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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지하철 후불카드, 시민은 ‘볼모’
[초점] 지하철 후불카드, 시민은 ‘볼모’
  • 이희욱 기자
  • 승인 2001.10.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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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 카드사와 시스템 공급업체간 마찰… 확대발급 미뤄진 채 서울시 나몰라라 1천만 서울 시민의 발인 지하철이 속병을 앓고 있다.
서울시에서 추진중인 지하철 후불제 교통카드 서비스 확대사업이 시동도 걸기 전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
다음달로 예정된 교통카드 겸용 신용카드(이하 후불교통카드) 확대발급이 카드 서비스 업체와 기술 공급업체 사이의 이견으로 불가피하게 늦춰질 전망이다.
사정은 이렇다.
지난 8월22일 서울시는 그간 국민카드가 독점하고 있던 지하철 후불교통카드 발급 서비스를 확대 실시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삼성·LG·비씨·외환카드와 한미·하나·신한은행 등 7개 사업자를 추가 선정하고 7개 사업자와 국민카드, 시스템 공급업체인 씨엔씨간에 1차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향후 세부협의 과정을 거친 후 11월부터 신청자를 대상으로 후불교통카드를 발급하겠다는 것이 사업의 골자이다.
그간 후불교통카드를 사용하기 위해 국민카드에서 별도의 신용카드를 만들어야 했던 지하철 승객의 불편을 줄이면서, 카드 사업자들의 수익 창출에도 도움을 주겠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서비스 예정일인 11월을 코앞에 두고 시스템 공급업체인 씨엔씨엔터프라이즈 www.cncen.com와 7개 카드 서비스 업체 사이에 마찰이 생겼다.
국민카드와 공동으로 ‘후불제 시스템’에 관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씨엔씨쪽에서 후불교통카드 독점 공급권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당초 계약서에는 씨엔씨가 100만장의 후불교통카드를 1차로 공급하고, 7개 카드사가 이를 배분하기로 돼 있었다.
문제는 ‘세부협의 과정을 거쳐’ 서비스를 실시하기로 했다는 데서 발생했다.
씨엔씨쪽은 '앞으로 후불교통카드 발급에 대한 독점권을 씨엔씨가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해 카드 서비스 업체는 아웃소싱 형태로 다른 카드 업체와 자유롭게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시가 중재에 나서고 있지만, 양쪽의 주장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우선 문제를 제기한 씨엔씨쪽의 얘기를 들어보자. 경영기획실의 소진수 과장은 '초기 계약 당시에는 1차 공급분 이후의 카드 공급에 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서울시 지하철 후불제 시스템의 소유권이 씨엔씨에 있는데다 특허를 보유한 입장에서 볼 때, 카드 서비스 업체가 씨엔씨를 거쳐 납품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다.
1차 계약 체결 후 향후 합의과정에서 적정선에서 가격을 책정하고 쉽게 납품 계약을 맺을 수 있으리라고 예상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카드 서비스 업체들은 '공급자 선정은 카드 서비스 업체의 몫'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LG카드의 관계자는 '당초 약속한 100만장의 공급 물량만 제공받으면, 추가 공급분에 대해서는 카드 서비스 업체가 자유롭게 사업자를 선정할 수 있어야 한다'며 '사업진행 도중 독점권을 주장하고 나선 것은 씨엔씨의 명백한 계약위반'이라고 주장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카드 공급권이 누구에게 돌아가느냐에 따라 카드 한장당 공급가격이 달라진다는 데 있다.
카드 공급권이 씨엔씨에게 돌아가게 되면, 1차적으로 씨엔씨를 거쳐 주문자생산방식으로 카드를 납품받아야 하는 카드 서비스 업체로선 가격 책정에서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반면 7개 카드사가 자유롭게 카드 업체 선정에 나서게 되면 공개 입찰 경쟁으로 카드 가격이 인하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씨엔씨의 후불제 시스템을 사용해 주문자생산 방식으로 후불교통카드를 생산하고 있는 업체는 케이비씨, KDN스마트텍 등 5~6곳에 이른다.
