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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또 다른 뇌관, 단말기보조금 부활
1. 또 다른 뇌관, 단말기보조금 부활
  • 한정희 기자
  • 승인 2001.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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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관계 맞물려 물밑 로비전 치열… 정통부, 독점방지 명목 강한 딜레마 지난 7월18일 한국무선인터넷협회, 무선게임포럼 등 무선인터넷 벤처 대표자들은 양승택 정보통신부 장관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무선인터넷 시장의 확대를 위해서는 단말기보조금 제도를 도입해 신형 단말기를 대량 보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무선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일단 인터넷 서비스가 잘 구현될 수 있는 향상된 기능의 단말기가 먼저 보급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현재의 비싼 단말기를 싸게 구입할 수 있도록 ‘보조금’을 다시 지원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양 장관은 '보조금 부활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며, 쉽사리 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리고 지난 6월에 이미 보조금 금지를 법제화하겠다고 선언한 방침을 재확인했다.
단말기보조금 금지법안은 형사처벌의 근거조항을 명시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말한다.
정보통신부는 이 개정안을 마련해 정기국회를 거쳐 내년 1월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보조금 문제는 이동통신사들을 비롯한 관련 업계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으며, 이동통신 시장의 성장에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영향을 미칠 사안이다.
단말기보조금 지급은 제조업체가 재고 단말기를 처분할 목적으로 이동전화 사업자와 계약을 맺고 기준 공급가격 이하로 대리점에 공급하는 것을 통해 가입자를 유치하면서 시작됐다.
그후 1997년 PCS 사업자가 상용 서비스를 개시하고, 이동통신 업체들의 가입자 유치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보조금 지급이 빠르게 확산됐다.
SK텔레콤 홍보팀 고창국 과장은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드는 통신업체 입장에서 볼 때, 보조금 지급은 신규가입자를 확보하고 시장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마케팅 비용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그것은 일반적인 마케팅 비용의 일환이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현재 가입자가 2800만명에 육박해 시장이 거의 포화상태에 이른 지금은 단말기보조금 성격이 초기 마케팅 성격에서 많이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시장 진입용 초기 투자 비용이라는 건 명분이 없는 셈이다.
게다가 그동안 단말기보조금의 폐해도 여러차례 지적됐다.
사실 '정통부가 처음부터 단말기보조금을 금지할 생각은 없었다'고 국회의 한 관계자는 말한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에 보조금 규제의 실효성 문제가 여론의 화두에 올랐고, 잦은 단말기 교체가 과소비를 부추기고 있으며, 휴대전화 부문의 5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국부유출이 되고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규제정책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다는 후문이다.
그동안 단말기보조금으로 인한 업계의 경상수지 누적적자도 상당액에 이른다.
특히 후발업체들의 경우는 시장점유율을 따라잡기 위해 상대적으로 보조금에 많이 의존했다.
98년부터 2000년 3월까지 이동통신사들의 보조금 지급총액은 대략 6조5934억원에 이른다고 보고됐다.
단말기보조금이 최고조에 달했던 99년의 경우 각 사업자가 보조금으로 지급한 금액이 연간 총 비용의 40%를 상회할 정도였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런 정부 정책에 표면적으로는 반대할 명분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각사 입장에서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특히 단말기보조금은 이동통신 시장의 흐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어, 이동통신사들은 자신의 처지에 따라 단말기보조금 금지를 ‘찬성’에서 ‘반대’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나누고 이에 대한 로비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것이다.
독점 방지냐 경쟁력 확보냐 SK텔레콤은 공식적으로는 정부 입장에 반대할 수는 없지만, 내심 단말기보조금의 부활을 바라고 있다.
선두기업인데다 돈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해 동안 1조4천억원의 순익을 냈다.
하지만 무엇보다 현재 무선인터넷이 가능한 CDMA20001x 망에 투자를 하고 있는 SK텔레콤으로서는 이 투자비용을 회수하기 위해선 이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는 전용 단말기가 하루빨리 보급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단말기보조금이 필요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통신시장이 내수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기술력 확보라는 명분으로 볼 때도 현재 침체되어 있는 통신시장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IMT-2000을 대비하고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통신시장의 순환이 필요하다.
현재 단말기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수요가 발생하지 않아 기술력 향상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통신시장의 순환이란, 일단 단말기 수요가 확대되어야 제조업체들의 숨통이 트이고, 이동사로서는 새로이 투자한 망 서비스의 이용자 확보를 통해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다는 논리다.
