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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특집] 사이버 고향, 그 향긋한 속살에 안기면
[한가위특집] 사이버 고향, 그 향긋한 속살에 안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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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0.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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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떠나는 고향 여행…그곳에도 고목나무 서 있고 강물이 흐르네
마을 입구에 말없이 서 있는 고목나무처럼 고향은 먼저 떠나는 법이 없다.
어릴 적 눈물을 닦아주던 어머니의 소맷자락처럼, 세상살이가 힘에부칠 때면 먼저 손을 내밀어 부축해주는 것도 고향이다.
고향엔 사립문을 열고 들어서면 맨발로 달려나올 것 같은 부모형제의 기억이 산다.
문득 그들의 환한 웃음을 떠올리면 팍팍한 일상에도 반짝 윤기가 돈다.
고향, 부모, 가족, 그 앞에 서면 설탕 풀어지듯 마음이 푸근해진다.
인터넷으로 떠나는 고향 여행…그곳에도 고목나무 서 있고 강물이 흐르네 마을 입구에 말없이 서 있는 고목나무처럼 고향은 먼저 떠나는 법이 없다.
어릴 적 눈물을 닦아주던 어머니의 소맷자락처럼, 세상살이가 힘에부칠 때면 먼저 손을 내밀어 부축해주는 것도 고향이다.
고향엔 사립문을 열고 들어서면 맨발로 달려나올 것 같은 부모형제의 기억이 산다.
문득 그들의 환한 웃음을 떠올리면 팍팍한 일상에도 반짝 윤기가 돈다.
고향, 부모, 가족, 그 앞에 서면 설탕 풀어지듯 마음이 푸근해진다.
사이버 세상에도 정은 흐른다.
한국의 인터넷은 인(人)터넷이다.
고향 내음과 그리움, 가족간의 정이 묻어나는 사이버 공간을 찾는 네티즌들의 발길이 잦다.
동창회 사이트 따위는 두말할 나위 없고 개인 홈페이지엔 너나없이 고향과 가족에 대한 메뉴가 빠지지 않는다.
‘사이버 고향’에도 산허리를 돌아 흐르는 강물이 있고 논밭매는 부모님의 굽은 허리가 있고 구슬치기하던 코흘리개 동네친구들이 있다.
학교운동장 아름드리나무는 지금… 경북 봉화군 춘양면에서 태어난 권정아(43)씨는 그동안 접어두었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목이 탄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 손에 끌려 부산으로 내려갔다.
춘양은 조상대대로 살아온 고향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대에서 모든 가산을 탕진하는 바람에 생활이 너무 곤궁했다.
함께 자맥질하던 친구들, 학교운동장의 아름드리 나무와 헤어지면서 그의 가슴에 옹이가 들었다.
그래서일까. 그가 춘양면 홈페이지 choonyang.co.kr 게시판에 올린 고향에 대한 추억은 절절하다.
“향수 많이 달래고 갑니다.
사이버 공간에서 오랫동안 그리웠던 고향의 이름을 접하니 눈물이 자꾸 찔끔찔끔 나네요. 옛날 친구하고 앵두 따먹던 그곳. 30년이 넘은 얘기랍니다.
남산편에 살던 내 친구 점이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가고 있는지….” 춘양은 정감록에서 난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꼽을 만큼 오지였다.
하지만 권씨의 어릴 적 기억과 지금, 그 30년 세월의 간극 속에 들어 있던 산업화의 물결을 피할 수는 없다.
비만 오면 진흙탕길로 변하던 시내는 말끔한 아스팔트로 포장됐다.
긴 장꾼 행렬이 이어지던 역전과, 발디딜틈 없이 북적대던 싸전은 ‘덜가진’ 사람들이 초라하게 사는 곳으로 바뀌었다.
춘양에서 제일 ‘잘 나가던’ 제재소에는 할인점이 세워지고 있다.
고향에서 개인적으로 춘양면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 변기환(32)씨는 “변하는 세월 속에 줄어든 건 사람이고 늘어난 건 자동차”라고 말한다.
그래도 달라진 겉모습이 고향의 속살까지 어쩌지는 못한다.
고향은 초라하든 화려하든, 이름만 들어도 반가움에 손을 덥썩 잡아줄 것 같은 넉넉함이 있다.
권씨는 여름휴가 때 그렇게 기다렸던 고향과의 짧은 만남을 벅찬 심정으로 게시판에 올려놓았다.
마을회관,장터,사랑방…사이버 고향의 또다른 이름 “30년 만의 귀향이었습니다.
코끝 찡해서 서성거리는 그런 나를 낯설어하며 그 땅마저 낯설어 주춤하던 가족들을 붙잡고 춘양을 한바퀴 돌았습니다.
언뜻 어디에도 없는 듯했던 유년의 기억 속 고향모습이 세월을 덕지덕지 걸친 얼굴로 여기저기서 튀어나왔습니다.
