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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경제론] ⑤ 불법복제
[디지털경제론] ⑤ 불법복제
  • 윤기호(서강대 경제학교수)
  • 승인 2001.05.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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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만이 능사인가” 정보재 창출 촉진하고 이용자 많도록 단속 강화 전에 득실 따져야 정부는 최근 또다시 대대적인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단속을 실시했다.
디지털 경제에서 지적재산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자산이고, 특히 우리나라처럼 물질적 부존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지적재산 보호는 더욱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무리한 단속으로 부작용이 빚어지고, 그 결과 사용자들의 불만도 고조되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필자가 가졌던 느낌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법복제를 도둑질과 같은 행위로 간주하고 있구나’ 하는 것이다.
즉 소프트웨어 불법복제는 정보재라는 다른 사람의 재산을 ‘불법적으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좋지 않은 행위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카피레프트’ (copyleft)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불법복제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가 떳떳하지는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재산권은 실제로는 매우 복잡한 개념이다.
어떤 사람이 특정한 재화에 대한 소유권을 갖고 있다는 것이 반드시 그 사람이 그 재화에 대해 무한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그린벨트 내의 토지나 개발제한구역 안의 건물일 경우 우리는 이들 재산의 소유자들이 자신의 재산권 행사에 여러가지 제약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이렇게 재산권 행사에 일정한 제약을 가하는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사회전체의 복리를 증진시킬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물질적인 재화의 경우에도 이렇듯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두는데 특성상 비경합성을 지니는 정보재의 경우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정보재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이 그 재화를 사용하는 것을 배제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불법복제 단속, 더 일반적으로 지적재산권 제도는 사회전체의 복리를 가장 크게 하는 방향으로 시행돼야 한다.
우리나라 저작권법은 문화의 향상발전을,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은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각각 규정하고 있다.
즉 지적재산권 제도는 정보재 생산자의 재산을 무조건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된 정보재를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것을 촉진하기 위해서도 존재하는 것이다.
불법복제 단속 강화는 정보재 생산자들에게 판매상의 이점을 제공함으로써 정보재 개발과 창조를 촉진시키는 효과가 있다.
반면에 단속은 이미 생산된 정보재의 사회적인 이용을 제한하는 효과도 있다.
이와 더불어 단속의 강화는 이미 생산된 정보재를 이용해 새로운 정보재를 생산하는 행위, 즉 후속창조 행위를 저해하는 효과도 있다.
지적재산권 제도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이처럼 상반된 효과를 어떻게 잘 조화시키느냐에 있다.
한편으로는 유용한 지식과 정보의 창출을 도모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산된 지식과 정보를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현실에서 과연 불법복제 단속 강화가 득이 되는지 아니면 실이 되는지를 냉정히 따져보고 단속의 방향을 정해야 한다.
분석 결과에 따라서는 오히려 더 많은 불법복제를 허용하는 것이 우리나라 지식정보화 달성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미국 등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강대국들의 통상압력 때문에 지적재산권 보호를 약화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하지만 요즈음 지적재산권 보호와 관련한 전반적인 분위기는 단속 강화에 따른 여러가지 효과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나치게 자발적이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든다.
특히 패키지 소프트웨어의 상당 부분을 외국의 생산자가 공급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볼 때 말이다.
19세기 말 세계 최대의 불법복제국은 미국이었다.
당시 미국은 영국에서 출판된 도서를 무차별적으로 복제했는데 그 이유는 당시 미국의 저작권법이 자국에서 생산된 저작물은 보호해주었지만 외국에서 생산된 저작물은 전혀 보호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21세기 초 우리나라에서 외국 소프트웨어를 보호해주지 않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는 불가능하다.
이미 전세계적인 저작권 협약과 앞에서 언급한 통상압력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산업촉진정책과 불법복제 단속은 어느 정도 분리해서 전략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BSA(Business Software Alliance)가 매년 작성하는 세계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율에 따르면 99년 우리나라 불법복제율은 50%이다.
이는 선진국의 불법복제율보다는 높지만 경제발전 상태가 비슷한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다소 낮은 수치이다.
특히 BSA가 소프트웨어 생산업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라는 점에서 실제 불법복제율은 더 낮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불법복제 단속에 따른 제반효과를 좀더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이다.
이런 분석 결과에 따라 과연 지적재산권 제도를 강화하는 것이 우리나라 실정에서 도움이 되는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한다.
소프트웨어 산업기반을 강화해 디지털 경제시대에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나아가는 길을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책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국민을 마치 소프트웨어 도둑 취급하는 형태의 불법복제 단속이 최선의 선택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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