여기에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곳은 물론 삼성, LG를 포함한 단말기 제조업체들이다.
이들은 한국전자사업진흥회나 전경련 등의 단체를 통해 보조금 부활을 위한 로비활동을 활발히 펼쳐왔다.
하지만 KTF나 LG텔레콤은 이런 주장에 의구심을 표시한다.
명분은 그러할지 모르지만 단말기보조금의 역할이 그런 방향에 일조하기보다 시장 왜곡과 독점을 더욱 강화하게 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나머지 업체들은 현재 단말기보조금을 지급하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곳은 'SK뿐'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SK텔레콤의 경우 SK텔레텍을 통해 단말기를 직접 제조해 판매하고 있는데, 이럴 경우 기존의 컬러휴대전화를 훨씬 싼 값에 판매할 수 있다.
여기에 보조금까지 지급하면 파격적인 가격에 단말기를 공급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LG텔레콤의 한 관계자는 '사실 011이라는 브랜드 파워가 있어서 같은 가격으로는 경쟁이 안 된다.
따라서 2, 3위 입장에서는 더 싸게 팔아야 한다는 얘긴데, 그러기 위해선 적어도 SK가 쓴 단말기보조금보다 더 많은 보조금을 써야 된다'는 것이다.
이는 2, 3위 업체들의 재정 적자를 가중시켜 결국은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게다가 지금은 신규가입자를 늘리는 문제가 아니라 기존 가입자들을 뺏고 뺏기는 시장이 되었기 때문에 애초의 단말기보조금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에 KTF와 LG텔레콤이 이해관계를 같이 한다.
하지만 SK텔레콤도 할 말이 있다.
좀더 노골적으로 들어가면, SK측은 '정부에서 무엇 때문에 단말기보조금을 법으로까지 규제하려는지 근본적인 취지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의구심을 드러낸다.
'솔직히 정부는 통신시장의 경쟁체제와 3각구도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며,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하면서, 왜 적자에 허덕이는 업체들이 경쟁에 견딜 때까지 규제를 받으면서 발목을 잡혀야 하는가'고 토로한다.
단말기보조금은 어찌 보면 선두 업체의 고객에 대한 마케팅 권리이자 책임이고,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마케팅인데, 단지 2, 3위 업체와 격차가 벌어진다는 이유로 고객이 누릴 수 있는 권리마저 제한할 근거가 어디에 있느냐는 주장이다.
SK텔레콤의 전략개발실 서정업 과장은 '이번 중국 시장에서 삼성이 장비입찰 때 가격이 낮았음에도 들어간 것은 그렇게 진입비용을 들여서라도 남아 있는 최대의 시장에 진출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국내 1위 업체가 세계 시장에서 조금이라도 경쟁력을 가져야 종국적으로 국내 제조업체들이 해외 시장에 발판을 삼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SK의 주장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후발 주자인 LG텔레콤 역시 할말이 많다.
LG텔레콤 전략개발실 이중환 대리는 'SK가 그렇게 기술투자로 선두업체 역할을 하려고 했다면 세계 시장에서 우리가 가장 경쟁력이 있는 동기식 IMT를 해야지, 왜 비동기로 갔는가'고 반문한다.
그는 지배사업자로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선 단말기보조금에 투자되는 비용을 기술투자나 무선인터넷 활성화에 투자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토로했다.
보조금 금지 법제화 진짜 이유 정부로서도 딜레마에 부닥쳐 있다.
정부가 이번에 단말기보조금을 법제화까지 하려는 데에는 나름대로 속사정이 있다.
그동안의 단말기보조금 금지는 법률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사업자들의 이용약관에 의해 규제돼왔다.
하지만 이 규제는 통신위원회에서 약관 위반으로 과징금이 추징하는 정도에서 그치고 과징금도 상대적으로 적어 규제의 효용이 별로 없었다.