학교운동장 아름드리 나무 하며 남산편 반쪽짜리 구멍가게 하며, 학교마당 드는 길 돌다리 하며, 돌 올려놓고 도망쳤던 철길 하며….” 춘양면 홈페이지에는 어릴 적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의 사연이 많다.
그만큼 고향에 대한 향수가 간절한 터이다.
가물가물한 기억은 게시판을 통해 또렷한 그리움으로 태어난다.
고향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잃어버린 추억들을 되살려주기 때문이다.
홈지기 변기환씨는 부러 고향 사진을 찍어 사이트에 올려놓기까지 한다.
춘양면 사이버 고향에는 훈기가 감돈다.
인터넷은 마을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대소사를 논의하는 사랑방이자 마을회관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모인 이웃사람들끼리 신 김치 한조각에 막걸리 한잔을 들이키며 세상시름을 털어버리는 장터이기도 하다.
때로 청첩장 구실을 하기도 하고, 마을 면장이 다른 지역에 뿌리를 내린 고향사람들에게 띄우는 편지가 되기도 한다.
임영길씨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전북 강진군 옴천면 소개 사이트 www.lovenet.pe.kr에는 이런 시골 공동체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옴천면 진입로가 넓어지고 좋아진대요. 정류소에서 개산 앞까지 초등학교 앞을 거치지 않고 우체국 못 가서 바로가는 길이 생긴다네요. 길이 아주 넓어져요. 지금의 두배 정도로.” “옴천면 연동마을 손종순 여사의 차남 김병수군이 결혼한답니다.
마니마니 오셔서 자리를 빛내주세요.” 인터넷에 흐르는 가족의 정 외지에 나가 있는 고향 사람들에게 올리는 김광석 면장의 인사도 ‘시골 면장’의 어투 그대로다.
차이가 있다면 편지봉투에 등사기로 민 듯한 편지글 대신 인터넷을 사용한다는 것뿐이다.
“강진의 긍지를 가지고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기여하시고 고향의 영예를 빛내주신 경향 각지의 옴천면 출신 출향인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홈페이지를 통해 인사드리게 됨을 진심으로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 아직도 김광석 면장은 일일이 편지를 보내지 못하는 게 왠지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인터넷을 통해 면장의 인사말을 접한 사람들은 반가움이 앞설 듯하다.
인터넷은 겨울 밤 가족을 불러모으는 화롯불이다.
고향에 계신 부모는 이제나 저제나 자식 걱정이 끝없다.
부부 사이에 행여 금이 가지는 않았을까, 자취하는 막내는 제대로 밥을 챙겨먹을까. 객지에 떨어진 자식들이라고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손자들 용돈이나 벌겠다고 허리를 구부리고 김매던 부모님 모습이 아른거린다.
불씨가 채 꺼지지 않은 고구마를 호호 불며 어리광을 피우던 화롯불 정겨움에 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인터넷엔 가족간의 정을 이어주는 포근함이 있다.
전북 정읍시 영안면에서 농사를 짓는 박대자(58)씨는 한창 자식들에게 ‘인터넷 특강’을 받고 있다.
부인 김현자(57)씨도 인터넷에 흠뻑 빠졌다.
지난해 12월 자식들이 ‘행복한 가족’ wedream.hihome.com이라는 가족 홈페이지를 만들어놓자 글을 올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저녁상을 물리고 컴퓨터 앞에 앉아 서울에 직장이 있는 자식들의 이메일을 체크하는 게 노부부의 빠질 수 없는 하룻일이다.
사실 노부부를 설득해 인터넷을 가르치는 게 쉽지는 않았다.
타자에서부터 마우스 작동까지 진도도 느렸다.
홈지기 셋째 영숙(28)씨는 어머니 현자씨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고 말한다.
“그깟 건 배워서 어디에 쓰냐”는 게 어머니의 반론이었다.
그런데 어머니 태도가 누그러진 사건이 있었다.
시골집 논이 도로공사 확장으로 국유지로 들어간 것이다.
관공서를 쫓아다니며 되찾으려 했지만 허사였다.
그런데 헛걸음을 하던 어머니가 드디어 자식들에게 물어물어 이메일로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서 모든 문제가 깨끗이 해결됐다.
그 뒤로 어머니는 자식들의 인터넷 수업에 진지하게 임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어느덧 한글 타자를 완벽하게 익혔다.
조만간 영문 타자 연습에 들어갈 참이란다.
아버지 박대자씨도 앞으로 농사 관련 정보를 올리겠다며 의욕을 보인다.
가족 홈페이지엔 박대자·김현자 두 부부가 황혼기에 배운 인터넷으로 자식들과 제주도 겨울 여행을 다녀온 소감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농사일을 끝내고 떠나온 겨울 여행. 높은 산에 오르니 마음까지 시원해집니다…. 날마다 이렇게 즐거운 여행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생각에 빠졌답니다.
