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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호텔 업계 '월드컵만 믿는다'
[비즈니스] 호텔 업계 '월드컵만 믿는다'
  • 이용인 기자
  • 승인 2001.11.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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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 엎친 데 테러 덮쳐 적자 호소… 내년 6월 대규모 특수 부푼 꿈 미국 테러사태의 파편을 맞은 국내 업체가 한두군데는 아니다.
거의 모든 업종들이 너나 없이 상처를 호소한다.
하지만 이른바 ‘특1급 호텔’이라 불리는 고급 호텔만큼 상처가 깊은 곳도 드물 것이다.
1년 중 가장 성수기라고 할 수 있는 가을철 장사를 완전히 망쳐버렸기 때문이다.
그만큼 월드컵을 기다리는 마음도 절실하다.
호텔 업계에서 가을철은 이른바 비즈니스 시즌이다.
관광뿐 아니라 비즈니스를 하기에도 더 없이 좋은 날씨이기 때문이다.
9~10월 사이에 호텔 업계의 객실 판매율은 87~90% 가까이에 이른다.
이 정도면 고급 VIP룸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방이 찼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9·11 테러사태’가 일어난 뒤 대부분 호텔의 객실 판매율은 70~80%를 오가고 있다.
객실 판매율이 평년 수준보다 10~20%포인트나 뚝 떨어진 것이다.
물론 호텔에서 비수기라고 할 수 있는 12월과 1월은 객실 판매율이 6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때는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대처를 하기 마련이다.
지금은 가장 돈을 벌어야 할 시기에 빈 방만 쳐다보고 있어야 한다는 데 고민이 있다.
실제 호텔신라의 10월 객실 판매율은 71~72%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호텔신라 심영철 객실예약과장은 '테러 이후 미국인들이 포함된 행사의 경우 취소나 포기가 잇따랐다'고 말한다.
다른 호텔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롯데호텔은 테러사태 이후 10~15% 정도 예약이 취소됐다.
롯데호텔의 객실 판매율도 10월 현재 75% 수준에 그치고 있다.
호텔 업계에서는 대체로 객실 점유율이 80% 안팎은 돼야 인건비 등을 포함해 수지균형이 맞는다고 말한다.
비수기가 아닌데도 호텔들이 ‘적자’를 보고 있는 셈이다.
객실 판매와 함께 호텔 매출의 또다른 큰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면세점은 상황이 더 좋지 않아 보인다.
일본 경기침체로 일본 관광객들은 유럽이나 미국 대신, 가까운 한국을 찾는 편이었다.
물론 일본 관광객들이나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고급 호텔에 투숙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관광코스로 호텔 면세점이 끼어 있기 때문에 면세점들은 제법 쏠쏠한 재미를 보았다.
올 상반기 고급 호텔 매출이 그리 큰 폭으로 줄지 않은 것도 면세점들이 버팀목 역할을 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러 이후 일본 관광객조차 발길을 끊으면서 호텔 면세점도 평균 20~30% 정도의 매출 감소를 겪고 있다.
사실 호텔 업계는 올해 들어 눈에 띄게 불황을 경험해왔다.
세계 경기침체로 비즈니스 활동이 뜸해졌기 때문이다.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어지자 고급 호텔들도 알게 모르게 객실 요금을 낮춰주며 손님 모시기 경쟁을 해왔다.
가을 성수기에 만회할 수 있다는 심산도 있었다.
하지만 테러사태가 터지면서 마지막 희망은 물거품이 돼버렸다.
익명을 요구한 호텔 업계 관계자는 호텔이 생긴 이래 최악의 시기를 맞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1991년 걸프전이 일어났을 때도 비슷한 현상은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비수기에 속하는 1월에 전쟁이 터져 큰 피해는 없었다는 것이다.
IMF 위기 때도 호텔들은 은근히 괜찮은 수입을 올렸다.