지난 5월 조사 때 SK텔레콤의 판매를 책임지는 SK글로벌은 많은 적발 건수에도 불구하고 다른 업체들보다 훨씬 적은 1억원의 과징금만이 책정되었는데, 이는 SK글로벌이 별정업체로 지정되어 있어 과징금 최고액이 1억원까지로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규제의 허점들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의 규제로는 형사처벌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법제화하는 것이 필요했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이를 법제화하는 것이 정부로서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법제화하게 되면 나중에 다시 보조금을 부활시키게 되는 상황이 올 경우 절차가 까다로울 뿐 아니라 부담도 안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정부쪽에서는 이를 법제화하되 예외조항을 둔다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장관의 고시로 예외적인 경우에 보조금을 허용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는 것이다.
SK는 이에 대해서도 불만을 터뜨린다.
'장관 고시를 이용한다는 것은 사실상 정치력을 이용하겠다고 하는 것인데 이는 더 속보이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밖에 기본적으로 보조금을 규제하는 것은 시장 원리에도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공정경쟁과 자율경쟁을 말하면서 정부의 이러한 규제는 모순된 정책이라는 주장이다.
한편 이런 보조금 지급 금지 법제화가 추진되자 시민단체들을 비롯한 소비자측에선 그동안 계속 제기해왔던 요금인하에 대해 더욱 거세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
무선인터넷 활성화가 더딘 이유 중에 오히려 요금이 비싸다는 것이 더 실질적인 이유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도 정부는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
가뜩이나 적자에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는 LG텔레콤이 제자리를 찾기도 전에 요금인하를 단행하게 되면, 수익구조가 악화된다는 것이 그 주요 이유다.
하지만 LG텔레콤을 보호하기 위한 요금인하를 당장 단행하지 못하는 이런 상황은 1위 업체인 SK텔레콤에게 반사 이익을 안겨주고 있는 셈이다.
LG텔레콤을 키우기 위한 정통부의 요금유지 정책으로 가장 가입자가 많은 SK텔레콤이 사실상 가장 많은 이익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들이 정책의 실효성 면에서 ‘통신시장 3강구도 정착’과는 다르게 이미 1위를 점유하고 있는 SK텔레콤을 계속 살찌우자, 정부가 다시 들고나온 것이 통신업자들에게 규제를 차등적으로 하는 ‘비대칭 규제’다.
국책산업인 동기식 CDMA(부호분할 다중접속) 산업발전을 위해 후발사업자인 LG텔레콤이 20%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한시적 비대칭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구체적으로 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총괄요금 규제, 번호우선선택권 및 번호이동성 허용, 상호접속료 차등적용, 전파료 등 각종 부담금 감면, 주파수 총량제 도입 등과 같이 차등 규제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물론 SK텔레콤는 적극 반대다.
3위 사업자인 LG텔레콤은 선진국과 비교할 때 생존에 필요한 가입자 기반과 수익성을 보유하고 있고, 동기식 IMT-2000사업권 획득과정에서 충분한 수준의 ‘우대조치’를 받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지원방안을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SK측의 주장이다.
정통부가 어찌 보면 시장 경쟁체제에 역행하는 듯한 비대칭 규제를 주장하고 단말기보조금을 금지하는 기저에는 통신시장의 독점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LG텔레콤 홍보팀 강신구 대리는 '단기적으로 보면 보조금 같은 서비스가 1위 사업자가 고객에게 줄 수 있는 적극적인 혜택이라고 말하지만, 장기적으로 독점체제가 되면 독점업체를 견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에게 돌아올 횡포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주장한다.
사실 정통부의 명분도 통신시장에서의 독점을 막는 것이지만, 현재 구도가 실패할 경우 동기식 서비스를 고집한 정통부의 ‘정책 실패’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서로 이해관계가 맞닿아 있는 셈이다.
이렇게 보면 단말기보조금 현상은 단순한 정책 이상으로 통신시장의 성장과 왜곡의 궤를 같이해오고 있는 요소 중 하나인 셈이다.
문제는 단말기보조금의 법제화가 과연 정통부가 말하는 대로 독점을 규제하고, 공정한 경쟁을 유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거기다 그동안 논쟁의 밖에 있던 소비자의 선택권을 얼마나 수렴하면서 진행하고 있는가 하는 것도 문제다.
사실 법제화라는 것은 여간 부담스러운 작업이 아니다.
정확히 따지자면 단말기보조금의 긍정적인 면을 어떻게 살리고 시장을 왜곡시켜온 부정적인 요소를 어떻게 제거해야 하는가가 본질적인 문제일 것이다.
그렇다면 정작 문제의 해결은 단말기보조금 그 자체가 아닌 다른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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