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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프라이머리 CBO '잡음'
[포커스] 프라이머리 CBO '잡음'
  • 장근영
  • 승인 2001.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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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탈락 업체들, 선정과정 의혹 제기하며 대거 반발, 주간사 고발키로
기술신용보증기금(기보)은 5월8일 올해 상반기 발행시장 채권담보부증권(프라이머리CBO) 보증 대상기업 가운데 1차로 175개 업체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기보는 이들 업체에 대해 모두 3800억원을 100% 보증하게 된다.
프라이머리CBO 2차와 3차분도 신청접수가 마감된 상태다.
이들을 대상으로 올해 상반기에 모두 1조원을 지원한다.
하반기에도 6천억원 규모의 프라이머리CBO가 발행된다.


하지만 1차 선정결과가 발표되자마자 업체들의 항의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탈락한 업체들은 다음날 곧바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결성하고 부당하게 선정과정에서 제외된 147개 업체들에 대해 조처를 취할 것을 주장했다.
특히 이들은 선정과정의 의혹을 제기하고 절차상의 의문점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정부가 경기침체 여파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벤처·중소기업을 돕기 위해 내놓은 프라이머리CBO가 선정과정 의혹과 잡음으로 얼룩지고 있는 것이다.
3월2일 1차 신청기업 마감 때 2천개가 넘는 업체들이 대거 신청한 데서 알수 있듯이 프라이머리CBO는 벤처·중소기업의 호응을 받았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했다.
하지만 막상 1차 선정업체가 결정되자 애초의 따뜻했던 시선은 차갑게 바뀌고 말았다.
정부의 야심찬 기대도 빛이 바랬다.
비대위 “선정의혹 밝혀라” 1차 주간사로 선정된 동양현대종합금융(동양종금)은 3월2일 신청 접수를 마감하고 예비서류심사에서 900여개 업체를 골랐다.
1차로 선별된 이들을 대상으로 한국신용평가, 한국신용정보, 한국기업평가 등 3개 신용평가기관이 심사작업을 벌여 570개 업체가 회사채 발행에 요구되는 CCC 이상의 신용평가등급을 받았다.
이들을 대상으로 다시 투자자문회사인 IMM투자자문이 기업가치를 평가해 전환가격(전환사채를 발행회사의 주식으로 전환하는 가격)을 산정하고 그 결과를 동양종금에 넘겼다.
동양종금은 320개 회사를 골라 업체들과 각각 발행금액을 협의하고 4월25일 전환사채 인수동의서를 체결했다.
이 업체들은 동양종금이 제시하는 일정에 따라 정관 개정 등 프라이머리CBO 발행에 필요한 절차를 마치고 있었다.
이 명단은 업체별로 4개의 군으로 분류돼 기보에 넘겨졌다.
4군은 후보군으로 기보의 최종낙점 때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고, 나머지 3개 군은 최종 선정업체의 120%에 이르렀다.
그 결과 175개 업체가 최종 선정됐다.
선정 결과가 발표되자 탈락한 벤처·중소업체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이미 동양종금이 제시한 일정에 따라 CBO 발행에 필요한 절차를 마친 상태인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격이라며 항의하고 나선 것이다.
탈락 업체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3개월 동안 정말 열심히 준비해 심사과정을 통과했다고 믿었다”며 “정관 개정 등 사채 발행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동양종금은 결국 사기를 친 것 아니냐”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사태가 이렇게 불거지자 기보는 탈락업체들을 위해 3차 주간사인 대우증권이 발행하는 프라이머리CBO 풀을 400억원 더 늘리고 18일 신청을 마감했다.
탈락한 업체들은 대부분 다시 신청을 했지만 뒷맛은 개운하지 않은 표정이다.
비대위의 한 관계자는 “400억원으로 실제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업체가 몇개나 되겠냐”며 “기보가 책임을 무마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내놓은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비대위는 18일 국민회의와 자민련 등 여당에 진정서를 제출했고, 조만간 동양종금을 사기혐의로 형사고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시행착오는 인정하지만 억지는 안 된다 프라이머리CBO 제도는 이번에 처음 시행하는 제도가 아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신용보증기금(신보)에서 보증한 프라이머리CBO 관련 보증잔액은 4조원에 이른다.
당시 신보는 대기업, 중견기업 등을 상대로 업무를 진행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파장이 없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아무래도 벤처나 재무구조가 열악한 중소업체들의 경우 수익모델이 확실하지 않고 영업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뒷말이 나올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기보쪽은 이번 사태가 참가업체들의 오해에서 빚어진 일이라고 해명한다.
기보가 최종 보증기관이기 때문에 심사과정이 있는데 이를 업체들에게 통지하지 않아 문제가 벌어졌다는 점을 시인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동양종금에서 사채인수계약서까지 쓰게 한 것은 동양종금의 실수라고 강조한다.
일부에서 신용등급 B급 업체는 떨어지고 C급 업체는 들어간 사실을 두고 말이 많은 것은 기보의 고유권한이므로 간섭할 바가 못된다는 입장이다.
기보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최종 보증기관이고 따라서 독자적으로 업체들의 가능성을 판단할 권한이 있다”며 “신용등급을 단순히 성적표 개념으로 보면 안 된다”고 말했다.
기보에 따르면 선정된 업체의 82%가 기보의 보증업체다.
따라서 해당 영업점의 직원을 동원해 이전의 평가경험과 장래성을 충분히 감안해 업체를 선정했기 때문에 평가기준을 문제삼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신생 벤처들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신용을 평가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고, 기업의 성격에 따라 신용을 평가할 수 있는 잣대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항변한다.
동양종금은 이번 사태가 사기로 문제삼을 만한 사안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진행이 미숙한 점은 없지 않지만 최종 심사에서 탈락했다고 집단적으로 반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다.
