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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프로] 김윤한 / KBS 스포츠 아나운서
[나는프로] 김윤한 / KBS 스포츠 아나운서
  • 김호준 기자
  • 승인 2001.11.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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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와 함께 뛰는 열정의 방송인 김윤한 아나운서는 경기 전날 용이 승천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 전문가들이 동메달 정도면 만족이라고 생각했지만 김윤한 아나운서는 은근히 금메달을 기대했다.
하지만 30km 지점인 콜럼버스 광장까지 황영조 선수가 선두그룹에서 보이지 않았다.
‘그냥 꿈일 뿐인가’라고 생각하고 있던 순간 황영조가 선두그룹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35km 지점부터는 일본 선수 모리시다와 선두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40km 지점에서 황영조가 선두에 나서자 올림픽 IBC센터에서 경기를 중계하던 스태프들은 눈물까지 흘리며 환호성을 질렀다.
드디어 황영조가 올림픽 스타디움에 들어섰을 때 해설자 양제성씨는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오직 김윤한 아나운서만 ‘황영조!’, ‘황영조!’를 외쳤다.
올림픽이 끝난 뒤 KBS 퀴즈 프로그램에서 당시 김윤한 아나운서가 황영조를 몇번 외쳤냐는 문제가 출제된 적도 있었는데, 본인도 나중에야 자신이 14번이나 외쳤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회고한다.
'스포츠 중계를 하기 위해서는 스포츠에 대한 열정이 필요하죠.' 실수도 많았던 초년병 시절 김윤한씨는 71년 KBS에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입사 후 그가 선택한 일은 MC나 종합뉴스 진행자 등 인기있던 분야가 아니라 스포츠 중계였다.
'평소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고, 학창시절 필드하키, 축구, 유도, 태권도 등 다양한 운동을 해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스포츠 아나운서를 선택하게 되었죠.' 스포츠 아나운서를 선택하고 나서 KBS 전주방송에서 10개월간 교육을 받고 축구 중계방송을 하게 됐다.
처음으로 그가 맡은 시합은 ‘박대통령컵 국제축구대회’에서 벌어진 태국과의 국가 대항전이었고, 라디오로 중계됐다.
김윤한 아나운서는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진땀이 난다며 몸서리를 친다.
'선수 이름을 대면 선수 등번호, 외향적인 특징이 자동으로 튀어나올 만큼 철저하게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빠르게 움직이는 선수들을 분간할 수가 없었죠. 선수들을 찾고 확인하느라고 공은 어디 갔는지도 몰랐습니다.
경기 시작하고 10분 정도는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죠.' 골을 넣은 선수를 착각해서 낭패를 본 일도 있다.
'한번은 골밑 혼전중에 골이 들어갔는데 누가 넣었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선수가 골을 넣었다고 중계를 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신문을 보니 그 선수는 어시스트를 했고 골을 넣은 것은 다른 선수였어요.' 김윤한 아나운서는 처음 맡았던 축구 중계를 라디오로 했던 만큼 아직도 라디오 축구 중계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축구 중계를 하면서 '고오오올'을 외칠 때 가장 희열을 느낀다고 말한다.
김윤한 아니운서는 축구 외에도 육상, 복싱, 농구, 하키, 레슬링, 태권도, 핸드볼 등 야구를 제외하고는 안 해본 스포츠 중계가 없다.
자신도 운동을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직접 운동을 하기도 한다.
'복싱 중계를 맡았을 때는 3개월 동안 복싱 도장에 다녔습니다.
직접 운동을 해보면 선수들의 동작을 분석하고 선수들의 마음 상태를 읽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김윤한 아나운서는 중계하는 사람이 경기를 잘 이해하면 더욱 생동감 있는 중계를 할 수 있고 시청자들도 그 아나운서를 찾게 된다고 말한다.
운동 선수 못지않은 체력 있어야 김윤한 아나운서가 처음부터 스포츠 중계에 뜻을 두었던 건 아니다.
중앙대학교 자원공학과를 졸업하고 그가 처음으로 입사한 곳은 ‘대한중석’이라는 텅스텐 수출업체였다.
그런데 대한중석에서 신입사원 연수를 받던 중 친구와 함께 남산에 놀러갔다가 당시 남산에 있던 KBS를 찾아가게 되었다.
마침 그날은 KBS 아나운서 실기시험이 있던 날이었다.
함께 간 친구가 알리지도 않고 슬쩍 원서를 집어넣어줘 얼떨결에 시험까지 보게 되었는데 덜컥 합격통지서가 날아왔다.
