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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줄줄 새는 가입자 어찌 할꼬
[비즈니스] 줄줄 새는 가입자 어찌 할꼬
  • 김연정 객원기자
  • 승인 2001.11.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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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이동성제 놓고 이동통신 3사 설전… KTF 자신만만, SK·LG 볼멘소리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학원을 운영해온 김아무개씨는 최근 입주해 있던 건물이 헐리게 되자 일원동으로 학원을 옮기기로 했다.
그런데 전화번호가 큰 문제였다.
10여년간 한 장소에서 하나의 전화번호를 사용해 학원을 운영해온 그에게는 전화번호가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고민 끝에 일단 이동전화로 착신 신청을 하고 대치동을 떠났다.
김씨와 같은 사람들의 불편이 앞으로는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위치와 상관없이 고객이 원하기만 하면 평생 한가지 번호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번호이동성 제도가 시내 유선통신의 경우 2003년 상반기에 도입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국내 시내 유선통신 시장을 살펴보면 한국통신(KT)이 전체 시장의 99%, 그리고 하나로통신이 그 나머지를 점유하고 있다.
하나로통신이 후발주자인 점을 감안해도 KT의 점유율은 웬만해서는 깨뜨릴 수 없는 철옹성 같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로통신이 무사히 시장진입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내민 카드가 사전선택제였다.
지난해 11월부터 전화 고객들에게 KT와 하나로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이냐 하는 선택권을 사전에 부여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거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래서 두번째로 내민 카드가 바로 번호이동성 제도다.
문제는 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KT가 부담해야 할 사전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데 있다.
아직 정확한 수치로 집계된 것은 아니지만, KT는 이 제도 도입을 위해 최소 8천억원을 투자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비용 중 일부를 가입자들에게 부담시켜야 하는가 등에 관한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시내 유선통신 사업자들은 전담반을 구성해 2003년 상반기 번호이동성 도입을 목표로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반면 이동통신업계는 아직도 뜨거운 설전을 계속하고 있다.
이동통신사들이 의견을 달리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번호이동성에서 유선통신쪽은 고객의 위치와 상관없이 한 번호를 부여하는 위치이동성이 주가 되지만, 이동통신쪽에서는 고객이 각 통신사의 요금제와 통화품질, 부가서비스 등을 보고 통신사를 바꿔도 번호가 유지되는 사업자이동성이 주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제도의 도입 시기와 방법을 놓고 각 사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번호이동성 도입을 긍정적으로 보는 KTF는 2003년 중반기 이후를 번호이동성 도입의 적정 시기로 잡고 있다.
그리고 2세대와 3세대 이동통신 서비스 모두에 이것을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KTF가 이처럼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이 회사가 세 통신사 중 가장 저렴한 통화요금과 우수한 통화품질을 자신하기 때문이다.
번호이동성이 도입되면 유리한 고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최근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KTF의 브랜드 인지도도 번호이동성의 이점을 누릴 수 있게 해줄 것으로 업계에선 보고 있다.
반면 SK텔레콤은 신중히 검토한 뒤 도입 시기를 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세 통신사를 합쳐 투자비용이 수천억원대에 이를 것이고, 이런 비용 대비 고객 편익의 수준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IMT-2000이 상용화되는 3세대(3G) 단계에서 번호이동성을 도입해도 늦지 않다'며 '우리나라와 같이 이동통신 시장이 포화될 대로 포화된 상황에서는 요금이 저렴한 쪽으로 가입자가 옮겨가는 ‘이동 수요’가 많아 사업자간 과당경쟁만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세 사업자 중 가입자가 가장 적은 LG텔레콤도 번호이동성이 도입되면 그나마 확보해온 가입자들까지 빼앗길 것을 우려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LG텔레콤은 2G에서 3G로는 동일 업체 안에서만 가능하도록 하자는 등 번호이동성을 제한적으로 도입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당장 다음달 초에 이동통신사들은 그동안의 검토결과를 가지고 번호이동성 도입의 시기와 방법, 비용 문제 등을 논의해야 한다.
그리고 어느 업체가 번호이동성 도입으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을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어쩌면 번호이동성을 먼저 도입한 홍콩에서와 같이 가입자 이탈을 막기 위한 업체간 과당경쟁으로 통신시장 전체가 침체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제도가 도입되든 가장 중요한 것은 더 나은 통화 품질과 서비스, 그리고 고객들의 편의다.
통신업체들의 번호이동성 제도 도입 논의도 이런 관점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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