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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정통부의 궁여지책 통할까
[포커스] 정통부의 궁여지책 통할까
  • 박창신(디지털타임스)
  • 승인 2001.05.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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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칭 규제로 비동기식 옥죄고 동기식에 ‘당근’… 사업자간 진흙탕 싸움 부추겨
‘비대칭 규제’란 뒤처진 사업자와 앞서 달리는 사업자와의 시장점유율 격차를 줄이기 위해 규제와 지원을 달리 적용하는 것이다.
양 장관은 “비대칭 규제가 시장에서 효과를 보도록 하겠다”면서 “구체적 내용은 3자구도가 완성된 뒤 발표하겠다”고 말한다.
비대칭 규제의 성격도 “기술이 아니라 시장점유율에 대한 규제”라고 명확히 밝히고 있어 선두 사업자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있다.
한국통신과 SK텔레콤, 두 사업자가 나눠 갖고 있는 유·무선 통신서비스 시장 판도를 변화시키겠다는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객관적 시장 중재자 역할 무시 사실 통신서비스 시장점유율 조정을 위한 차등 규제가 새로운 정책은 아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각 나라에서는 공정경쟁 환경을 조성하고 이용자 편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때론 눈에 띄게, 때론 눈에 보이지 않게 기존 사업자와 신규 사업자를 차등적으로 규제해왔다.
통신서비스 사업은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과 산업파급 효과가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규 사업자들에겐 진입장벽이 워낙 높아 기존 사업자들이 독점이나 과점을 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자유시장 경제론자들도 통신시장 질서를 위해 정부가 행정력을 동원하는 것에 관용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정통부 일부에선 비대칭 규제가 어디까지나 국내 시장환경에 관한 문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정부가 특정 기술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국제무역기구(WTO) 통신규정 위반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비대칭 규제는 새로운 것도 아니며, 무역마찰 소지도 없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생길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통부가 이번에 발표한 통신시장 비대칭 규제 방침은 몇가지 점에서 개운치 않은 게 사실이다.
우선 비대칭 규제는 3세대 이동통신 IMT-2000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거듭된 정부정책 실패를 만회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한국통신과 SK텔레콤을 비동기식 IMT-2000 사업자로 선정했다.
하지만 한장 남은 동기식 사업권의 주인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물론 단독으로 동기식 사업권을 신청해 탈락한 하나로통신이 다시 사업권 획득을 시도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정부는 하나로통신보다는 국내외 대기업이 두루 참여하는 역량있는 동기식 컨소시엄 구성을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문제는 시장의 반응이 싸늘하다는 것이다.
기존 2세대 동기식 이동통신 서비스와 별반 다를 게 없는 3세대 동기식 사업을 선뜻 하겠다고 나서는 대기업이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애초 지난 2월 예정했던 동기식 사업권 신청을 무기한 연기했다.
비대칭 규제는 결국 모든 게 헝클어진 상태에서 동기식 사업자를 유도하기 위한 당근의 하나로 등장한 것이다.
정통부 관계자들은 이미 지난 99년 IMT-2000 정책수립 단계부터 각종 보고서 등을 통해 비대칭 규제를 제시했다고 주장한다.
양 장관의 발언이 새삼스러울 게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비대칭 규제 방안은 정부 안에서조차 특별한 주목을 받지 못했다.
보고서에서 등장한 비대칭 규제는 IMT-2000 사업자로 신규 사업자의 진입을 허가하는 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보고서’와 달리 신규 사업자가 IMT-2000 사업에 진출하는 것에 줄곧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기존 3개 이동통신 사업자가 전국에 각각 3천개 이상의 기지국을 설치한 상황에서 신규로 진출한 사업자는 새로 망을 구축해야 한다.
최소한 1조2천억원 이상의 중복투자가 우려된다는 게 정통부 논리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사업권 심사에 앞서 하나로통신과 정보통신중소기업협회 등으로 구성된 한국IMT-2000 컨소시엄을 해체하도록 힘을 썼다.
결국 신규 사업자의 원활한 시장 진입을 위한 비대칭 규제 논리는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정통부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정통부는 지난해 7월6일 발표한 ‘2GHz대 이동통신(IMT-2000) 사업자 선정 정책방안’에서도 “기존 사업자나 신규 사업자 차별없이 능력이 우수한 사업자를 선정하겠다”고 명백히 밝혔다.
망 운용경험이나 축적된 기술이 없는 신규 사업자를 기존 사업자와 똑같은 잣대로 평가하겠다는 것은 신규 사업자를 탈락시키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동기식 사업자 선정이 계속 지체되자 정통부는 다시 그동안의 논리를 손바닥 뒤집듯 폐기처분하고 있다.
동기식 사업자에 대한 출연금 삭감, 기존 지배적 사업자의 시장점유율 제한, 상호접속료 차등 적용, 주파수 분배에서 동기식 사업자 우선 선택권 부여 등을 포함한 비대칭 규제를 전면적으로 내건 것이다.
