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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오감] 4.시각-색감.질감
[디지털&오감] 4.시각-색감.질감
  • 이경숙
  • 승인 2000.08.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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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과 1로 만드는 무한색체의 세계
사물의 표면 구현은 거의 완벽수준…정교하고 다양한 인체표현이 3D 최대 화두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평생 ‘아를르의 붉은 포도밭’이란 작품 하나를 팔았다.
그것도 한달 생활비도 못되는 헐값이었다.
이제 고흐의 모든 작품은 수백억원대에 팔린다.
98년 경매에 나왔던 ‘수염없는 예술가의 초상’ 낙찰가는 우리나라 돈으로 930억원이었다.
억만장자가 아닌 한 고흐의 꿈틀대는 붓선과, 적녹의 격렬한 색채가 살아 있는 작품을 소유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천일야화에 나오는 알라딘의 요술램프라도 얻으면 모를까.그러나 우리에겐 요술램프와 요정 지니만은 못해도 꽤 쓸 만한 요술상자가 있다.
컴퓨터와 3차원 영상기술이다.
컴퓨터는 고흐보다 더 ‘고흐’답게 붓질하고, 로댕보다 더 ‘로댕’답게 끌질한 작품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우아한 미술품 경매장은 머지않은 미래에는 작품의 진품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 싸우는 입찰자들의 목소리로 청계천 시장바닥처럼 될 수도 있다.
컴퓨터가 재현 못하는 색과 형태는 없다? 최근 컴퓨터그래픽 연구자들 사이에선 유명작가의 작품이 가진 패턴, 그리고 사람의 피부색과 질감이 가진 패턴을 발견해 재현하는 기술이 주요 이슈다.
7월 마지막주 미국 루이지애나에서 열린 시그그래프 2000 www.siggraph.org/s2000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데이비드 세일신에게 ‘컴퓨터그래픽 발전상’을 줬다.
세일신의 작품이 컴퓨터로 펜 또는 잉크 삽화와 수채화를 그리는 새로운 분야에서 획기적인 업적을 이뤘다는 것이 수상이유였다.
이번이 27회인 시그그래프는 컴퓨터그래픽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행사다.
세일신은 루카스필름과 픽사, 마이크로소프트 등에서 일하면서 필름 제작과 알고리즘을 연구해왔다.
그가 이번 시그그래프에서 발표한 기술은 ‘에셔화하기’ www.cs.washington.edu/homes/csk/tile/escherization.html다.
에셔화하기(escherization)란 네덜란드의 M.C 에셔가 자신의 회화작품에서 사용한 규칙을 컴퓨터로 찾아내 다른 묘사대상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든 알고리즘이다.
가령 에셔는 물고기의 단순한 형태를 반복하고 그 사이를 매개하는 변수로 배 모양을 집어넣어 촘촘하게 짜인 삽화타일을 만들어냈다.
세일신은 이 법칙을 컴퓨터 계산과정으로 처리한다.
세일신은 익살스럽게도 에셔의 자화상을 ‘에셔화’해서 공개한다.
30년 전에 숨을 거둔 에셔도 벌떡 일어날 만큼 에셔다운 발상과 표현이 아닌가. 미켈란젤로의 커다란 조각상들을 3차원 영상으로 스캐닝한 작품도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컴퓨터가 만든 다비드의 영상과 실제 미켈란젤로 다비드상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닮았다.
디지털 마태(matthew)상의 끌질은 원작 못지않게 거칠게 살아움직인다.
‘디지털 미켈란젤로’라는 이 프로젝트 graphics.stanford.edu/project/mich/에서 연구자들은 5m가 넘는 조각상들의 표면과 색깔을 디지털화해서 컴퓨터 안에 담는다.
스캐닝을 하며 컴퓨터는 500여년 전 미켈란젤로가 작업실에서 어떤 끌을 들고 얼마만한 힘을 가해 대리석조각을 팠는지 분석해낸다.
그리고 정교한 3차원 영상으로 그것을 묘사(렌더링)한다.
가장 세밀한 작품인 디지털 다비드는 20만개의 다각형과 7천개의 색채이미지로 재현됐다.
시그그래프에서 발표된 작품들을 보면 컴퓨터그래픽이 하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막 피어나는 구름에서 비를 쏟아낼 듯한 구름까지, 매끈한 푸른색 새틴 테이블보에서 폭신한 붉은색 벨벳 테이블보까지 컴퓨터그래픽으로 거의 모든 질감과 색감을 표현할 수 있다.
단 구름과 옷감의 외형을 결정하는 규칙을 찾아내 컴퓨터 안에 넣어준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예컨대 구름을 표현하기 위해서 연구자는 구름의 소멸, 바람의 작용, 시뮬레이션의 속도 향상, 구름 움직임의 제어 따위를 분석해야 한다.
또 새틴이나 벨벳을 표현하기 위해선 한올한올을 들여다보며 특유의 개성을 연구해야 한다.
‘빛이 물체의 표면에서 어떻게 반사되는가’ 하는 것이야말로 3차원 컴퓨터그래픽 연구자들이 풀어야 할 공통화두다.
