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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베이] 'IT 안심보험’ 재해복구 시스템이 뜬다
[서베이] 'IT 안심보험’ 재해복구 시스템이 뜬다
  • 유춘희 기자
  • 승인 2001.10.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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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전산센터 피해 입어도 데이터는 안전… 미 테러 참사 계기 중요성 부각

미국 세계무역센터 빌딩의 테러 참사 이후 정보기술(IT) 산업계에서 각광받게 된 솔루션이 있다.
바로 ‘재해복구 시스템’(Disaster Recovery System)이다.
자연재해나 소프트웨어 결함, 잘못된 하드웨어 조작 등으로 전산시스템을 운용할 수 없게 됐을 때, 기존 데이터를 그대로 살리고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업무를 재개할 수 있게 해주는 솔루션이다.
주 전산센터가 피해를 입었을 때 또다른 센터가 업무를 즉각 이어받아 일을 처리하게 하는 ‘백업’ 안전장치다.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도 이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세계무역센터의 축소판인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는 최근 주요 SI(시스템통합) 업체들에게 공문을 보내 백업 시스템 구축 제안을 해달라고 요청했고, 국내 주요 스토리지 공급업체와 백업 전문업체에는 대기업의 문의가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무역센터 입주업체 상당수가 전산 데이터 피해가 전혀 없었거나 최소화할 수 있었던 비결을 알았기 때문이다.


스토리지 장비 공급업체인 한국EMC 김경진 상무는 '테러 참사를 계기로 기업들이 정보의 안전한 보관과 재해복구 시스템의 중요성에 눈뜨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는 '9월 중순 이후 금융권과 공공, 제조, 서비스 등 전 부문에 걸쳐 시스템 구축 문의와 기술지원 요청이 폭증해 컨설턴트와 유지보수 기술자 등 20명으로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테러 이후 정보통신부가 재난대처 특별팀을 가동하고, 삼성그룹이 사람과 시스템의 안전관리 기준을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IT 분야에서 재해란 천재지변이나 운영자 실수로 전산 시스템에 장애가 생겨 기업 운영이 마비되는 것을 뜻한다.
한국EMC 정형문 사장은 '재해는 그 자체를 막는 게 최선이지만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사태로 인해 발생할 수도 있다.
철저한 대비책을 세워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며 '지속적 전산 서비스를 위해 든든한 백업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산 장애가 기업의 생존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8년 전 세계무역센터 지하주차장 폭탄 테러 당시 이곳에 입주했던 150개 기업이 도산한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폭발로 인한 시스템 장애로 영업활동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1995년 일본 고베 대지진으로 2천여대의 컴퓨터가 파괴돼 복구 대책이 없던 46개 중견기업이 파산선고를 받았고, 160여개 금융기관이 한달 이상 거래를 못했다.
인터넷 주식거래 업체인 e트레이드와 찰스슈왑이 잦은 서비스 장애로 손해를 본 건 한두번이 아니다.
수백㎞ 떨어진 곳서 원격 관리 이런 사례는 한국에도 있다.
지난해 동원증권 전산실의 스프링클러가 터지면서 시스템이 물에 잠기는 바람에 거래가 중지됐고, 서버 호스팅 규모가 가장 큰 인터넷데이터센터 KIDC가 급작스런 정전으로 서비스를 중단한 일도 있었다.
91년에는 울산 태화강이 범람하면서 인근의 현대모비스 전산실이 침수돼 복구하는 데만 6개월이 걸렸고, 94년에는 서울 혜화동 통신구 화재로 58개 증권사 점포의 업무가 마비된 일도 있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재난으로 기업의 각종 데이터가 유실될 경우, 업무 특성상 은행은 이틀, 제조업체는 5일, 보험회사는 6일 안에 재난 전 수준으로 복구해야 한다고 한다.
만약 이 기간 안에 복구를 못하면 25% 기업은 곧바로 도산하고, 40% 기업이 2년 안에 도산할 것으로 추정됐다.
