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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나노기술, 피부가 좋아해요
[비즈니스] 나노기술, 피부가 좋아해요
  • 이미경 기자
  • 승인 2001.11.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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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성 화장품 개발 경쟁 속 업계 화두로… 바이오 등 첨단기술 접목 잇따를 듯 중국 옛 문헌에 실린 ‘미인의 기준’에서 가장 으뜸으로 꼽은 것은 ‘눈처럼 하얀 피부’다.
양귀비와 서시, 조비연과 같은 당대 최고의 미인들은 피부가 주름살 없이 팽팽하고, 백옥같이 고왔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미인도 세월의 무게를 넘어서지는 못하는 법이라, 양귀비는 피부 노화를 막느라 생전에 안 먹어본 것이 없었다고 한다.
희고 탄력있는 피부는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동경의 대상이다.
요즘 소비자들은 파우더를 발라 피부의 결점을 ‘커버’하는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노화를 억제하는 물질을 공급해 피부재생 능력을 강화하는, 좀더 본질적인 해결책을 원한다.
실제로 지난 1999년 이후 미백이나 자외선 차단, 주름 방지 등에 효과가 있는 기능성 화장품 시장은 30%에 가까운 성장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화장품 업체들은 피부 노화를 방지하는 기능성 화장품들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노화억제 효과가 있는 물질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인가’를 놓고 업체간 기술경쟁도 치열하다.
업계에서 매출 1, 2위를 차지하고 있는 태평양과 LG생활건강은 얼마 전 피부노화 억제 제품에 최첨단 ‘나노기술’을 활용했다고 발표했다.
기능성 화장품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향이나 색조가 아닌, 차별화된 기술력으로 승부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이다.
‘나노’는 10억분의 1을 나타내는 단위로, 1나노미터는 대략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에 해당한다.
‘나노 기술’은 이처럼 작은 단위의 원자나 분자들을 적절히 결합해서 기존 물질을 변형하거나 새로운 물질을 창조하는 기술이다.
메모리 반도체나 슈퍼컴퓨터와 같은 전자 분야에 주로 응용되는 것으로 알려진 ‘나노 기술’이 화장품 업계의 화두가 된 것은 '입자가 작아서 촉촉하게 잘 먹어요'라는 모 화장품의 광고 카피를 떠올리면 이해하기가 쉽다.
태평양 기술연구원 나노텍연구팀 한상훈 팀장은 '자갈밭 위에 또 자갈을 뿌리는 것과 모래를 뿌리는 것의 차이를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보통 1~10마이크로미터 정도인 입자를 고압유화믹서를 사용해 100나노미터 정도로 만들면, 피부에 골고루 스며들 뿐만 아니라 바르는 순간의 감촉도 훨씬 좋아진다고 한다.
태평양은 ‘레티놀 신화’의 원조 브랜드인 아이오페에 나노 기술을 적용했다.
마케팅팀 김희준 과장은 '기존 제품보다 100배 이상 작은 입자에 농축된 비타민A(레티놀)를 담아 피부에 깊숙이 스며들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아이오페는 시작에 불과하다.
태평양 나노텍연구팀은 나노 기술을 제품 전반에 걸쳐 폭넓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자외선 차단 크림에 나노 기술을 적용하면, 기존 제품에 포함된 화학성분을 전혀 첨가하지 않고도 자외선 차단 효과가 훨씬 높은 획기적인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한상훈 팀장은 '궁극적으로는 특정 부위에 특정 물질을 전달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인체에 투입된 항암제가 다른 세포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고 암세포만 파괴하듯, 멜라닌 색소를 ‘찾아다니며’ 주근깨를 제거하는 화장품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태평양 나노텍연구팀은 아이오페에 나노 기술을 적용한 것과 관련해 국내외에 특허를 출원했고, 국가지정 연구소로 선정되는 등 관련 기술 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고가 기능성 제품 지속적 성장세 ‘이자녹스 프레스티뉴’라는 신제품을 출시한 LG생활건강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이자녹스 프레스티뉴는 30대 이상 여성들을 타깃으로 만든 제품으로, 피부막과 유사한 라멜라 성분이 피부에 침투해 노화를 막아준다.
아이오페와 마찬가지로 라멜라 성분이 피부 깊숙이 스며들 수 있도록 제품 개발에 ‘나노 기술’을 활용했다.
LG생활건강 기술연구원 경기열 차장은 '화장품 제조와 관련한 국내 나노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결코 뒤지지 않는 수준'이라며 '이를 이용해 주름 개선이나 미백 효과가 탁월한 제품들을 지속적으로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원측은 나노 기술 연구를 위해 박사급 인력들을 대거 채용하고 전자현미경을 비롯한 고가의 장비를 완비해놓은 상태다.
첨단기술을 응용한 기능성 화장품들은 일반 제품들에 비해 가격이 높은 편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고가의 기능성 제품 시장이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태평양 마케팅팀 김희준 과장은 '97년 레티놀 제품이 첫선을 보인 이래 현재 관련 시장이 13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4조2천억원에 이르는 국내 화장품 시장 규모에 비하면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는 '국내 화장품 업계 50년 사상 가장 큰 폭의 증가율을 보여준 것'으로 기능성 시장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올해 상반기 국내 화장품 업계의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평균 20% 정도 상승했다.
굿모닝증권 김미영 연구원은 '화장품 전문 할인점들이 부진을 면치 못하는 반면, 방문 판매는 40%, 백화점 판매는 20% 정도 늘었다'고 말했다.
중저가 제품 소비가 저조한 데 비해 방문판매나 백화점을 통해 유통되는 고가 제품들은 날개 돋힌 듯 팔렸다는 얘기다.
김미영 연구원은 '이처럼 매출이 늘어난 것은 소비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업체들이 특별한 기능을 추가한 고가 제품들을 잇따라 출시하고, 유통망을 다각화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태평양 마케팅팀 김희준 과장은 '화장품의 경우, 개인의 소비행태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비자들은 효과가 있다고 판단되면 고가의 기능성 화장품을 서슴없이 구매하는 반면, 특별한 기능이 필요치 않은 제품들은 저가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가의 기능성 화장품 구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개인의 소득 수준이 아니라 제품의 ‘효능’이다.
김희준 과장은 '제품가격이 높아질수록, 효능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여도가 높아진다'며 '업체들이 R&D(연구개발) 분야를 더욱 강화하고 투자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애경산업이 프랑스의 바이오테크놀로지연구소와 공동 연구를 추진하는 등 업계에 다양한 첨단기술과의 접목이 잇따르고 있다.
이번 나노 기술 응용 제품 출시는 국내 화장품 업계가 세계 수준의 기술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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