컴퓨터에 대입할 일정한 규칙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주로 렌더링이라고 부르는 표현기법이 여기에 사용된다.
모델의 텍스처(textures), 마감질감(finishes), 색상(colors) 및 광원(lights) 정보를 이용해서 글자 그대로 모델을 묘사(rendering)하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모델의 표면 특성인 텍스처, 질감, 색상을 결정하는 과정을 셰이딩(shading)이라고 하고, 광원정보를 결정하는 과정을 라이팅(lighting)이라고 한다.
이러한 정보를 이용하여 모델을 최종적으로 이미지로 그리는 과정이 렌더링이다.
사람의 피부 표현이 가장 어려워 그러면 이런 기술로 사람도 디지털로 복제할 수 있지 않을까? 칠순 가까운 노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한테서 그의 전성기 시절 얼굴에 대한 초상권을 사서 디지털 복제한다면, 우리나라 영화배우 한석규와 젊은 테일러가 애절한 사랑을 나누는 스토리의 영화를 찍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실현불가능한 공상일 뿐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디지털기술과 연구자라 해도 사람의 얼굴과 머리카락을 표현할 때는 한계에 부딪힌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모습에는 유달리 민감하게 반응하는 탓이다.
우리는 동료의 붉어진 뺨을 보며 저것이 뜀박질 때문인지 쌈박질 때문인지까지 분별할 수 있다.
심지어 웃는 얼굴 저편에 숨겨놓은, 마뜩잖아 하는 본심도 읽어낸다.
늘 함께 생활하면서 피부의 미묘하고 다양한 차이를 학습한 덕분이다.
이것을 디지털화할 때의 정보량은 이미 멸종된 공룡이나 어쩌다 텔레비전에서 보는 여우원숭이 따위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사이버가수 아담이나 사이다가 늘씬한 팔등신으로 자연스럽고 멋진 율동을 선보여도 우리는 그들을 ‘동족’이라고 느끼지 못한다.
사람 피부를 디지털로 복제하기 어려운 가장 큰 요인은 일정한 변화규칙이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래픽디자이너는 상황이 변할 때마다 일일이 모습의 변화를 그려야 한다.
장난감이나 구름처럼 일정공식에 변화치만 입력하는 방식으로는 사람 피부를 실감나게 표현할 수 없다.
엄청난 기술력과 자본력을 가진 픽사나 루카스필름에서조차 인간이 주인공인 디지털애니메이션을 만들지 않는 이유를 알 만하지 않은가. 서울대 휴먼애니메이션연구단 graphics.snu.ac.kr이 주력하고 있는 분야가 바로 인체 묘사다.
이들은 최근 에스엔유 헤어(SNU-HAIR)라는 머리카락 애니메이션 기술을 내놔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이 연구단 단장인 고형석 교수는 컴퓨터로 계산해 처리하기에는 사람 모습이 너무 다양하다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사람의 머리카락은 아주 얇고 많다.
2만가닥에 이를 정도다.
게다가 사람의 피부색은 빛과 심리적 물리적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빛이 사람의 표면에서 어떻게 반사하는가에 대한 공식을 찾는 것이 이 연구단의 주요과제다.
고화질 영상기술은 가상현실의 공통기반 이것은 가상현실 환경에서 더 어렵다.
체험자와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해야 하기 때문에 영상이 정교하면 처리해야 할 데이터량이 너무 많아져 시스템 속도에 문제가 생긴다.
영화 <타이태닉>이나 <다이너소어> 같은 정교한 그래픽은 컴퓨터가 하루종일 계산해도 한 프레임 정도밖에 만들 수 없다.
1초당 15프레임으로 구성되는 가상현실을 그 정도의 화질로 만드는 것은 아직 힘들다.
물론 지금도 가상현실 환경에서도 자연과 비슷한 색과 질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디지털로 복원된 문화재들은 실감나는 3차원 영상을 구현해 체험자들을 과거로 초대한다.
우리나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신라 복원, 디지털선일이나 시공테크 같은 업체들의 백제 복원 프로젝트들은 상당히 높은 기술수준을 자랑한다.
디지털로 복원된 문화재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실제 존재하는 문화재의 사진으로 착각할 만큼 정교하다.
미국 일리노이대학 전자시각화연구소(EVL)
www.evl.uic.edu의 ‘라라 프로젝트’는 현존하거나 사라진 문화재들을 디지털로 복원해 가상공간에 시공을 초월한 문명세계를 구축한다.
EVL은 98년 중국의 돈황석굴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고대 그리스와 20세기 초의 미국을 재현한 작품들 www.startap.net/igrid2000을 내놨다.
전문가들은 조만간 3차원 애니메이션과 가상현실의 화질 차이가 없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EVL의 박경신 연구원은 ‘PC병렬 연결방식’ 등 PC기반 가상현실 시스템들이 완성되면 더 싸고 빠르게 가상현실을 구현할 수 있다고 귀띔한다.
