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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가전 3사 "디지털로 다 바꿔"
[IT] 가전 3사 "디지털로 다 바꿔"
  • 김성재(한겨레경제부)
  • 승인 2000.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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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LG·대우전자 디지털가전 시장선점 전쟁…마케팅, 조직문화까지 '디지털화' 시도 “바꿔, 바꿔, 디지털로 다 바꿔!” 냉장고, 선풍기, 컬러TV 같은 백색가전으로 국내외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온 삼성전자와 LG전자 최고경영자들은 지난해 여름부터 직원들에게 마치 입을 맞추기나 한 듯 똑같이 외쳐댔다.
LG전자 구자홍 부회장은 지난해 7월 중순 열린 ‘디지털LG 선포식’에서 “이 길은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선언했다.
석달 뒤 열린 삼성전자 창립 30주년 기념식에서 윤종용 부회장은 “우리가 펼칠 디지털 세계에 고객 모두를 초대하자”는 슬로건을 발표했다.
그로부터 약 1년이 지난 지금, 디지털 가전제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이들 ‘전자업계의 거인’이 벌이는 싸움은 총성만 없을 뿐 그야말로 ‘전쟁’이다.
‘먼저 차지하는 기업이 다 차지한다’는 사생결단의 자세로 공방전을 펼치고 있다.
이들에게 선점은 곧 ‘신앙’이다.
“3인치 차이에 주목해달라” 신경전 지난 봄 LG전자가 세계 최대 사이즈인 60인치 PDP(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 TV를 개발했다고 발표하자 삼성전자와 삼성SDI(삼성전자에 TV용 PDP 납품)는 몇달 뒤 63인치짜리 제품을 들고나왔다.
삼성SDI 김순택 사장은 “3인치 차이에 주목해달라”며 으시댔다.
이뿐 아니다.
LG전자가 ‘Digital LG’라는 새로운 기업이미지 브랜드로 ‘장군’을 부르자 삼성전자는 ‘Digital’과 ‘All’을 합친 ‘Digitall Samsung’을 만들어 ‘멍군’을 쳤다.
두 기업을 이끄는 최고경영자의 이력을 봐도 이 싸움이 진검승부임을 알 수 있다.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부문을 이끄는 장수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신화’를 일궈낸 진대제 사장이다.
미국에서 공부한 진 사장은 IBM 같은 세계 최고의 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전문경영인이다.
LG전자는 이에 질세라 디지털TV 기술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백우현 사장을 영입했다.
백 사장은 미국 <브로드캐스팅 앤드 케이블>이 매년 세계 디지털TV 분야 공로자에게 주는 ‘디지털 선구자상’의 올해 수상자로 뽑힌 엔지니어 출신 전문경영인이다.
두 기업은 이들을 앞세워 세계 최첨단 디지털 기술을 확보하고 기업이미지와 조직은 물론, 제품 개발부터 상품화, 마케팅까지 전과정을 디지털화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우선 디지털 시대에는 기업이미지가 성공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판단했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기술이나 제조경쟁력 같은 하드웨어 요소가 기업 경쟁력을 좌우했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브랜드 파워와 마케팅 능력 같은 소트프웨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부터 고객들의 머릿속에 깊이 박힌 소니의 ‘It’s Sony’라는 브랜드와, 필립스의 ‘Let’s make things better’란 슬로건을 5년 안에 ‘Samsung Digitall, Everyone’s invited’로 바꾸겠다는 야심찬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삼성전자, 2005년 디지털 매출 90% 계획 조직도 디지털 사업형으로 전면 개편했다.
정보가전 총괄, 미디어서비스 사업팀 등에 흩어져 있던 디지털 제품 사업을 ‘디지털미디어총괄’로 통합하고 제품 개발부터 상품화, 마케팅까지 전담하도록 했다.
디지털미디어총괄의 각 사업을 ‘엔터테인먼트’ ‘컴퓨팅’ ‘네트워킹’의 3대 주력사업군으로 묶어 디지털 사업과 서로 접목시키도록 했다.
기존의 TV, VCR, 캠코더 같은 아날로그 가전제품을 디지털TV, DVD플레이어, 디지털카메라로 바꾸고 그동안 해오던 PC사업을 휴대형 정보기기와 인터넷 관련 제품으로 확대시킨다는 것이다.
이런 디지털 가전을 궁극적으로 하나로 묶는 것이 디지털미디어총괄이 추진하는 ‘홈네트워크’ 사업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전국을 순회하는 디지털 제품 행사를 벌였다.
그동안의 준비기간을 끝내고 이젠 디지털 기업의 본색을 드러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진대제 사장은 행사 마지막날 “30년 동안 아날로그 장사를 해온 삼성전자가 이제 디지털 사업으로 대전환했다”고 선언했다.