국내 회사를 인수합병(M&A)하려거나 컨설팅을 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 외국 비즈니스 거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워낙 ‘타이밍’이 안 좋아 완전히 직격탄을 맞은 꼴이라는 것이다.
물론 12월에 짭짤한 수익을 올려주는 연회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올해는 연회 매출도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국내 경기 역시 그리 여유있는 편이 못 되기 때문이다.
객실이 해외 경기상황을 반영한다면, 식음료나 연회는 국내 경기에 따라 움직인다.
경기가 좋으면 이맘때쯤 호텔 연회예약은 다 끝난다.
한 호텔 연회담당자는 '느낌으로 얘기하자면 예년에 비해 15% 정도 예약률이 떨어졌다'고 말한다.
막판에 연회가 몰릴 수도 있지만 기업들이 규모를 줄일 것은 뻔한 이치다.
특1급, FIFA 공식 호텔로 지정 때문에 호텔 업계에서 월드컵에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무엇보다 월드컵은 호텔 객실이 비수기에 들어가는 6월 한달을 거저 먹여살려줄 수 있다.
비수기에 성수기를 웃도는 매출이 들어오기 때문에 그만큼 차익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실제 거의 모든 ‘특1급’ 호텔들은 국제축구연맹(FIFA) 공식 숙박호텔로 지정돼 일률적으로 70%가 예약돼 있는 상황이다.
예컨대 신라호텔은 국제축구연맹 VIP 투숙 호텔, 하야트호텔은 총회직원과 진행요원이 묵는 본부 호텔, 힐튼호텔은 기자들이 묵는 프레스 호텔 등으로 예정돼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호텔 업계에선 나머지 30%를 채우는 것은 ‘식은죽 먹기’라고 말한다.
웬만한 호텔들이 5월 중순~6월말까지 100% 예약돼 있다고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현대투신증권 박진 과장은 '한달 반 장사하고 한달 반은 놀아도 된다고 보면 된다'고 말한다.
오히려 호텔 객실 담당자들은 이 기간 동안 피해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방이 부족한 것은 뻔한데, 밀려드는 손님들에게 방이 없다고 일일이 양해를 구하는 게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한 호텔 관계자는 '그동안 매출을 올려준 단골 고객들에게 우선적으로 방을 배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물론 국제축구연맹 공식호텔로 지정되지 않은 호텔은 신경이 쓰일 수 있다.
갑자기 객실이 꽉 찼다가 한꺼번에 빠져나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국의 조 예선 탈락이 확정될 경우 중국 손님으로 가득찬 호텔은 갑자기 바람 빠진 풍선처럼 텅 비어버릴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런 위험성을 미리 예측하고 차단하는 게 만만한 작업은 아니다.
게다가 면세점도 되레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고 업계에선 내다보고 있다.
면세점 수입의 90%는 일본인 관광객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에서 월드컵이 공동 개최되기 때문에 일본인 관광객이 줄어들면서 면세점 매출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호텔 관계자는 '평균 수준을 유지하면 상당히 선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면세점 수입을 보충하고 부대수입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처음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중국팀이 한국에서 조 예선 경기를 치르는 것이다.
호텔 업계에서 오는 12월1일로 다가온 월드컵 조추첨 결과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일본인만큼 면세점 매상을 올려주지는 않겠지만 35만명 정도로 예상되는 중국 월드컵 관광객들의 숫자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게다가 롯데월드는 중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관광코스에 들어갈 만큼 인기를 얻고 있다.
호텔에서 다양한 여행 패키지를 선보일 경우 중국인들에게 먹혀들 수 있다는 얘기다.
그나마 호텔 업계에선 월드컵이란 희망이 있어 그리 표정이 어두워 보이지는 않는다.
테러사태에 대해 질문을 할 때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하던 호텔 관계자들도 월드컵 이야기만 꺼내면 너나 없이 환한 표정을 짓는다.
올해 한해가 워낙 힘들었기 때문에 호텔 업계에선 내년 월드컵을 더욱 절실하게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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