 말했다.
미국의 일간지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이처럼 한 가게의 역설적인 사례를 들어 최근 소비시장의 동향을 설명했다.
많은 소비자들은 테러사건의 충격으로 밖에서 돈을 쓰기보단 집안에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고, 그렇다 보니 집안 수리에 들어가는 용품들이 잘 팔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소비는 인플레이션 수준이나 실업률 등 실질 경제지표의 영향을 직접 받는 대표적인 분야지만, 심리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 2년 동안 미국 소비자들은 기업실적 악화→감원→수입감소의 악순환 속에서도 그런 대로 소비 수준을 유지해왔지만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데이비드 위스 S&P 수석 분석가는 '소비자들이 백화점 등 대형건물에 들어가 긴 시간을 쇼핑에 투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 테러 이후 시장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뚜렷한 변화'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추가 테러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람이 많이 모인 장소는 일단 피하고 본다.
이런 불안심리는 경제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과 중첩되면서 구매의욕을 더욱 떨어뜨린다.
소비자신뢰지수는 테러 이전에 이미 바닥을 기고 있는 상태였다.
콘퍼런스보드가 지난달 25일 발표한 미국의 9월 소비자신뢰지수는 97.6으로 16.4포인트 하락하면서 96년 1월 이후 최저수준을 기록했고 90년 걸프전 이후 월간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그러나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 이후 소비가들의 시장과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예상밖으로 높은 쪽으로 다시 돌아섰다.
'ABC방송'이 지난 10일 전국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결과, 경제전망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의 비율은 테러 이전인 지난달 9일 43%보다 2%가 늘었고, 구매환경과 개인재정도 40%, 61%에서 43%, 65%로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비율이 늘어났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의 최근 조사에서도 향후 6개월 동안의 경제전망을 긍정적으로 본 사람의 비율이 9월 52.1%에서 57.6%로 상승했다.
특히 연방정부의 경제정책을 지지한다고 대답한 사람의 비율은 지난 9월 51.9%에서 70%로 급상승했다.
이에 대해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수석 분석가는 '실제로 경제가 좋아질 것으로 보는 것보단 좋아져야 한다는 심정이 강하게 반영됐을 것'이라며 '테러사건 직후 많은 사람들이 성조기를 구입하고 주식을 사들였던 것처럼 ‘애국 경제’를 외치면서도 소비는 줄이는 ‘가치 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업들 도미노 파장에 전전긍긍 소비 분야에서 특히 값이 많이 나가는 품목은 줄줄이 두손을 들고 있다.
부동산과 함께 판매율을 유지해 시장을 지켜주던 자동차 판매가 눈에 띄게 줄었다.
업계는 자동차 판매가 9월 한달간 전달보다 20%나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포드자동차는 최근 올해 자사 이익이 당초 예상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자제품도 대형 디지털텔레비전 등 신형 고가품이 진열된 매장 앞엔 발길이 뚝 끊겼다.
항공업계는 전세계 업체들이 연쇄부도 공포로 내몰리고 있다.
미 항공분야는 오랜 경기침체로 기업들이 올 들어 출장예산을 40%나 삭감하는 등 수요 감소로 이미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항공사들은 테러사건 이전에도 올해 35억달러의 적자를 예상했다.
그러나 이제 좌석 예약마저 50% 이상 감소한데다, 전체 매출의 2% 가량을 책정해온 보안비용을 테러 방지에 세계 최고라는 이스라엘 항공사들처럼 4% 이상까지 올려야 할 판이다.
항공사들은 9월에만 50억달러의 손실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미 연방정부가 항공업계에 150억달러를 긴급 수혈하기로 결정했지만 천재지변에 가까운 수요 감소를 당해내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전세계 항공사들은 테러사건 이후에만 모두 11만5천명의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증권의 토머스 맥나우스 분석가는 '테러의 직격탄을 맞은 항공과 보험산업의 영향만으로도 S&P500 기업의 수익이 3% 이상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통은 연관 산업들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호텔 객실 사용률은 20% 아래로 떨어졌다.
컨설팅 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는 호텔·숙박업 등 서비스업의 4분기 실적이 33년 만에 최악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보잉은 비행기 주문이 끊어지면 직원을 3만명까지 감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부 산업은 테러 이후 예상하지 못했던 호황을 경험하고 있다.
비상연락 수단으로 휴대전화 판매가 크게 늘었고 생명보험 시장도 갑작스런 호황에 입이 벌어졌다.
철도회사 앰트렉은 비행기 고객들을 흡수하면서 매출이 17%나 늘어났다고 밝혔다.
추가 테러 가능성 때문에 탄저병 백신을 만드는 바이오포트의 매출도 껑충 뛰었다.
그러나 이들 업체들도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당장 주머니가 두둑해져 좋긴 하지만 반짝 특수에 그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 상무부가 10일 발표한 8월 중 도매재고 수정치는 애초 -0.7%에서 -0.1%로 크게 줄었지만, 테러 충격이 반영되기 이전 통계라 큰 의미는 없다.
한 분석가는 '테러 이전 생산부문은 뚜렷히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는 증거여서 시장에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고차원 수학문제 어떻게 푸나' 미국의 금융·정책 당국은 테러사건을 계기로 전례없는 경기부양 대책에 골몰하고 있다.
