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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프로] 오차율 0%에 도전한다
[나는프로] 오차율 0%에 도전한다
  • 한정희
  • 승인 2001.02.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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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만의 휴일. 날씨도 좋고 어디 가볍게 드라이브라도 하고 싶다.
그럴 땐 무작정 차에 올라탄다.
시동을 걸면 운전대 옆에 부착된 작은 모니터가 켜진다.
먼저 목적지를 선택해볼까. 명칭 검색, 전화번호 검색, 주소 검색… 아, 드라이브 코스로 가보자. 드라이브 코스에서 수도권을 클릭. 그래, 남한산성이 좋겠다.
남한산성을 클릭하자 단말기가 탐색을 시작한다.
지도가 화면에 뜨면서 현재 위치에서 목표지까지 전체 경로가 표시된다.
총 거리와 소요시간은 물론이다.
모니터에 나타난 지도의 아무곳에서나 확대경을 클릭하면, 그 지점이 몇배로 확대된다.
육교나 골목길까지 훤히 보인다.


“경로에 진입하십시오.” 단말기가 빨리 출발하라고 재촉한다.
차가 움직임과 동시에 단말기 안의 작은 내 차도 같이 출발한다.
“전방 300미터 앞 우회전입니다.
” “전방 500미터 앞 터널입니다.
” 고속도로가 나오면 요금액수까지 알려준다.
차에 이상징후가 나타나면 그 즉시 원격진단도 가능하다.

CNS(Car Navigation System)라고 부르는 이 차량항법 시스템은 실제주행거리와 똑같은 그래픽 지도를 활용해 국내 어느 곳이든 한번에 찾아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디지털 도로교통안내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을 개발하고 제작하는 데 한국에서 내로라할 만한 전문가가 있다.
한국노바주식회사 오지훈(43) 기술이사다.
오 이사 사무실에는 유난히 지도들이 많다.
인공위성에서 찍은 지도의 사진과 사진처럼 정확하게 그려진 지도들 투성이다.
하지만 그가 진짜 관심이 있는 건 이런 종이 위의 지도가 아니다.
단말기를 통해 나타나는 그래픽 지도, 차량이 움직일 때 실제거리만큼 정확히 축적되어 움직이는 영상지도가 그의 타깃이다.
“우리의 지리정보는 단순히 위치를 확인하는 수준의 것이 아닙니다.
지도가 차량에 탑재되어 차와 같이 이동하면서 이동경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어야 해요. 따라서 한치의 오차도 없어야 합니다.
오차가 누적되면 목표지점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나기 때문이죠.” 따라서 그에게 정확한 지도를 만드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매년 지도를 만드는 데만 13억원 이상이 들어간다.
50여명 이상이 지도제작에 달라붙는다.
사실 이것은 지도 제작이 아니라 정보의 생산이다.
도로의 폭과 상태는 물론 교통규제지역, 휴게실, 주요소, 관공서, 은행 위치 등 도로 주행자들을 위한 갖가지 데이터들을 실제 모습에 근거해 생산해낸다.
이런 작업을 총지휘하는 게 그의 임무다.
노바가 준 선물 ‘GIS’ 기술 각종 데이터들이 달리는 자동차 속에서 살아 있는 정보가 되기 위해선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수신기가 필요하다.
원래 GPS는 미국 국방부에서 군사목적으로 개발한 것으로 인공위성을 이용해 위치나 속도, 시간을 측정할 수 있도록 만든 시스템을 말한다.
GPS 신호 중 표준측위 서비스는 민간도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됐는데, 이것이 자동차에 탑재되면서 현재의 차량항법 시스템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오 이사는 이런 GPS 분야에서도 전문가다.
그는 자체 개발한 보조시스템을 도입해 GPS의 오차율을 줄이고 있다고 자랑한다.
“GPS만으로는 수신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고층빌딩이나 방해전파가 많으면 오차가 발생할 수 있죠. 이럴 경우 스피드펄스라는 장치를 활용합니다.
이 장치 안에 회전각도를 감지하는 시스템이 있어서 진행거리와 각도를 맞추기 때문에 더욱 실제에 가까운 거리를 유지할 수 있죠.” 오 이사가 GPS 기술에 최고의 전문가가 된 데엔 이유가 있다.
그는 83년 삼성전관(지금 SDI)에 입사했다.
전산학과 출신인 그는 처음부터 컴퓨터와 관련된 일을 했다.
하지만 일이 썩 재미있는 편은 아니었다.
그는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일본으로 향했다.
당시 통산성 산하기관이었던 해외기술자연수협회쪽에 문을 두드려 일본 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그는 소프트웨어도 개발하고 하드웨어도 다루는 한 회사에서 기본기를 익힌 후, 88년 일본 노바에 정식 입사했다.
노바는 그에게 전혀 새로운 다양한 경험을 제공했다.
“초창기에는 일본 중부전력 송전성에서 관리시스템을 맡아 일을 하게 됐죠. 그때 GIS(지리정보시스템)라는 걸 처음 접했습니다.
항상 텍스트 위주의 프로그램만 보다가 철로가 놓여 있는 그래픽을 처음 봤는데, 정말 신기하고 매력적이었죠.” 노바의 선물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NTT에서 전화선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다뤄보게 된 것도 아주 좋은 기회였다.
그 다음은 마치 정해진 수순처럼 컴퓨터 매핑(maping)을 다루는 일을 접하게 됐다.
“일본의 토부라는 유명한 회사였는데, 그 회사에서 항공지도를 만드는 일을 하게 됐습니다.
” 그는 일본 노바에서 다양한 회사에 파견근무를 하면서 GIS의 기본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익혔다.
지도를 만들고, 이를 컴퓨터에 입력하고, 실제 사용하는 데 필요한 응용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을 모두 섭렵한 셈이다.
그가 한국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95년 만도기계에서 GIS시스템을 개발해달라고 의뢰를 해왔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에서 미국 노바로 옮긴 그는 한국에 파견되어 만도기계 GIS시스템을 개발하게 됐다.
그때 제일 먼저 해야 했던 일은 정확한 지도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때가 가장 힘들었는데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실제와 똑같은 지도였거든요. 그런데 그런 마인드가 없었어요. 정확한 지도를 만들기 위해 먼저 그런 마인드를 키우는 교육부터 해야 했습니다.
” 그의 교육과정은 혹독했다.
실제 지형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지도는 되돌려보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당시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그를 ‘면도칼’이라고 불렀다.
자동운전 시스템 개발이 꿈 그는 앞으로 위치정보 시스템을 이용한 서비스는 온라인에서 활용가치가 높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이미 노바는 국내 한 이동통신업체와 제휴를 맺고 생활정보와 교통정보를 함께 담아 서비스하기로 했다.
서비스 영역이 넓어질수록 그의 욕심은 커져만 간다.
“운전하면서 리모컨으로 조작하거나 모니터를 보는 건 위험한 일이죠. 앞으로 남은 문제는 사용자의 이런 조건을 감안해 모든 서비스 정보를 음성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 더 나아가 자동운전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도 그가 꼭 해보고 싶은 분야다.
외국에서도 쓸 수 있는 국제적인 지리정보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그의 목표다.
물론 그 모든 욕심에 전제조건은 있다.
데이터의 오차율을 0%로 좁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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