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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이베이의 3가지 약속
[포커스] 이베이의 3가지 약속
  • 김상범
  • 승인 2001.02.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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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빚 인수·직급별스톡옵션 부여·고용안정 등 약속 “이베이의 가족이 된 걸 환영합니다.
” 지난 2월19일 옥션 직원들 앞으로 이베이의 CEO 멕 휘트먼(Meg Whitman)이 보낸 이메일 한통이 날아들었다.
옥션을 인수하고 처음 있는 일이다.
그는 애초 이달 중 한국을 직접 방문해 옥션 직원들과 첫 만남을 가질 예정이었다.
이메일에는 뜻밖의 ‘선물’이 들어 있었다.
옥션 직원들이 회사에 진 빚을 전부 이베이가 떠안겠다는 것, 전 직원에게 직급별로 이베이의 스톡옵션을 부여하겠다는 것, 그리고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는 세가지 약속이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첫번째 약속이었다.
지난해 6월 코스닥 등록 당시 옥션은 50만주를 직원들에게 우리사주로 배정했다.
가격은 공모가와 같은 4만원. 옥션은 물량과 가격에 부담을 느낀 직원들에게 회삿돈을 꾸어주면서까지 주식 매입을 종용했다.
결국 옥션 직원들은 일인당 평균 1억원의 빚을 안고 주식을 매입했다.
기대했던 대로 주가가 올랐다면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주식시장은 이후 계속 비틀댔고 옥션 직원들은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2월 현재 옥션 주가는 2만5천원대. 주가 하락과 함께 옥션 직원들의 사기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베이는 이런 사정을 정면으로 돌파했다.
내년 6월을 기준으로 그때도 주가가 4만원 이하라면 직원들이 회삿돈을 빌려 산 주식을 취득가격인 4만원에 되사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빚더미에 오른 옥션 직원들에게는 구세주나 다름없다.
올초 이베이가 옥션을 인수한 사건(?)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뉴스였다.
한국 닷컴의 대내외적 위상을 드높인 쾌거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옥션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경사였다.
대주주는 수백억원의 투자차익을 얻었고 창업자 역시 명예와 돈을 거머쥐고 떠났다.
그런데 투자자와 창업자가 휘파람을 불며 떠난 후 남은 사람들의 한숨소리는 더욱 커졌다.
빚 걱정 때문이었다.
한몫 챙기고 나몰라라 떠나는 사람들의 가벼운 발걸음을 생각하면 상대적 열패감은 더했다.
결국 벤처 신화는 소수 투자자와 창업자의 몫일 뿐인가. 멕 휘트먼은 이메일에서 세가지를 약속했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하나였다.
‘직원들이 사기를 잃은 기업은 끝이다, 벤처는 사람이 재산이다’라는 기본을 잊지 않고 있다는 무언의 암시였다.
사기가 저하된 직원들과 함께 기대했던 글로벌 비즈니스를 벌여볼 수 있을까. 이베이의 선택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자신감을 드러낸 것일 수도 있다.
이 정도 자신감을 보인다면 직원들은 믿고 따를 수 있다.
한국의 벤처는 미국의 벤처에 비해 성숙하지 않았다고 한다.
성숙과 미성숙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나도 벤처의 일원이라는 주인의식과, 한두사람의 대박을 위한 들러리라는 자괴감, 직원들이 가질 수 있는 두가지 정반대 인식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나눔의 경영철학을 생각해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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