공급가 이견 ‘마주 달리는 기관차 씨엔씨나 카드 서비스 업체 모두 공급가격이 맞다면 굳이 독점권에 대한 논란을 벌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양쪽이 주장하는 ‘적정가’에서 역시 의견이 갈리고 있다.
씨엔씨쪽이 장당 4천원선의 가격을 제시한 반면, 카드 서비스 업체들은 3천원 초반대의 가격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씨엔씨의 소진수 과장은 '선불카드에 비해 기술적 난이도가 높은데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는 기술적 우수함을 고려하면 4천원도 오히려 낮은 수준'이라며 '오히려 우리 입장에선 더 높은 가격을 요구할 수 있지만 공공 서비스 차원에서 적정가를 낮추어 잡은 것'이라는 입장이다.
카드사 역시 기존 산정가인 3천원 선에서 양보할 뜻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의외의 변수도 발생했다.
그간 씨엔씨의 독점권 주장에 대해 공동으로 대응하던 7개 카 드서비스 업체 중 삼성카드가 지난 10월13일 씨엔씨와 단독으로 공급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당초 카드 서비스 업체들은 독점 공급권에 대한 협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후불교통카드 신청을 유보하기로 했다.
하지만 삼성카드는 단독으로 9월18일부터 회원 모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독점 공급권 문제가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이미 확보한 신청자에 대한 카드 발급이 부담으로 작용한 삼성카드가 결국 씨엔씨와 단독으로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삼성카드는 3년간 300만장 가량의 카드를 씨엔씨로부터 공급받기로 하고, 카드당 3300원 가량의 대금을 지불하기로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사실상 씨엔씨의 독점권을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나머지 6개 카드 서비스 업체도 별도의 모임을 갖고 서울시에 중재를 다시 요청하는 한편, 향후 대책을 논의중인 상태다.
씨엔씨쪽은 극단적인 경우 ‘사업 포기’도 불사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계약 초기에 보였던 7개 카드 서비스 업체의 태도가 갑자기 달라졌다.
지명도를 내세워 일방적으로 씨엔씨를 억누르려 하고 있다'며 '이번 계약은 중소기업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 문제'라고 자사의 주장을 관철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중재에 나서야 할 서울시는 뾰족한 묘안이 없이 7개 카드 서비스 업체와 씨엔씨간의 협상 과정을 지켜보고만 있는 입장이다.
담당 부서인 서울시 대중교통과 김현식 계장은 '독점 공급권 문제는 씨엔씨와 카드 서비스 업체간에 협의해야 할 사항'이라며 '우리로선 양쪽의 의견을 서로에게 구두로 전달해주는 일 외에 달리 손쓸 방도가 없다'며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빨리 해결돼 하루빨리 서비스가 실시되기만 바랄 뿐이라는 입장이다.
카드 공급업체 또한 이번 사태에 대해 '그저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지난 9월 중 비씨카드 및 삼성카드와 254억원 상당의 공급 계약을 체결한 케이비씨 www.kbc-card.com 김준영 팀장은 '어차피 후불제 시스템에 관한 특허를 씨엔씨가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카드 공급업체는 주문 생산밖에 할 수 없다'며 '우리로선 어떤 식으로 결정이 나든, 하루빨리 카드를 공급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한다.
6월말 기준으로 7개 카드 서비스 업체의 신용카드 발급 수는 6873만4천장에 이른다.
이들 카드 서비스 업체들은 기존 회원들의 대부분을 교통카드 겸용 신용카드로 교체해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들 카드사들이 내년부터 얻게 될 수익은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할 것으로 추산된다.
막대한 이익이 걸려 있는 사업인만큼 양쪽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서비스가 지연되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이 떠안게 됐다.
지하철 후불결제 서비스 확대에 따른 편리함은 시민의 몫이다.
8월말 서울시의 발표를 보면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신용카드로 편리하게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을 걸로 기대했던 시민들은 삐걱거리는 서울시 행정에 대해 불신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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