즉 비싼 워크스테이션이 없어도 3차원 애니메이션 수준의 가상현실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그래픽카드를 사용해 PC에서 저가형으로 가상현실을 구현하는 기술은 일반화할 수 있는 단계다.
덕분에 네트워크와 가상현실, 영화, 텔레비전은 하나의 솔루션으로 통합되고 있다.
한국가상현실 www.kovi.com 장호현 대표는 점차 우리 기업들도 선진국과 경쟁해볼 만한 환경이 되어가고 있다고 자신한다.
자체기술만 개발해 가지고 있다면 말이다.
조지 루카스 같은 거대자본가들이나 점유하고 있던 ‘요술상자’, 디지털기술이 네트워크를 돌아다니며 평범한 사람들의 꿈을 이뤄줄 날이 올까.
빛, 물체의 표면, 시각이 무한대의 이미지를 만드는 3요소 “그렇게 저녁이 온다/이상한 푸른빛들이 밀려오는 그 무렵 나무들의 푸른빛은 극에 이르기 시작한다/바로 어둠이 오기 전 너무나도 아득해서 가까운/혹은 먼 겹겹의 산 능선/그 산빛과도 같은 우울한 블루/이제 푸른빛은 더이상 위안이 아니다…(박남준, ‘저녁 무렵에 오는 첼로’ 중)” 시인은 푸른빛을 본다. ‘이상한’ 그 ‘푸른빛’은 어둠이 오기 전 ‘우울한 블루’가 된다. 시인의 눈은 푸른빛과 블루의 미묘한 차이를 잡아낸다. 그것은 보는 사람의 ‘시각’이 빚어낸 차이다. 우리말에서 ‘푸르다’는 생명력, 신선함, 희망 같은 긍정적 정서들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영어 ‘블루’는 다르다. 부정적 정서가 강하다. ‘필링 블루’(feeling blue)가 ‘우울하다’는 뜻인 것처럼 말이다. 사실 색은 사람이 ‘느끼기’ 때문에 존재한다. 색은 물체의 고유한 특성이 아니다. 사람 말고 다른 동물들은 사람이 보는 색깔로 사물을 보지 못한다. 녹색(green), 청보라색(blue-violet), 주홍색(orange-red)을 감지하는 세포(광감안료)들이 우리 눈의 망막에만 있기 때문이다. 이 세포들이 일으킨 전기적 충격은 시신경을 흥분시킨다. 시신경섬유는 흥분을 뇌의 여러곳에 전달한다. 그리고 뇌는 이것을 조합해 하나의 영상을 형성한다. 이 과정에 일어나는 반응들이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우리가 보는 색은 절대로 ‘절대’적이지 않다. 심지어 사람들이 똑같은 코카콜라 캔을 보고 있다고 해도 그들이 정말 똑같은 빨강색을 보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극단적인 예로 적녹색맹은 녹색과 빨강의 차이를 느끼지조차 못한다. 사람들 100명 중 7명이 그렇다. 외부의 빛이 어떠한가도 색감 차이를 일으킨다. 하루종일 나무 아래 누워 이파리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인상파 화가가 아니더라도 시시각각 변하는 색깔을 느낄 수 있다. 한낮의 나뭇잎은 하늘 중앙에서 내리꽂히는 햇살을 받아 봄철 갓 솟은 어린 잎마냥 푸른 잎맥이 비치는 연둣빛으로 보인다. 저녁 무렵 이파리는 초가을 침엽수림처럼 짙푸르게 보인다. 한밤이 되면 중학생의 밤송이 머리카락처럼 검어진다. 물론 나뭇잎 색이 변하는 건 아니다. 빛의 양이 달라져서 생기는 변화다. 색감은 주변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아래 그림을 보자. 여기에 몇가지 빨간색이 쓰였을까? (리처드 아누스키비츠, 1963년)라는 제목처럼 이 작품의 빨간색은 세가지로 보인다. 그러나 사실 배경에 쓰인 빨간색은 모두 같은 색이다. 다만 중간 파란색, 중간 녹색, 노란색 점들이 빨간색을 다르게 보이게 할 뿐이다. 질감도 중요한 시각적 감각이다. 가령 사람 피부의 느낌을 묘사하는 단어를 꼽아보자. 우둘투둘, 매끈, 보송보송, 거칠, 까끌까끌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렇게 눈으로 느끼는 질감은 빛이 물체의 표면에 부딪혀 흩어지거나 반사됨으로써 지각된다. 따라서 빛을 받아들이는 위치, 즉 시각이 달라지면 질감도 달라진다. 옆자리 친구 볼에 우둘투둘하게 난 물사마귀를 정면에서 보면 잘 안 보일 때가 있다. 정면과 측면에서 반사되는 빛이 다르기 때문이다. 빛, 물체의 표면 특성, 사람의 시각. 이 세가지 요소가 물체의 색감과 질감을 결정한다. 이것은 유한한 세계를 바탕으로 무한한 문학작품과 회화, 조각, 사진들이 나올 수 있는 이유다. 그리고 동시에 디지털로 물질세계를 표현하려는 과학자들과 디자이너들을 애먹이는 요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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