테러 발생 직후 연방준비은행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1천억달러 이상의 유동성을 공급했다.
미 의회도 400억달러 규모의 재해복구 및 전쟁수행 비용과 150억달러 규모의 항공업계 지원비용의 지출을 승인했다.
연초에 1조3500억달러 규모의 감세안을 발표한 미 행정부는 테러사건 이후 600억달러 규모의 추가 감세안까지 내놨다.
효과가 나타날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테러와의 전쟁’으로 상황이 워낙 꼬여버려 묘수가 못 될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확대 일변도의 정책에 대한 비판도 거세게 일고 있다.
대표적 통화론자인 밀턴 프리드먼 교수는 10일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부시 행정부의 경기부양책은 실패작이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이미 지금까지 실시한 아홉차례의 금리인하와 감세안만으로도 시장을 반전시키기에 충분하며 이젠 그 효과를 어느 정도 기대할 수 있는 시점인데 테러 사건에 과민대응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과도한 재정지출도 정부부채를 늘리고 민간부문의 투자를 위축시켜 경제효율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공동 수상자인 미국의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학 교수도 부시 행정부의 추가 경기부양책은 경제병 치유에는 도움이 되지 못하고 정부의 장기 경제계획에 대한 유연성만 축소시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뱅크원의 다이앤 스웡크 분석가는 '내년 경기는 예상보다 훨씬 좋을 것'이라면서도 '그것은 이번 전쟁이 단기전으로 끝난다는 것을 가정했을 때만 겨우 가능한 전망이라는 점에서 지금의 상황은 점점 ‘고차원 수학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시 호황의 열매를 선사할지도 모르고 전쟁보다 더 길고 깊고 상처를 남길지도 모를 미국 경제향방에 전세계 경제가 숨을 죽이고 있다.

세계 경제 최악의 사태 오나

지난 10월11일 발표된 유엔의 ‘2001년 세계 경제 상황 및 전망 보고서’는 올해 세계의 GDP 성장 전망치가 애초의 2.4%에서 1.4%로 낮아지고, 올해 5.5% 성장할 것으로 예상됐던 세계 교역물량 증가율 역시 제로 상태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예상 성장치 둔화 폭은 3500억달러 상당의 생산품이 줄어드는 것에 해당한다고 유엔은 밝혔다.
미국 경제는 이번 테러로 최악의 경기 하락세를 보이면서 경제성장률이 최근 10년 동안 최저치인 1.4%에 머물겠지만 이후 완만한 회복세로 돌아서 내년엔 2%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일본과 유럽연합은 경제성장률이 각각 0.5%, 1.8%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홍콩·싱가포르·대만 등 미국과 일본을 주력 수출시장으로 삼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은 결과적으로 이번 테러 사태의 피해를 가장 심하게 입을 것으로 예상돼, 4.0%였던 이들 국가의 평균 성장전망치가 2.5%로 하향 조정됐다.
반면 중국은 피해를 입지 않는 유일한 국가로 남아 7.5% 성장이라는 애초 목표를 달성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난달에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3.2%에서 2.6%로, 내년 성장률을 3.9%에서 3.5%로 각각 낮춰 전망했다.
그러나 이 전망은 미국 테러사건 발발 이전의 경제상황만 반영한 것이어서 테러의 영향까지 고려하면 더 비관적일 수 있다고 국제통화기금쪽은 설명했다.
미국의 올해와 내년 성장률은 각각 1.9%, 2.7%에서 1.3%, 2.1%로 낮췄고, 일본의 성장률 전망치도 1.5%, 2.5%에서 1.3%, 2.2%로 각각 하향 조정했다.
호르스트 쾰러 국제통화기금 총재는 최근 '주요 국가들은 물론 개발도상국가까지 경제가 급격히 침체될 위험이 높다'면서 '세계 경제성장이 1%대에 머물 최악의 시나리오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간 경제전망 기관인 블루칩이코노믹인디케이터(BCEI'가 지난 10월3~4일 미국 경제학자 51명을 상대로 경제전망을 알아본 결과, 미국 국내총생산은 테러전쟁 충격으로 3분기 0.6%, 4분기 1.3%로 떨어졌다가 내년 1분기에는 1.4%, 2분기에는 2.9%로 상승폭이 점점 커질 것으로 예상됐다.
미국 경제는 감세·정부지출확대·금리인하 등 정부의 경기부양 조처들이 본격적으로 효과를 발휘하는 내년 하반기쯤 본격적인 성장세로 돌아설 수 있다는 게 학자들의 대체적인 견해였다고 이 기관은 밝혔다.
지난 8·9월에 최근 4년 동안 중 최고치인 4.9%를 기록한 미국의 실업률은 앞으로 계속 증가해 4분기 5.3%, 내년 1분기 5.6%, 2·3분기에는 5.7%에 이를 것으로 보이지만 6.0% 정도에서 강력한 저항선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됐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증시 폭락과 소비자 신뢰 하락으로 올해 미국으로의 외국인투자가 지난해 1조3천억달러에서 7699억달러로 40%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의 외국인투자가 감소하는 것은 10년 만에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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