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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건설 경기 비포장길
[비즈니스] 건설 경기 비포장길
  • 이정환 기자
  • 승인 2001.11.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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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수주 반짝 증가, 민간공사도 제자리걸음… 업계 수익성 악화가 더 문제 경기가 과연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것일까. 흔히 건설 수주는 실물 경기에 3분기 정도 선행하고 실제 건설 투자는 2분기 정도 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즘처럼 건설 수주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준다면 본격적인 경기회복도 그리 멀지 않은 것으로 기대해볼 수도 있다.
최근 발표된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 9월 건설 수주 금액은 지난해보다 무려 47.9%, 건축 수주 금액은 67.1%나 늘어났다.
8월과 비교해도 42.2%와 8.4%씩 늘어났다.
9월 한달 수주 금액은 모두 6조2195억원으로 최고 기록인 1997년 9월의 92.2% 수준에 이른다.
아직 10월 통계가 발표되지 않아 섣불리 넘겨짚긴 어렵지만 이 정도면 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 국면에 접어든 게 아니냐는 전망도 가능하다.
게다가 이달 들어 무더기로 공공 공사 수주가 쏟아져나와 이런 긍정적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달에 입찰하는 100억원 이상 대형 건설 공사는 모두 72건에 5조3천억원 규모에 이른다.
해마다 이맘때면 수주가 늘어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보통 때보다 훨씬 큰 규모다.
모처럼 터져나온 즐거운 소식에 업체들마다 잔뜩 긴장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최윤기 연구위원의 생각은 좀 다르다.
'지난 9월 통계는 좀더 자세히 뜯어봐야 합니다.
6조2195억원 가운데 절반 가량을 두곳의 재건축 공사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실속없는 재건축 공사를 빼고 나면 상황이 크게 나아졌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 달마다 매기는 통계는 워낙 변동성이 커서 주의깊게 살펴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좋아지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다음달에 금방 고꾸라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9월 통계만 보고 내놓는 섣부른 전망은 큰 의미가 없다.
당장 10월 통계도 좀처럼 짐작할 수 없다.
작은 흐름에 속지 않으려면 큰 흐름을 제대로 읽을 줄 알아야 한다.
형편없었던 상반기 실적을 돌아볼 때 얼마 남지 않은 올해 전체 실적은 결국 잘해봐야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는 게 옳다.
최근 한결 나아진 분위기를 감안하더라도 그렇다는 이야기다.
늘어난 공공 공사 수주 가운데 대부분은 일찌감치 예정돼 있었던 고속도로 공사 물량이다.
민간 공사 수주는 불확실한 경기전망만큼이나 답답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지금 반짝 살아난 분위기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졌던 오랜 침체에 대한 반발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본격적인 경기회복은 결코 아닙니다.
'최 연구위원은 내년 하반기나 가야 분위기가 제대로 살아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았다.
그나마 최근 반짝 늘어나는 것 같았던 공공 공사 수주도 내년에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발표한 내년 건설업 경기 전망에 따르면 건설 수주는 내년 상반기에 3.2%까지 줄어들었다가 하반기에 어느 정도 경기회복이 가시화하면서 1.3% 정도 늘어나는 데 그칠 것으로 보인다.
건설 수주가 실물 경기에 선행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건설업 경기 전망은 안갯속처럼 불투명하기만 하다.
최근 정부가 경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내놓은 사회간접자본 투자 계획도 큰 효과를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회간접자본 투자 예산은 6% 늘어났지만 건설업에 들어가는 예산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도 대부분 진행중인 공사에 추가 투자하는 데 그쳐 신규 공사 수주는 여전히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이다.
내년 예산도 각박하기는 마찬가지다.
전체 재정 규모는 6.9% 늘었지만 사회간접자본 투자는 6%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전체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14.6%에서 14%로 오히려 줄어들 전망이다.
지금 같아서는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에 이만큼도 제대로 집행될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세수가 줄어들고 재정운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언제 줄지 모르는 불확실한 예산이다.