재난을 당한 기업 중 5년 이상 생존할 수 있는 확률은 7%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전산재해 복구의 핵심은 데이터를 ‘원래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써온 방식은 ‘테이프 백업’이었다.
고객원장이나 거래내역 같은 정보를 매일 영업이 끝난 뒤 마그네틱 테이프에 담아 별도 장소에 보관하는 바로 그 방법이다.
이런 백업 방법은 쉽고 보관 비용이 싸며 이동이 편리한 게 장점이다.
하지만 사고가 난다면 당일 정보는 아예 없게 되고, 복구 작업이 번거롭고 오래 걸리며, 데이터가 손상될 가능성이 큰 단점이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나온 기술이 ‘네트워크 백업’ 시스템이다.
기업 LAN에 별도의 백업 서버를 두고 이를 스토리지와 연결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저장하고, 여기에 또하나의 스토리지를 연결해 2중으로 데이터를 저장하는 것이다.
테이프 저장보다는 진보된, 기업에서 흔히 사용하는 보편적인 백업 기술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백업용 장비가 역시 같은 건물 안에 위치하게 돼 건물 자체에 위해가 가해질 때는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각광받고 있는 체제가 바로 ‘원격지 백업’이다.
주전산실과 똑같은 시스템을 하나 더 만드는데, 그것도 수십~수백km 떨어진 곳에 떼어놓는 것이다.
그래서 ‘실시간 데이터 미러링(mirroring) 시스템’이라고도 한다.
한 건물 안이나 바로 옆 건물에 있다면 지진이나 화재, 홍수 같은 재난에는 양쪽 모두 피해를 입기 때문에, 복구센터는 안정성이 보장되는 거리에 있어야 한다.
세계무역센터에 입주한 모건스탠리딘위터가 만약 백업센터를 쌍둥이 옆 건물에 두었더라면 업무를 재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국내 기업 중 원격지 백업 시스템을 구축한 곳은 많지 않다.
한국EMC의 SRDF(동기식 원격 데이터 다루기)와 타임파인더 솔루션션을 도입해 현재 운용중인 20여곳과, 일본 히타치(효성인포메이션 공급)의 재해복구 솔루션인 HRC(히타치 원격 카피)와 RRDF(원격 복구 데이터 다루기)를 활용하는 5~6곳, 그리고 IBM이 공급하는 XRC(확장형 원격 카피)를 들여놓은 2~3곳이 전부다.
이처럼 시스템 구축이 미미한 것은, 재난에 대비하는 경영 마인드가 부족하고, 구축 비용이 수십억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이 들 만큼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사고가 터지면 걱정은 하면서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아직도 팽배해 있고, 평생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에 막대한 돈을 쓰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형문 사장은 '재해복구 시스템을 흔히 사람들이 가입을 망설이는 보험에 비유하는데, 사망보험금은 죽고 난 다음 나오지만 재해복구 시스템은 보험금 대신 죽은 것을 다시 살려내는 것'이라며 '기업의 생존에 대비한 보험의 가치는 어마어마하다'고 말했다.
가장 큰 걸림돌인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에 대해서는 '우선 이 돈은 ‘경비’가 아니라 ‘투자’라는 인식으로 바꿔야 하며, 부담을 덜기 위해 구축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과 통신료 감면 등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디지털경제 전문가인 박서기씨는 '테러사태 이후 어느 누구도 재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지진과 전쟁이 아니라도 최악의 상황은 발생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면서 '재난복구 시스템 구축이 단순한 IT 도입으로서가 아니라 요즘 선진기업에서 얘기되는 ‘비즈니스 연속성 계획’(Business Continuity Plan)으로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떤 종류의 위기가 닥쳐도 기존 사업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해복구 시스템은 기업이 고객과 직원에게 정직성과 신뢰성을 증명하는 경영 도구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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