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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타임머신] 워크스테이션
[IT타임머신] 워크스테이션
  • 유춘희
  • 승인 2000.09.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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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기지’는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우리나라에서 ‘워크스테이션’(Workstation)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80년 말부터다.
하지만 워크스테이션이 뭔지 딱 부러지게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기업전산실 컴퓨터는 미니컴퓨터, 개인용 컴퓨터는 PC로 대별되던 시절, 그 틈새로 얼굴을 내민 워크스테이션은 처음엔 신기한 전산장비였다.
초기에는 단어 그대로 ‘작업기지’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소개된 워크스테이션은 온라인 단말기로 만들어진 일본 NEC의 N-5200, 후지쓰의 DF-9450, 그리고 효성 파워-5800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워크스테이션 족보는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들이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워크스테이션으로 불린 까닭은 이 제품을 판 삼성전관(현 삼성SDI), 대우통신, 동양나이론(효성)이 사용자를 유혹하기 위해 광고 문구에서 워크스테이션이라고 우겼기 때문이다.
더미터미널을 미니컴퓨터로 둔갑시킨 것이다.


워크스테이션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었으니 얼렁뚱땅 갖다 붙여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모니터가 컬러였고, 조금 컸을 뿐 생김새는 16비트 PC와 다를 바 없는 것이 700만원씩이나 했다.
게다가 IBM마저 온라인 단말기인 IBM-5550을 ‘멀티스테이션’이라고 부르면서 더 헷갈리게 했다.
정부도 한몫 거드는데 16비트 XT 사양을 가진 행정전산망용 단말기를 ‘다기능 사무기기’라고 한 다음 괄호 안에 워크스테이션이라고 썼다.
워크스테이션은 설계사무소나 대기업의 디자인부서에서 CAD/CAM이나 그래픽, 애니메이션, 시뮬레이션, 맵핑, 이미지 프로세싱 분야에 주로 활용했다.
전자출판, 증권검색, 금융전산 등 사무자동화용으로 활용범위가 넓어지면서 ‘개인용 워크스테이션’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워크스테이션은 값이 비싸고 전문가들이 쓰는 장비였기 때문에, ‘개인용’이라는 말이 붙었어도 보통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낯설었다.
워크스테이션이 처음 등장한 것은 80년대 초 아폴로컴퓨터의 DN-100 발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폴로컴퓨터에 이어 82년 썬마이크로시스템이 제품을 내놓으면서 워크스테이션 시장이 형성됐다.
89년에 휴렛팩커드(HP)가 아폴로를 인수하고, IBM과 디지탈(DEC), 실리콘그래픽스가 참여하면서 치열한 시장쟁탈전이 펼쳐졌다.
썬은 교육과 금융 분야, HP와 IBM·디지탈은 설계(CAD/CAM/CAE), 실리콘그래픽스는 시뮬레이션과 그래픽 작업에 강세를 보였다.
한국 컴퓨터산업의 꿈나무 키우기
91년 3월 국산이라는 꼬리표를 단 최초의 워크스테이션이 선보였다.
삼보컴퓨터가 20MHz의 썬 SPARC 칩을 장착한 12.5밉스 성능의 워크스테이션을 내놓은 것이다.
외국의 선두업체들이 100밉스급 데스크톱 기종을 막 내놓던 때였다.
삼보를 시작으로 그 해에 금성사와 현대전자가 연달아 썬 기반의 국산 제품을 출시하면서 우리나라도 썬 호환 워크스테이션을 생산하는 나라에 합류한다.
이들이 모두 썬 기종을 택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썬이 10년 동안 닦아놓은 시장이 있어 시장개척을 위해 뛰지 않아도 됐다.
게다가 이미 썬 기종에 포팅된 수천가지 소프트웨어를 그대로 돌릴 수 있기 때문에 애플리케이션을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당시 썬은 IBM의 PC 호환기 정책을 흉내내 스파크 칩을 업계 표준으로 키우겠다며 대대적인 호환기 장려정책을 폈다.
삼성전자는 3사와 달리 인텔 기반의 i860을 채택한 ‘매직스테이션’을 발표했다.
현재 삼성전자 PC 브랜드인 매직스테이션은 원래 워크스테이션 이름이었고, 당시 PC 브랜드는 ‘알라딘’이었다.
삼성이 인텔 기반으로 간 것은 칩 설계에서부터 시스템 개발, 판매에 이르기까지 전 공정을 자체적으로 확보한다는 전략 때문이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유닉스워크스테이션이 아니라 NT 워크스테이션을 개발한 셈이다.
컴퓨터 4사가 국산 워크스테이션을 내놓던 91년은 PC 수출이 곤두박질치고 있던 터라 전문가들은 워크스테이션이 한국 컴퓨터산업의 꿈나무가 될 것이라고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성급한 사람들은 “이제 PC 시대는 막을 내리고 워크스테이션이 컴퓨터 시장의 주역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했다.
둘의 쓰임새가 다른데도 PC를 대신하는 게 워크스테이션이라고 주장했고, 거기에 시비를 거는 사람도 없었다.
왜? 잘 몰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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