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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비즈니스] BM, 발명? 아이디어인가?
[e비즈니스] BM, 발명? 아이디어인가?
  • 김윤지
  • 승인 2001.02.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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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특허출원 전년 대비 16배 증가…인터넷산업 발전 위해 정립 시급
지난 1월 말 잉카인터넷 www.inca.co.kr은 안철수연구소 www.ahnlab.com에 경고장을 보냈다.
안연구소가 홈페이지를 통해 제공하는 ‘마이파이어월’ 서비스가 잉카인터넷이 99년 12월 특허출원한 ‘엔프로텍트’ 서비스와 같으니 서비스를 중지하라는 내용이었다.
두 서비스는 모두 별도의 프로그램 설치 없이 홈페이지에 접속만 하면 PC의 정보유출을 자동으로 검색·차단해주는 개인 대상 ASP 서비스이다.
안연구소는 “잉카인터넷이 출원한 특허는 매우 포괄적이라 등록될 가능성이 없고, 만일 이 특허가 취득된다면 모든 ASP 사업이 중단돼야 할 것”이라며 서비스 중지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잉카인터넷은 6월 말쯤 특허등록이 결정되면 강력한 법적 조처를 취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비즈니스 모델(BM) 특허를 둘러싸고 또다시 인터넷 업계가 술렁인다.
98년 이후 미국에서 시작된 비지니스 모델 특허논쟁은 프라이스라인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역경매’ 분쟁, 아마존과 반스앤드노블의 ‘원클릭’ 분쟁 등을 거쳐 2000년 초반 우리나라에도 상륙했다.
마침 벤처 열풍을 타고 벤처자금을 지원받기 위한 ‘묻지마 출원’, 먼저 출원한 비슷한 사업모델의 공격을 피하기 위한 ‘보험식 출원’ 등 비지니스 모델 특허출원이 유행처럼 번졌다.
99년 513건에 불과하던 비지니스 모델 특허출원은 2000년에는 16배나 증가한 8302건에 이르렀다.
특허법 발명 규정에서 비롯 비즈니스 모델 특허출원이 봇물 터지듯 늘어나면서 우려했던 일들도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잉카인터넷과 안연구소의 공방처럼 특허로 인정받기도 전에 출원만으로 권리를 주장하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터져나온다.
비슷한 서비스가 모두 특허로 인정받은 사례도 발생했다.
얼마 전 월드포스팅 www.worldposting.com이 출원한 특허가 등록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이버링크 www.cyber-link.co.kr는 발끈했다.
두 회사 서비스가 모두 전자우편을 실물우편으로 바꾸어 배달해주는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까지를 비지니스 모델 특허로 인정하느냐에 따라 유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간의 희비는 엇갈린다.
‘비즈니스 모델이 특허 대상이 되는가’란 논란은 특허법에서 말하는 ‘발명’ 규정에서 비롯한다.
특허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발명으로서 인정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특허법에 따르면 발명이란 “자연법칙을 이용한 기술적 사상의 창작으로서 고도한 것”으로 규정된다.
1+1=2와 같은 자연법칙을 이용해 물리적으로 변화를 이뤄내야 발명이 된다는 말이다.
영업방식과 같은 아이디어나 컴퓨터 프로그램 그 자체는 발명이 될 수 없다.
컴퓨터 프로그램은 논리적 절차를 기술한 일종의 아이디어일 뿐 물리적으로 어떤 변화를 이뤄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하드웨어에 넣어 실제로 물리적 변화를 구현하는 매체로 특허를 청구하면 발명으로 인정된다.
계산 프로그램은 발명이 아니지만 그 프로그램을 담은 계산기는 발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발명한 것이면서(발명의 성립성) 새로운 것이며(신규성)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어려운 것이면(진보성) 특허를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인터넷을 이용한 비즈니스 모델이 과연 특허법에서 규정한 발명에 해당하느냐 하는 것이다.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은 그냥 아이디어에 불과하다는 문제제기다.
지난해 3월 진보넷 www.jinbo.net이 삼성전자가 취득한 ‘인터넷상에서의 원격교육 방법 및 그 장치’의 특허에 대해 무효소송을 낸 것도 이런 근거에서였다.
진보넷 오병일 인터넷사업팀장은 “교육 데이터를 서로 주고받는 방식은 새로운 발명이 아니라 보편적 기술을 활용한 아이디어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것으로 독점권을 인정하면 산업의 발전을 막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초의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 특허 무효소송으로 관심을 모았던 이 소송은 최근 특허심판원 1심 판결에서 기각 판정을 받았다.