정부가 시장의 중재자로서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진행해야 할 통신정책의 ‘절차’들이 동기식 사업자 선정이라는 ‘목표’를 위해 완전히 무시되고 있는 셈이다.
동기·비동기 모두 실패할 우려 지적도 안병엽 전 정통부 장관(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 총장)이 고백했듯, 정부는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SK텔레콤과 한국통신이 우리나라가 상당한 상용화 기술력을 갖춘 동기식을 선택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안 전 장관은 지난해 11월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 출석해 “지난 4월 중국 출장 때 동행한 SK텔레콤 사장이 동기식을 채택하겠다고 했고, 한국통신도 SK텔레콤을 따르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적어도 한곳은 동기식을 채택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마음을 놓고 있었다는 고백인 셈이다.
뒤집어 말하면, 애초 정부가 희망하고 예상했던 대로 한국통신과 SK텔레콤이 동기식을 선택했더라면 정부가 이제 와서 비대칭 규제라는 칼날을 들고 나설 이유가 없는 것이다.
공정경쟁 환경 조성을 위한 비대칭 규제는 ‘역차별’을 뜻한다.
따라서 자칫하면 국가 전체 통신산업의 경쟁력을 훼손할지도 모른다는 지적이 높다.
예컨대 정통부는 비동기식 사업자를 선정한 뒤 곧바로 비동기식 IMT-2000 서비스의 시작 조건으로 ‘단말기에 의한 2~3세대간 로밍’을 내걸었다.
단말기에 의한 로밍을 하려면 IMT-2000 사업자에게 할당된 2GHz대 주파수 대역과 이미 2세대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쓰고 있는 주파수 대역(800MHz, 1.9GHz대)을 모두 지원하는 듀얼밴드를 설치해야 한다.
게다가 동기식(CDMA)과 비동기식(WCDMA)에 모두 적용할 수 있는 모뎀칩을 장착해야 한다.
이러한 단말기가 출시되지 못하면 비동기식 사업을 시작할 수 없는데, 아무리 빨라야 2003년 상반기에나 이러한 단말기가 시장에 나올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이 때문에 애초 2002년 월드컵에 맞춰 내년 5월로 잡혀 있던 IMT-2000 시험서비스는 2003년 이후로 늦춰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비동기식 사업자인 KT아이컴 관계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비동기식 서비스를 시작해야 앞으로 장비와 서비스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데도 정부가 발목을 잡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지금 내놓고 있는 정부의 갖가지 비대칭 규제도 시장구도를 볼 때 애초 목적대로 경쟁력있는 동기식 IMT-2000 사업자를 형성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오히려 비동기식 사업자의 기세를 꺾는 부작용을 낳아 동기와 비동기식이 모두 실패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정통부가 비대칭 규제를 발표하자 통신서비스 업계는 또 한번 혼탁한 진흙탕 싸움을 시작했다.
그동안 거대 사업자에 눌려 기를 펴지 못했던 열세 사업자들이 저마다 자기에게 유리한 차별규제 방안을 제시하고 나선 것이다.
제2의 시내전화 사업자인 하나로통신은 한국통신을 대규모 기업집단(30대 그룹)으로 지정해 규제하고, 나아가 시내전화 접속료를 대폭 할인해 한국통신의 가입자 선로를 전면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나로통신의 현재 시내전화 시장점유율은 1.8%에 지나지 않는다.
이동전화 분야의 꼴찌 사업자인 LG텔레콤 역시 통신요금과 경품 등 판매비용을 합산해 규제하는 ‘요금 총량제’ 도입을 주장하면서 접속료 차등적용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LG텔레콤의 시장점유율은 14.6%에 그치고 있다.
반대편에 있는 한국통신과 SK텔레콤은 경쟁업체의 요구에 대해 ‘중복규제’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두 사업자는 정부의 인가를 받아야 시내전화와 이동전화 요금을 조정할 수 있어 사실상 차별규제를 받고 있는 만큼 추가 규제는 발목을 아예 끊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SK텔레콤은 공정거래위원회 결정으로 오는 6월 말까지 시장점유율을 50% 밑으로 낮춰야 하는 만큼 정부가 7월 이후에도 시장점유율을 통제할 경우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SK텔레콤 관계자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 29개국 가운데 1위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이 50%를 넘는 국가가 20개나 된다”면서 “업체 스스로 시장점유율을 줄이기 위해 디마케팅(Demarketing)을 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경쟁력 있는 동기식 사업자 유도를 통한 CDMA 산업의 보호와 육성에 초점을 맞춘 정부의 비대칭 규제는 한편으론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
규제와 통제를 해서라도 국가 산업 전체의 발전을 도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번 비대칭 규제는 수차례 판단 실수와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이를 만회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내놓았다는 혐의를 지우기 어렵다.
세계적으로 통신산업을 시장자율에 맡기는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는 가운데 새롭게 규제의 칼을 뽑아든 정부의 선택이 과연 시장에서 통할지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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