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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특집] 40대 '바닷가 소년'의 그때 그 시절
[한가위특집] 40대 '바닷가 소년'의 그때 그 시절
  • 오철우
  • 승인 2000.09.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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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송도초등학교 72년 졸업생 인터넷에서 다시 만나는 김승탁 교수
어릴 적 추억을 화제로 삼자 점잔을 뺄 법한 40대 교수는 단박에 천진난만한 바닷가 소년으로 돌아가버렸다.
“교실에서 내다보이는 바다를 향해 내달리면 그대로 해수욕장이었죠. 부산에서도 외진 곳, 송도 바닷가에 ‘땡땡땡’ 수업종이 울리던 그때 그 시절…. 갯내음 나는 바닷가를 뛰어놀며 짝사랑도 키우고 사고뭉치로 자란 친구들도 많았고 운동회 땐 계란 하나에 사이다 한병으로도 즐거웠죠.”

상지대 김승탁(41) 교수(경영학)는 요즘 부산 암남동 바닷가의 송도초등학교 72년 졸업생들과 만나는 컴퓨터통신에 날마다 흠뻑 빠져 있다.
인터넷 덕택이다.
동창회 사이트 ‘다모임’ www.damoim.net에 지난 4월 송도초등학교 72년 졸업생 모임방이 생기고부터 아줌마고 아저씨고 할 것 없이 이젠 40대에 접어든 20여명 동창생들의 수다와 추억담은 밤낮 따로 없이 끊일 줄 모른다.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그 시절로 되돌아간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걸까. “아무도 몰랐던 학교 안 사건들을 들추어 고백하는 친구들도 생기고, 뒤늦은 짝사랑 고백도 이어지고…. 묻어둔 얘기와 몰랐던 추억이 이렇게나 많은 줄 몰랐어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뭐 이런 식이죠. 하하.” 짝사랑은 여느 동창회 모임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유년기의 비밀’처럼 들추어질수록 흥미를 끄는 화제가 되곤 한다.
김아무개씨가 짝사랑했던 일곱명의 여학생 이름은 한때 ‘김아무개의 리스트’로 불리기도 했단다.
사고뭉치 동창생이 ‘고양이 잡고 호랑이새끼 잡았다며 신문에 보도된 사건’ ‘장어통에 들어가 담배 피우다 동네어른들한테 걸려 호되게 혼난 기억’ ‘다리 밑에서 아가씨들의 팬티를 훔쳐보던 악동들의 기억’ 등등. 비밀은 30여년 만에 모두 고백과 증언으로 드러나곤 한다.
“지금은 가정주부, 대학교수, 정치인, 사업가 등등 생활이 모두 다르고 서울, 부산, 마산 등지로 뿔뿔이 흩어져 있지만 하루 24시간 내내 동창회 방 접속은 끊이질 않아요. 새벽과 아침에 글을 남기는 주부, 점심시간에 찾아오는 직장인, 밤 늦게 채팅모임에 빠져드는 친구들…. 시도 때도 없이 보고싶은 친구들이죠.” “남보다 일찍 컴퓨터통신에 눈을 뜬 덕에 사이버동창회의 총무를 맡았다”는 김 교수는 “서로 소식을 주고받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가장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가 있다는 느낌을 받아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말한다.
송도초등학교 72년 졸업생들은 모두 200여명. 지난 98년 처음으로 동창회를 열었다가 지난 4월 다모임에 둥지를 틀었다.
참가자는 아직 20여명뿐이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만나는 열성 때문에 번개모임을 열어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한 여자 동창생에게 달려가 위로도 하고, 궂은 일 좋은 일에도 너나할것없이 나서곤 한다.
동창생 부부끼리 주말여행 모임도 잦다.
김 교수는 “사이버동창회가 있다는 걸 뒤늦게 알고는 왜 미리 얘기해주지 않았느냐고 따지는 친구들이 있다”며 “이곳이 앞으로도 우리들의 소중한 추억을 담아내는 공간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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