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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타임사이트] '진짜 ' 동화 고르기
[킬링타임사이트] '진짜 ' 동화 고르기
  • 김윤희
  • 승인 2001.05.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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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childweb.co.kr
엄마손을 잡고 길을 걸으면 거리의 간판 글자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때. 대개가 그렇듯이 나 역시 ‘세계 명작 전집’에 둘러 쌓여 자랐다.
그 곳에는 백설 공주의 독사과도 있었고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도 있었지만 그저 디즈니의 빨갛고 노란 빛깔의 그림만 기억날 뿐 정작 내 기억을 오래도록 붙들고 있던 것은 다분히 ‘개그적인’ 이야기였다.
예를 들면 까만 곱슬머리를 가진 사내애가 호랑이와 쫓고 쫓기면서 야자수 나무를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다 그만 뜨거운 태양아래 버터가 되어 버린 호랑이. 사내애는 ‘호랑이로 만든 버터’를 엄마에게 갖다 주고 엄마는 그 버터로 맛있는 핫케익을 구워주었다는? 유치원에서 졸업 선물로 받은 동화책은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이야기였다.
이미 엄마를 잡아먹은 호랑이는, 썩은 동아줄을 잡고 우물에 빠져 버렸지만 착한 오누이는 튼튼한 동아줄을 잡고 하늘에 올라와 해와 달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 전에는 해도 없고 달도 없었나? 더군다나 해와 달이 된 남매는 행복했을까? 그림책 속의 남매는 해 그림 속에서, 달 그림 속에서 웃고 있었지만 웬지 참 가여운 웃음이다.
‘신’은 참 잔인한 것도 같다.
인어 공주는 언니들이 건네 준 단도에, 사랑하는 사람의 피 한방울만 묻히면 될 것을. 그걸 못하고 스스로 바닷물에 빠져 죽고 만다.
인어 공주의 마음도 몰라주고, 딱히 기억나는 대사 한 마디 안 하는 ‘그 남자’가 과연 그럴 가치가 있었나? 난 인어 공주에게 외쳤다.
“저 자식. 까짓 죽여버려!” 디즈니판 ‘인어 공주’를 사다 준 우리 어머니는 내 마음 속 이런 외침을 알았을까? 알면 썩 반가와 하지 않았겠지만. 친구들 중 유달리 일찍 결혼한 친구는, 보고 있자면 다리에 힘이 풀릴 만큼 귀여운 딸 쌍둥이를 두었다.
양배추 인형을 닮은 그 집 꼬마들은 ‘신기한 한글 나라’ 나, ‘신기한 영어 나라’를 일찍 배운 덕분에 어느새 제법 어려운 동화책도 척척 읽어낸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 세계는 70년대에 태어난 나보다 훨씬 다채로와 그림책으로 읽고 비디오로 보는 것을 반복한다.
그들은 내가 알지 못했던 인어 공주의 목소리까지 들은 것이다.
하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풍성하게 주름폭이 잡힌 원피스를 좋아하는 그 집 꼬마들은 외출 할 때면 ‘공주 옷 입을래’ 하고 떼를 쓰고 ‘미스 코리아’ 가 되겠다는 야심을 타박하면 금새 풀이 죽는다.
아이 엄마는 남들처럼 알차게 한 질 갖춰놓은 ‘세계 명작 동화’ 아니면 텔레토비 밖에 없다고 투덜거린다.
(텔레토비 때문에 ‘착한 어린이 비만 콤플렉스’라는 것이 유행이라는데 정말일까?) 아이들의 ‘진부함’을 순전히 ‘세계명작 동화 전집’ 탓으로 돌리는 아이 엄마는 ‘세계 명작’이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것은 때로 ‘디즈니 전집’과 헛갈리기도 한다) 읽히고 나면 시시하고 안 읽히자니 허전한 딜레마이다.
이에 대해 ‘어린이 문학 - 왼발 오른발’ 사이트 운영자 오진원씨는 충고한다.
“세계명작을 아이들에게 읽으라고 권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서, 먼저 어른들이 다시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지금 다시 봐도 좋은 작품이라 생각된다면 아이들에게 충분히 권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명작들만을 읽어보고 결정하지 말고 좋은 우리 창작도 함께 읽어보고 견주어 봤으면 한다.
어린 시절 우리 창작을 접할 기회가 없이 세계 명작류에만 익숙해진 어른들로서는 선입견을 갖기 쉽다.
” 그리고 ‘이 책은 꼭 읽힙시다’라는 메뉴에서 ‘세계명작 시리즈’ 세대의 부모들에게 연령별로 아이들에게 읽힐만한 책을 세심하게 골라준다.
하지만 이 사이트에는 부모가 아니라도 속이 후련해지는 수다가 꽤 있다.
오진원씨의 개인 칼럼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어린이 책에 대한 고정 관념’도 그 중 하나이다.
그래서 나는 ‘위인전’이라는 말 대신에 ‘인물 이야기’라는 말을 사용하고 싶다.
‘위인’이라는 틀에 가려 그 사람의 본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한 사람의 ‘인물’로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에디슨이 거위 알을 품은 경우처럼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은 저지를 수 있는 일화가 어느 틈에 위인이 될 소지를 보여주는 일화로 변질되지 않도록 말이다.
그리고 그 인물의 고민과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사실적으로 그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 읽었던 그 수많은 ‘위인’들은 어떤 역경이 있어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성경속의 하나님의 아들도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갈등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그 위인들은, 아니 그 위인전들은 행복한 시간보다 힘겨운 시간이 더 많았던 어느 성장기에서도 결코 떠오르지 않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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