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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24시간 증권거래소 ‘ECN’
[머니] 24시간 증권거래소 ‘ECN’
  • 이정환
  • 승인 2001.02.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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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개정 따라 전자거래시장 설립 가능…사이벡스·유클릭·증권사 컨소시엄 등 경합
사이벡스 이충우 사장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1년 전부터 준비해왔던 전자거래시장(ECN)이 하루 아침에 물거품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여차하면 사업모델을 송두리째 바꿔야 할 판이다.


전자거래시장은 증권거래소의 도움없이 주식을 거래하는 시장으로 미국에서는 거래량이 나스닥의 35%에 이를 만큼 활성화돼 있다.
전자거래시장이 열리면 한밤중에도 주식을 사고팔 수 있게 된다.
바야흐로 24시간 증권거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지난해 정부가 전자거래시장을 허용할 계획이라는 소문이 나돌 때만 해도 이 사장은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국내 처음으로 모의 전자거래시장을 만들어 6개월 가까이 성공적으로 운영해온데다 안팎으로 안정성을 충분히 검증받았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전자거래시장이 정식으로 허용된다면 이러한 선점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당장이라도 업무를 시작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치곤 했다.

28개 증권사, 컨소시엄 구성 발표 그러나 최근에 들려온 몇가지 소식들은 이러한 예상을 크게 빗나가게 했다.
28개 증권사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직접 전자거래시장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동안에도 비슷한 움직임은 있었지만 이처럼 모든 증권사들이 하나로 뭉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 컨소시엄은 증권사마다 5억원씩을 출자해 자본금 140억원의 한국ECN증권(가칭)을 설립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실무 담당자에 따르면 4월까지 회사설립 절차를 마무리짓고 늦어도 7월까지는 시스템 구축을 비롯한 모든 준비를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갑자기 사이벡스의 사업모델은 꼬이기 시작했다.
전자거래시장의 최대 고객이 될 증권사들이 이처럼 하나로 뭉치게 되면 끼어들 여지가 좁아진다.
이래저래 이 사장은 근심에 싸여 있다.
“증권사들을 한꺼번에 적으로 삼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공들여 만든 시스템을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이죠. 틈새시장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 걱정이 많기는 유클릭 김한 사장도 마찬가지다.
김 사장은 지난해 6월 직접 미국에 건너가 아일랜드ECN과 업무제휴를 맺고 왔다.
아일랜드ECN은 나스닥 거래량의 11.5%를 차지하는 전자거래시장이다.
직원은 30명밖에 안되지만 하루 매출이 3억원에 이른다.
김 사장은 공신력과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아일랜드ECN의 시스템을 가져다 고쳐 쓸 생각이었다.
사이벡스와 경쟁은 피할 수 없겠지만 어느 정도 시장을 나누어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유클릭의 사업계획서를 보면 2003년까지 전체 거래대금의 10% 규모만큼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들어 있다.
전망이 맞아떨어진다면 증권거래소가 받고 있는 수수료의 절반만 받아도 1년 매출이 180억원을 넘어서게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장밋빛 전망은 나름대로 설득력을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실현불가능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 회사 이경하 이사는 증권사들 컨소시엄과 정면으로 맞서서는 승산이 없다고 보고 있다.
“대신 컨소시엄에 솔루션을 납품할 수도 있을 테고 아니면 몇몇 증권사들을 잡아 따로 컨소시엄을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 물론 쉽지는 않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증권사들은 시스템을 직접 구축할 계획이다.
위험을 무릅쓰면서 컨소시엄을 깨고 나올 증권사를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증권사들 컨소시엄은 아직까지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컨소시엄에 한발을 들여놓았을 뿐 다들 큰 기대는 하지 않는 눈치다.
이들은 지난달 대표이사 공채를 실시했는데 아직까지 결과를 밝히지 않고 있다.
워낙 급하게 만들어진 터라 조직도 전혀 갖춰지지 않은 상태다.
컨소시엄의 실무 관계자에 따르면 구체적 사업계획은 대표이사가 선임된 다음에나 가닥을 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컨소시엄이 이 모양이니 사이벡스나 유클릭은 애가 탈 수밖에 없다.
증권거래소 “경쟁력 없다” 여유 전자거래시장의 첫걸음은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개정 증권거래법에 따르면 전자거래시장에서는 증권거래소에서 결정된 종가로만 거래가 이루어지게 된다.
증권거래소의 시간외매매가 몇시간 연장된 거나 마찬가지다.
가격이 움직이지 않는데 거래가 활발히 일어날 턱이 없다.
증권거래소 시장제도과 윤덕현 팀장은 “다음날을 생각해서 미리 사두거나 팔겠다는 투자자들이 몰리겠지만 그것도 뉴스에 따라 한쪽으로 치우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거래량이 어느 정도 받쳐주지 않는다면 전자거래시장은 한동안 개점휴업 상태를 맞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증권거래소가 이처럼 여유있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전자거래시장이 마땅히 내세울 만한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전자거래시장이 파고들 틈새시장이 크지 않아요. 투자자들로서는 굳이 증권거래소를 떠나 전자거래시장을 찾아올 이유가 없겠죠.” 컨소시엄 실무 담당자의 말이다.
결국 증권거래소와 정면으로 맞서서는 승산이 없고 증권거래소의 개장 시간을 피하는 것이 그나마 유일한 차별화가 될 수 있다.
그것도 지금처럼 그날 종가로만 거래가 이루어진다면 곤란하고 어느 정도 가격변동이 가능해야 한다.
거래가 충분히 따라주고 어느 정도 시장의 꼴을 갖추어야 한다.
일년이 넘도록 준비작업을 거쳐온 두 벤처기업과 똘똘 뭉쳐 시장을 독식하겠다고 나선 증권사들, 밥그릇을 뺏길까 염려하는 증권거래소의 한판승부가 어떻게 판가름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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