그러나 비대위는 40%가 넘는 업체가 탈락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동양종금 관계자는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이 맛있냐고 물으면 다들 자기집 자장면이 맛있다고 대답한다”면서 “정부 정책의 기준을 믿어줘야지 장래성을 앞세워 자기가 빠진 걸 화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프라이머리CBO 발행취지 살려야 성공 주간사인 동양종금과 보증기관인 기보 모두 절차상의 문제는 인정한다.
하지만 심사과정과 채권등급, 발행금액 등을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한 관계자는 “하반기에 다시 신청하면 되지 않느냐”며 “기술이나 수익모델 개발에 힘쓴다면 하반기에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여유를 가지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탈락업체들은 석달 동안 준비하면서 들인 기회비용이 얼만데 버젓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인다.
올해 발행하는 프라이머리CBO는 벤처·중소기업들의 자금난에 숨통을 터줄 것이라는 점에서 장점이 많다.
하지만 보증업체인 기보는 위험자산에 대해 보증을 하는 셈이므로 자체적으로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대위변제(보증업체의 돈을 대신 갚는 것)의 위험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전환사채 발행 후 기업 사정이 좋아져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참여 업체들은 상당한 혜택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5%도 안 되는 표면금리만 물다가 코스닥이나 거래소에 올라간다면 그야말로 성공인 셈이다.
하지만 전환에 실패해 만기보장수익률을 물어야 한다면 금리 혜택도 아주 크다고는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신용등급이 B인 회사의 경우 10.5~12% 대의 이자를 물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조건도 당장 자금난에 허덕이는 업체들에게는 감지덕지다.
프라이머리CBO는 기업신용이 열악한 기업들의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한 제도다.
하지만 작은 업체들의 경우 CBO 발행에 참여한 경험이 없고, 따라서 절차상 오해의 소지도 많다.
주간사나 보증기관들의 경우 사전에 충분히 고지를 했어야 옳다.
또 참여한 업체들에게 객관적으로 심사를 한다는 확신을 심어줬어야 했다.
업체들도 과거의 경험에 비춰 정부의 ‘눈먼 돈’을 따낸다는 심정으로 기웃거리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그야말로 기술과 경쟁력은 있는데 자금 사정 때문에 힘들어하는 벤처나 중소기업을 돕는 제도로 프라이머리CBO가 거듭나야 한다.
프라이머리CBO 제도를 도입하는 데 앞장섰던 재경부 최중경 실장은 “재원이 허락하는 범위 에서 기업들을 선정하다보니 쿼터에 걸린 게 안타깝다”면서 “현재 보증기관의 대위변제율이 5%도 안 되는 상황에서 95%가 성공해 국내총생산에 기여한다면 이는 매우 유용한 제도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원천 봉쇄된 회사채 유통시장의 숨통을 틔워라
자산유동화증권(ABS)은 정크본드라고 불리는 투기등급 회사채와 우량 회사채, 주식 등의 유가증권, 대출채권과 주택저당채권 등의 채권과 부동산 등으로 풀(Pool)을 구성해 발행한 증권을 말한다.
이 중 회사채를 담보로 발행하는 증권이 채권담보부증권(CBO)이다.
은행에서 어음을 모아 표지어음을 발행하는 것처럼 개별 기업의 회사채를 모아 새로운 증권을 발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CBO 등 자산유동화 증권을 발행하게 되면 자산의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즉 기업이 채권을 발행해 이를 매각하게 되면 자산건정성을 높일 수 있고 자산의 회전율을 높일 수 있다.
유동화전문회사(SPC)는 이 위험자산들을 모아 ABS를 발행해 시장에 유통시킨다.
자산유동화제도는 98년 말 국내에 처음 도입됐다.
IMF 이후 일반 회사채 발행시장이 위축되고 금융구조조정 등으로 금융기관으로부터의 대출이 어려워지며서 새로운 금융기법에 의한 자금조달 수단이 필요해진 것이다.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낮은 상황에서 이 제도는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정 회사의 회사채를 인수하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여러 회사의 채권을 모아 유통시키게 되면 그만큼 위험부담을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풀을 구성한 10개의 기업 중 한 기업이 부도가 나도 전체적으로 볼 때는 손실을 줄일 수 있다.
일종의 확률게임인 셈이다.
CBO는 신규 발행하는 채권을 기초로 발행하는 발행시장CBO(프라이머리CBO)와 이미 발행된 채권을 바탕으로 발행하는 유통시장CBO(세컨더리CBO)가 있다.
프라이머리CBO는 프라이머리(Primary:처음)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기업이 신규로 발행하는 회사채를 증권회사가 전액 인수해 유동화전문회사(SPC)에 매각하면, SPC가 CBO를 발행해 기업 자금 조달을 가능하게 하는 금융기법이다.
프라이머리CBO를 발행하는 회사들은 자체적으로 채권발행 능력이 없는 회사가 많고 결과적으로 신용등급이 낮을 수밖에 없다.
이는 채권발행이 어려운 회사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당연한 이치다.
IMF 이후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회사채를 발행하는 일이 힘들어진 상황에서 프라이머리CBO는 기업의 숨통을 틔워줬다.
지난해 발행된 물량만도 6조원이 넘는다.
올해 발행하는 프라이머리CBO는 벤처 등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중소업체들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 3월2일 1차 프라이머리CBO 신청접수를 마감했을 때 2300개가 넘는 업체가 참여한 것은 그만큼 벤처들의 자금사정이 나쁘다는 것을 말해준다.
현재 166개 업체가 지원을 받게 됐지만, 2차와 3차, 또 하반기에 6천억원 규모의 자금 조성이 이루어지면 더 많은 업체들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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