김윤한 아나운서는 대한중석과 KBS를 놓고 선택의 고민에 빠졌다.
'대한중석을 다니면 지방근무를 해야 했지만 월급은 KBS보다 3배 이상 많았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같은 회사를 다니자는 친구의 설득에 넘어가 KBS를 선택하게 됐죠.' 김윤한 아나운서는 그때 선택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한다.
대한중석은 텅스텐 자원이 고갈되면서 오래 전에 회사 문을 닫았지만, 자신은 아직도 스포츠 아나운서로 재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윤한 아나운서는 KBS에서 스포츠뉴스만 20년 넘게 진행했다.
직접 중계한 스포츠 종목만 해도 수십가지가 넘는다.
스포츠 중계를 하면서 겪었던 사연을 이야기하자면 몇날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다.
그는 올림픽, 월드컵, 아시안게임 등 한국 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을 순간들을 현장에서 국민들에게 전달했다.
특히 90년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 이준호, 김기훈이 우승할 때 중계했던 방송 테이프는 남산 타임캡슐에 보관돼 400년이 지난 뒤 공개될 예정이다.
김윤한 아나운서는 98년 12월에서 2001년 4월까지 KBS 원주방송국 국장으로 있을 때를 제외하고 스포츠 중계를 쉰 적이 없다.
이제 쉴 나이도 됐지만 그는 여전히 스포츠 중계를 그만두고 싶지 않다.
11월13일 크로아티아와 치르는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도 KBS 라디오를 통해 그가 중계할 계획이다.
'차분한 사람보다는 열정적인 사람이 스포츠 중계에 맞습니다.
경기장에서 선수와 관중들이 뿜어내는 열기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감정 표현이 풍부해야 하기 때문이죠. 가령 축구 시합에서 골이 들어갔을 때 선수들이 즐거워하는 것처럼 자신도 목이 터져라 ‘골인!’을 외쳐야 합니다.
' 김윤한 아나운서는 스포츠 중계를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스포츠를 좋아하고 경기와 함께 호흡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스포츠 중계를 하기 위해서는 운동선수 못지않은 체력이 있어야 한다.
경기 시간이 2시간이면 아나운서는 경기 준비시간까지 포함해서 3시간 이상 계속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
그 정도 시간을 경기 중계에 집중하다 보면 체력 소모가 심하다.
김윤한 아나운서는 체력의 한계를 느낄 정도로 힘들었던 때로 LA올림픽을 꼽는다.
중요한 경기 장면을 놓칠세라 올림픽기간 내내 스튜디오에서 먹고 잤다.
'20일 동안 햇볕을 못 봐서 올림픽이 끝나고 밖에 나왔을 때는 몇시간 동안 눈을 뜨기도 힘들었죠.' 그때를 회상하는 그의 눈가에 주름이 잡힌다.

스포츠 아나운서가 되는 길

해마다 MBC, KBS, SBS, iTV 등 지상파 방송사에서는 아나운서 공채를 실시한다.
뽑는 인원은 각각 10명 안쪽이다.
아나운서로 방송사에 입사하게 되면 모든 아나운서에게 필요한 공통 교육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일정한 훈련기간을 거쳐 뉴스 진행자, MC, 스포츠 아나운서 등 자신의 전문분야를 결정하게 된다.
물론 본인이 원하는 분야로만 배정되는 것은 아니다.
방송사에서 개인의 희망분야와 적성을 적절히 고려해 인력을 배치한다.
지상파 방송사 외에 케이블TV와 위성방송 채널에서도 스포츠 아나운서가 될 수 있다.
케이블TV에는 SBS 스포츠30, SBS 축구, SBS 골프 등 3개의 스포츠 전문 채널이 있고 내년 3월에 출범하는 위성방송에는 KBS 스카이라이프, MBC 스포츠 채널 등 6개의 스포츠 전문채널이 생긴다.
지상파 방송보다는 케이블과 위성방송의 스포츠 전문채널에 스포츠 아나운서 수요가 많다.
스포츠 아나운서가 된 뒤에도 직접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기까지는 상당기간 훈련과정을 거쳐야 한다.
개인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지상파 방송국 아나운서로 입사하고 스포츠 경기를 직접 중계할 수 있을 때까지 대략 1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기간 중 다른 프로그램에서 경험을 쌓기도 한다.
스포츠 경기를 자주 보는 것이 소포츠 중계에 관한 한 최고의 교육방법이다.
그리고 경기 진행과정을 띄엄띄엄 녹음해둔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숙달이 되면 전체 경기를 매끄럽게 중계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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