딸 아이가 ‘엄마, 아빠 포즈를 취하세요’ 하면서 찰칵 사진을 찍는군요. 우리 둘이서 떠나온 인생길이 힘들고 고단했지만 어느덧 훌쩍 커버린 아이들을 바라보노라면 그 동안의 고생을 잊게 됩니다.
” 노부부의 이메일 내용도 “얘들아, 잘 있니?”“밥은 잘 챙겨먹고, 직장생활은 잘 하고 있냐?”는 처음의 일상적인 얘기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살아온 과정을 정리해 아이들에게 들려줄 만큼 글쓰기에도 익숙해진 것이다.
올해 초, 물리학 석사를 마친 둘째 정환씨가 ‘딴길’인 프로그래머의 길을 걷고 싶어했다.
진로문제로 고민하고 있던 정환씨에게 “힘내라, 그리고 진정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아버지 대자씨의 격려 메일은 큰힘이었다.
홈지기 영숙씨는 “농사일로 뼈마디가 굵어진 부모님 손이 자판 위를 움직일 때면 두분의 수고스러웠던 삶이 떠오른다”고 말한다.
올 추석에는 고향 논두렁을 걸어보자 늘 앞만 보고 가는 디지털 시대에 향수에 젖게 하는 고향 사이트는 달콤하다.
각박한 사이버 공간 속에서 슬그머니 피어나오는 상큼한 고향의 풀내음은 솜이불처럼 포근하다.
세상에 태어나 첫 햇살을 마주친 곳, 그래서 인터넷으로나마 고향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흥겹다.
그래도, 그래도 말이다.
이번 추석엔 부모님 손을 꼭 잡고 고향길 논두렁을 걸어보는 것과 견줄 수 있을까.
‘춘양지기’의 따뜻한 고향사랑 ‘춘양’ 홈페이지 운영자 변기환씨 ‘춘양’ 홈페이지엔 사람의 내음과 아련한 향수가 넘친다. 지금은 ‘어릴 적 춘양’을 그리는 이들이 찾는 ‘사이버 고향’으로 자라났지만 이곳 홈페이지 뒤엔 운영자 변기환(32·경북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씨의 노력이 있다. 옛 신문을 들추고, 군청을 들락거리고, 혼자 사진기를 들고 춘양면 곳곳을 발로 누빈 끝에 지금 자료들이 오롯이 만들어졌다. 조그만 오토바이 가게를 운영하는 변씨는 “뜻맞는 동호회 사람들이 모아준 비용으로 지난 2월 이곳 오지마을에도 서버라는 걸 구축하고 홈페이지를 열었다”며 “하지만 춘양에 대한 향토자료가 거의 없어 한달 정도 이곳저곳에서 자료를 찾아 헤매느라 애를 먹었다”고 회상한다. 그런 고생 덕에 그는 춘양을 그리는 사람들의 애잔한 추억이 게시판에 오르고 헤어진 친구들이 다시 만나고, 한때 광산마을로 화려했다 쇠락한 춘양의 아련한 역사를 찾아낼 때마다 더욱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어느날 봉화군수가 격려글을 게시판에 올려준 일도 조그만 자랑거리다. 사실 변씨에게 춘양은 같은 학교 졸업 동기 하나 없는 ‘고향 아닌 고향’이다. 초등학교 시절 오지마을을 벗어나 대처로 전학을 가는 바람에 방학 때만 잠시 머물던 곳일 뿐이었다. 그러다 11년 만에 고향에서 방위 복무를 할 때 친구 소개로 만난 여자친구가 인연이 됐다. 뒤늦게 초등학교 3년 시절 같은 반 짝꿍이란 사실을 알고 더욱 친해져 지금은 춘양에서 결혼해 단란한 가정까지 꾸렸다. 부인 강순희(32·농협 직원)씨도 춘양 홈페이지의 애독자다. 게시판에 새로운 글이 오를 때마다 함께 읽으며 외지인들과 잔잔한 고향의 정을 나누기도 한다. 변씨는 앞으로 춘양을 지키는 ‘고향지기’로 남고 싶다고 한다. “춘양 사람들은 이곳 홈페이지를 잘 모르죠. 오히려 춘양을 고향으로 둔 타지 사람들의 그리움이 모이는 곳입니다. 앞으로는 춘양 동창회를 키우는 사이트도 만들어보고 고향 특산물도 팔아보려고요. 춘양 사람들에게 춘양 서버의 전자우편 주소를 하나씩 나눠주고도 싶고….” 11년 만에 다시 만난 고향이지만 이젠 고향 친구들로부터 “네가 있어 듬직하다”는 말을 가장 듣고싶단다. 인터넷이 그런 고향의 인연을 더욱 깊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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