정부 SOC투자 큰 효과 없을 듯 업체들 수익성도 훨씬 나빠질 전망이다.
구조조정이 자리를 잡아나가면서 수익성이 조금 나아지는 듯했지만 이런저런 주변 여건이 제대로 받쳐주지 못하는 상황이다.
먼저 공공 공사의 수주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가뜩이나 올해부터 최저가 낙찰제가 도입되면서 낙찰률이 크게 낮아졌다.
60개 대형 건설회사만 놓고 볼 때 평균 낙착률은 지난해 81.2%에서 올해는 80.3%까지 낮아졌다.
1천억원이 들어갈 공사를 800억원에 받아온다는 이야기다.
너도나도 출혈경쟁에 뛰어든 탓에 한때는 낙찰률이 59.7%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정부가 뒤늦게 덤핑 낙찰을 규제하고 나섰지만 한동안 낙찰률이 크게 오르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나마 재미를 봤던 주택건설 공사도 올해를 고비로 수익성이 크게 나빠질 전망이다.
시멘트나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오른데다 재건축 용적률이 낮아졌고 이런저런 부담금도 잔뜩 늘어났다.
준농림지도 잇따라 폐지되고 소형주택 의무화 비율도 부활됐다.
비용이 늘어나는 만큼 분양가가 따라 올라줄 분위기도 아니다.
올해만 해도 시멘트 가격은 9.2%나 올랐지만 분양가는 2.2% 오르는 데 그쳤다.
아직까지는 아파트 분양률이 74%까지 오르는 등 그럭저럭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머지 않아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내년에 55만호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수요는 40만~42만호에 그칠 전망이다.
정부가 지금처럼 계속 공급 위주로 경기 부양책을 펼쳐나간다면 미분양 주택이 계속 늘어날 것이고 주눅이 든 업체들은 더욱 몸을 사리게 될 것이다.
결국 내년에 새로 건설될 주택은 40만호 안팎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현대증권 허문옥 연구원은 정부 정책의 한계를 지적한다.
'무턱대고 공사 물량을 늘린다고 경기가 살아나지는 않습니다.
건설업은 지금 수익성 악화라는 구조적인 한계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건설업은 여전히 침체에 빠져 있다.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성장성도 불투명하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호들갑스러운 전망이 무색할 정도다.

엇갈린 전망, 주가는 ‘껑충’

건설회사들 주가가 뜨는 이유는 언뜻 단순 무식했다.
미국 경기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으면서 수출이 크게 줄어들었고 자연스럽게 내수와 경기방어주쪽으로 관심이 쏠렸기 때문이다.
건설업지수는 지난 4월 35.59에서 11월22일 현재 59.38까지 66.8%나 뛰어올랐다.
그렇게 주가가 마구잡이로 뜨는 과정에서 아무도 건설회사들의 수익성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언뜻 통계 수치들은 경기가 최악의 상황을 벗어나 꾸준히 나아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현대증권 허문옥 연구원은 내년부터는 건설업이 전반적으로 수익성이 크게 둔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실물경기가 회복되기 전에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이제부터는 철저하게 실적과 수익성 위주로 접근해야 한다.
빈익빈 부익부가 심각해질 거고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이 이루어질 거다.
선별적으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
' 그러나 다른 의견도 만만치 않다.
동원증권 이선일 연구원은 적어도 내년까지는 활황이 계속될 거라고 내다본다.
'IMF 이후 공급이 크게 줄었다.
사업 승인부터 입주까지 2~3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저금리가 계속되면서 투자도 계속되고 있고 업체들 외형도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 엇갈리는 의견 가운데 분명한 것 하나는 재무구조가 건전하고 다양한 시공 경험과 시장 지배력을 갖춘 몇몇 업체들만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란 사실이다.
이달에 쏟아질 5조원의 수주를 서로 잡으려고 혈안이 돼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앞으로 몇년간이 이번 수주에 달려 있다.
본격적인 적자생존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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