주심을 맡았던 권태복 심판관은 “서버와 사용자 사이에 데이터가 오가는 과정에서 등급을 내주고 점수를 평가하는 것을 물리적인 변환이 일어나는 것으로 인정해 발명이 성립하는 것으로 보았다”고 밝힌다.
그러면서도 이런 주문을 덧붙였다.
“발명의 성립성 여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힘들었다.
상급심에서 비즈니스 모델이 발명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를 가르는 기준을 내려주었으면 좋겠다.
” 그는 “이번 심판의 경우 청구인이 ‘발명의 성립성 여부’에 대해서만 문제를 제기해 그것만 가지고 판단했지만 다른 요건까지 감안했다면 어떤 결과를 내렸을지 확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허의 조건인 신규성이나 진보성 여부까지 가지고 판단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현재 진보넷은 특허법원에 항소한 상태이다.
뿌리가 흔들리는데 그 위의 가지라고 튼튼할 리 없다.
비즈니스 모델이 과연 특허 대상이 되는가 하는 논란이 분분하다보니 세부 심사기준을 명확히 하기도 어렵다.
그 결과 사이버링크와 월드포스팅의 경우에서와 같이 특허가 남발되고 있다는 지적이 만만찮다.
독점권 둘러싸고 의견 분분 비즈니스 모델이 특허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이런 법규정보다 좀더 근본 이유에서 강하게 나온다.
특허제도는 발명을 보호해 기술을 촉진시킨다는 목적에서 도입된 것이다.
자연법칙을 이용한 기술이 산업을 주도하던 사회에선 이런 보호장치가 기술촉진을 가속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인터넷 산업에 독점권을 부여했을 때 산업 발전을 촉진시킬 것인지는 의문이라는 주장이 많다.
“고도의 기술분야에서는 상호작용을 통해 기술발전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특허제도가 기술혁신을 저해한다는 분석도 있다.
인터넷 산업은 특허 없이도 빠르게 변화, 발전하는 산업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 남희섭 변리사 말이다.
특허제도는 독점을 보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술의 사회적 공헌을 위해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이 더 유리한지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모델도 특허를 통해 보호받아야 한다는 쪽에서도 할 말은 있다.
어떤 산업이든지 초기에는 혁신적인 지식을 보호함으로써 발전했다는 선례를 든다.
특허청 컴퓨터심사과 오흥수 서기관은 “국제적으로 비즈니스 모델 특허를 인정하는 추세인데 우리만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며 명백한 부작용이 드러나지 않는 이상 비즈니스 모델 특허를 인정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오히려 아쉬운 것은 특허를 출원하는 사람들이 명세서를 꼼꼼히 작성하지 않아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마저 놓치거나 너무 포괄적으로 권리를 행사하려 하는 것이라고 짚는다.
하지만 국제 추세나 기술혁신 보호를 들어 특허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특허제도는 속지주의이기 때문에 자국 안에서는 충분히 자유롭게 법을 운용할 수 있다.
미국 프라이스라인의 역경매 모델이 우리나라에선 특허로 인정받지 않은 것이 그 예다.
혁신적 기술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도 어차피 자본의 논리에 끌려가게 된다.
특허를 인정받기 위해 제출하는 명세서에 얼마나 돈을 많이 들였는가가 나중에 소송으로 번졌을 때 우열을 가늠하곤 하기 때문이다.
기술혁신도 개인보다는 대기업이 이루는 경우가 훨씬 많아 결국 대기업의 독점을 가속화할 뿐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와 같이 불안정한 제도에서 비즈니스 모델 특허는 두가지 함정이 있다.
특허의 범위가 지나치게 포괄적이면 후발 경쟁자들의 진입을 인위적으로 막는 결과를 초래한다.
건전한 경쟁을 통한 산업발전을 저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특허범위를 좁혀놓으면 특허를 피해갈 구멍이 많아지기 때문에 특허권의 존재가치를 잃게 된다.
너무 엄격할 수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풀어놓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지는 꼴이다.
이 때문에 비즈니스 모델 특허 무용론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아직은 비즈니스 모델 특허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특허 유령’이 언제 본색을 드러낼지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21세기 비즈니스인 인터넷 산업의 발걸음이 20세기 법과 논리에 발목을 잡혀 기우뚱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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