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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프로] 이화여대 통역센터소장 염혜희
[나는프로] 이화여대 통역센터소장 염혜희
  • 한정희
  • 승인 2001.05.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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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면서 말하는 IT 전문가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아도, 염씨에게 연락을 해오는 마케팅 담당자들이 넘쳐난다.
연예인 못지않은 유명세다.
적어도 그를 찾는 업체라면 IT 분야에서 잘나가는 회사라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으리라.

염씨는 IT 분야의 전문 통역가다.
그의 IT 관련 통역 역사는 거의 우리나라 IT 산업의 성장과 궤를 같이한다.
IT 분야에서 통역에 대한 수요가 처음 생겨난 때는 80년대 말, 90년대 초였다.
그때는 몇몇 외국계 기업에서만 통역을 필요로 했다.
염씨는 그때부터 IT쪽과 관련해 통역을 해왔다.
그러니까 햇수로만도 10년 넘게 IT 분야에 종사해온 셈이다.
지금은 단일 통역 시장으로는 이 분야가 가장 큰 시장이 됐다.
IBM이니 휴렛팩커드(hp)니 하는 업체들과는 그때부터 인연을 맺었다.

사람들은 그가 통역하는 것을 들으면 무엇보다 이해하기 쉽다고 말한다.
전문 분야인데도, 마치 내용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통역해준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해하기 쉽게 통역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제일 기분이 좋아요.” 그는 그것이면 통역하는 이로써 임무를 다한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IT쪽에서 통역을 시작했을 때, 그는 이미 10여년의 통역 경력을 쌓은 베테랑이었다.
그는 현재 이화여자대학 부속 통신전문 대학원에서 통역센터소장직도 맡고 있다.
공부는 어렵게, 말은 쉽게 그의 첫직장은 외국계 투자은행인 체이스맨해튼뱅크였다.
하지만 통역에 대한 동경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외국어대학교에서 통역전문대학원을 만든다는 소식은 염씨의 마음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첫시험은 그냥 ‘시험삼아’ 볼 생각이었다.
시험은 너무나 어려웠다.
시험문제가 토플식인데다 생전 처음 보는 문제가 많았던 것이다.
전공영어는 너무 어려워 등에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만약 그해에 들어갈 생각이었다면, 인터뷰까지 보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냥 실제 경향이 어떤가 보려고 시험을 봤기 때문에 끝까지 했죠.” 운좋게도(?) 염씨는 시험에 합격했다.
통역의 ‘ㅌ’자도 모르면서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에게 늘 그렇듯이 당시의 시류는 염씨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통역대학원이 알려지기 시작하고, 동시통역 수요도 생기기 시작했다.
학회나 정부 차원에서, 또는 단체에서 국제행사를 유치하는 일이 많아졌고, 이에 따라 실습할 기회도 많이 생겼다.
처음 통역을 했을 때는 생각만 해도 온몸이 떨렸다.
“졸업도 하기 전이었는데, 거의 마이크 공포증 수준이었어요.” 단어도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더듬거리고, 목소리도 떨렸다.
그런 경험을 하면서 자신감을 쌓아갔다.
염씨가 그동안 통역을 해온 분야는 다양하다.
국제 행사, 학술회의뿐만 아니라 권투협회나 야구연맹 등 스포츠 관련 국제회의까지 두루 경험했다.
아셈회의 때는 물론 정상회담 때도 동시통역을 맡아 했다.
그런 염씨에게 이제는 IT 분야가 주무대가 됐다.
IT 분야는 전혀 생소한 영역이었다.
일단 용어부터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엔 업체 설명서를 보죠. 그런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담당자를 만나서 모르겠다고 하니까 용어들은 웬만하면 그냥 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은, 는, 이, 가 붙이는 것도 뭘 알아야 하지요.” 염씨는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업체에서 보내주는 설명서를 꼼꼼히 참고하고, 무엇보다 연설자에게 많이 물어보는 것이다.
“최신 기술이나 제품 소개, 핵심 내용은 발표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거든요.” 그래서 그는 연설자를 통해 많은 지식과 정보를 듣기 위해 가능한 사전 미팅을 갖는다.
그가 그동안 IT 분야에서 통역을 하면서 접한 업체들은 수도 없이 많다.
IBM, 마이크로소프트(MS), hp, 컴팩, 오라클, 컴퓨터어쏘시에이트(CA) 등등.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솔루션 등 전분야에 걸쳐 있다.
이 정도면 IT 업계의 흐름과 트렌드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최근에는 스토리지쪽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아무래도 데이터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니까 그렇겠죠? 예전에 클라이언트 서버가 막 중요해졌을 때, 메인 프레임은 죽었다고 했죠. 그런데 다시 대용량 서버가 관심사로 떠올랐어요.” 그는 거의 전문가 수준이 다 됐다.
자신있는 목소리로 말하라 염씨는 바쁠 땐 한달에 20일 이상을 통역하는 일로 보낸다.
준비하는 시간을 포함하면 거의 매일 통역과 관련된 일을 해야 한다.
거기다 일주일에 2시간 이상은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가 학생들에게 빠짐없이 주문하는 것은 항상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말하라는 것이다.
목소리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없는 목소리로 말하면 듣는 사람도 미덥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통역을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보통 사람들은 듣거나 말하거나 중에 하나만을 하고 있죠. 들으면서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하지만 통역은 전혀 새로운 의사전달 체계예요. 들으면서 말하는 것이죠. 이것은 훈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에요.” 따라서 통역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은 전문교육기관의 교육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거기다가 IT와 관련된 통역을 하려면 기본 지식을 익히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빠르게 변화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늘 새로운 기술과 용어에 익숙하지 않으면 전문통역사가 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 분야와 관련된 외국의 전문지를 일차적으로 읽는 것이 좋아요. 또는 전문지에 나오는 인터넷 관련 광고내용을 살펴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되지요. 용어에 익숙해지는 좋은 방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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