진 사장은 “디지털 시대에는 3위 안에 든 기업만이 생존하는 3강의 법칙이 통용될 것”이라며 “반도체와 초박막액정화면(TFT-LCD)에서 확보한 세계 1위의 기술을 바탕으로 2005년 매출 30조원을 달성해 세계 3대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장담했다.
삼성전자의 변신에는 ‘돈되는 사업’에 투자해 세계 최고의 품질과 기술력을 갖춘 제품으로 승부하겠다는 원칙론이 숨어 있다.
삼성전자는 이미 세계 최초로 지상파 방송수신이 가능한 디지털TV를 출시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기술 표준화와 규격화를 선도하고 있다.
또 인터넷과 디지털방송, IMT-2000 상용화에 발맞춰 올 가을부터는 반도체, 통신, 컴퓨터, 가전 분야의 기술을 결합한 ‘디지털 컨버전스’ 제품을 본격적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특히 기술, 디자인, 품질의 일류화를 통해 디지털TV, DVD 등 7개 제품의 세계 시장 점유율을 오는 2003년까지 15% 이상으로 끌어올려 이 분야에서 다시 한번 ‘1등신화’를 창조하겠다는 야심이다.
2003년 총매출 목표인 20조원에는 디지털 제품 비중이 60%나 된다.
2005년에는 매출 30조원에 90%까지 디지털 제품 비중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넥타이를 푼’ 엘지, ‘재기의 꿈’ 대우 삼성전자의 최대 경쟁자로 떠오른 LG전자의 디지털 변신도 이에 못지않게 역동적이다.
LG는 몇몇 유럽 국가의 디지털TV 시장을 이미 석권했고 디지털 냉장고 등 다른 제품에서도 세계적인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구자홍 부회장은 스스로를 ‘디지털 전도사’로 부르며 회사 전체의 디지털화에 나서고 있다.
구 부회장은 “디지털 혁신은 단순히 경영관행이나 제품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업단위 내 각 회사의 조직문화와 경영시스템, 사업구조까지 모두를 디지털 변화에 맞게 바꾸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지난 3월 LG전자는 업계 최초로 모든 직원들의 ‘넥타이를 풀게’ 했다.
공룡같은 대기업 직원이지만 벤처기업인처럼 능동적이고 유연하게 사고하고 행동하라는 의미에서다.
한 벤처업체 직원은 “서울 여의도 트윈빌딩에 가면 테헤란밸리 못지않은 생기를 느낀다”고 말했다.
백색가전 제품의 트로이카 시대를 함께 했던 대우전자도 다소 늦었지만 이 변화에 가세하고 있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중이지만 올해 들어 출시하는 신제품들은 거의 대부분 디지털 제품이다.
장기형 대우전자 사장은 “디지털 기업으로의 변신이 워크아웃에서 벗어나기 위한 더 없이 좋은 촉매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부도 직전에서 살아난 대우전자이지만 올해 내놓은 디지털 신제품은 삼성전자나 LG전자에 뒤지지 않는다.
디지털방송을 앞둔 지난달에는 디지털 위성방송수신기가 내장된 32인치 디지털TV도 시장에 내놨다.
현재 디지털, 정보통신, 반도체, 정밀부품, TMA 등 5개 사업부문으로 구성된 조직을 활용해 디지털 정보가전의 비중을 2004년까지 매출액의 30%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대우전자 관계자는 “현재 매출액의 5% 정도를 디지털 기업으로 변환하기 위한 투자비로 책정하고 있다”면서 “워크아웃으로 앞으로 2, 3년간 이자감면 등의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에 내실있게 디지털 사업으로 변환한다면 과거의 명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대우의 디지털 사업 핵심전략은 선택과 집중이다.
세계일류가 가능한 품목을 선택해 집중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간결한 기능과 저가제품으로 디지털 실용화를 주도하고 세계 주요 업체와도 전략적 제휴를 맺어 윈윈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을 다듬고 있다.
“디지털은 우리가 앞선다” “불과 몇년 전인 아날로그 시대, 우리는 후발업체였기 때문에 미국과 일본 선진 메이커의 꽁무니만 좇아다녔습니다.
3류기업이었던 셈이죠. 먼지가 뽀얗게 쌓인 채 미국 슈퍼마켓 구석에 전시된 TV들이 바로 메이드 인 코리아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디지털 혁신은 우리가 저들에 비해 앞서 시작했거나 같은 출발선에 서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는 미국과 일본 기업을 따돌리고 세계 일류기업의 명예를 찾을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입니다.
” 가전업체 한 임원의 희망에 찬 말이다.
국내 업체들이 이 기회를 십분활용해 그들 말대로 ‘세계 최강의 디지털 기업’으로 설 수 있을지는 앞으로 2, 3년 안에 판가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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