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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프로] 전경옥 / 장기이식 코디네이터
[나는프로] 전경옥 / 장기이식 코디네이터
  • 이미경 기자
  • 승인 2001.1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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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 세브란스병원 장기이식정보센터 전경옥 간호사는 여느 간호사와는 좀 다르다.
환자를 치료하고 보살피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일을 주로 한다.
복잡한 차트보다는 각종 증명서와 서류에 익숙해야 하고, 뾰족한 주사바늘이 아니라 전화기와 씨름하는 일이 더 잦다.
전경옥씨가 수술방과 응급실 등을 거쳐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게 된 건 1999년 4월부터. 10년간의 임상경험에 침착한 성품, 남다른 말솜씨를 갖춘 전씨에게 병원에서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 것이 시작이다.
그가 하는 일은 ‘장기이식에 대한 모든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지만, 이처럼 간단히 말해버리기엔 그 영역이 한없이 넓다.
일단 장기이식을 희망하는 뇌사자가 생기면, 전경옥씨는 환자 가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뇌사판정위원회에 연락을 한다.
보호자의 동의 아래 합법적인 장기 적출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병원 각 부서의 협조로 장기이식에 필요한 각종 검사를 진행하고, 기증받을 환자가 제때 시술을 받을 수 있도록 수술 일정을 잡는다.
장기 이식의 모든 과정 챙겨 수술방에 들어가 적출 과정을 지켜보고, 다른 병원까지 이송해야 하는 경우 차량에 동승하는 등 장기가 이동하는 모든 경로를 일일이 따라가야 하는 것도 그의 일이다.
한편으론 기증자의 사망진단서를 떼고, 망자와 그의 가족이 영안실에서 장례지에 이르는 절차를 편안하게 밟을 수 있도록 돕는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동안, 전경옥씨는 24시간 근무에 끼니도/ 예사로 거른다.
뇌사자의 장기이식은 여러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일이고, 병원 최대의 응급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밤중이나 휴가 때 호출을 받는 경우가 많지만, 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아요. 제가 매사에 낙천적이거든요.' 그러나 달콤한 꿈과 모처럼 맞은 휴가를 기꺼이 반납하는 그의 타고난 낙천성도, 단잠을 자는 스태프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빨리 병원으로 오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에선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환자나 가족은 물론 스태프까지, 한껏 예민해져 있는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힘든 일을 요구해야 하잖아요. 상대가 짜증을 내면, 대체 내가 누구를 위해 이렇게 부산을 떠나 싶어 야속한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검사실과 수술방, 각 행정부서를 끊임없이 오가는 일보다 더 힘든 건 뇌사자 가족과 함께하는 순간이다.
전경옥씨는 얼마 전 급작스런 교통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졌던 환자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태어난 지 두달된 아이가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어요. 마침 환자의 아내가 사고가 있기 얼마 전에 TV에서 방영된 장기이식 관련 프로그램을 보고 감동을 받았던가 봐요. 뇌사 상태인 남편의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어요.' 환자의 아내는 경황이 없는 중에도 소중한 결정을 했지만, 그날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에도 벅찬 상황임에 분명했다.
전경옥씨는 슬픔에 잠긴 가족을 위로하고, 장기 기증에 필요한 절차들을 부담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자칫 마음 상하는 일이라도 생기면, 그렇지 않아도 상심한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망연자실한 사람들과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로 한껏 부풀어 있는 수혜자 사이를 오가노라면, 전경옥씨는 '하루에도 몇번씩 삶과 죽음,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슬픔의 눈물과 감동의 눈물을 흘려야 할 일이 남보다 훨씬 많지만, 정작 그가 눈물을 보이는 일은 별로 없다.
'워낙 시급한 사안인데, 침착함을 잃고 흥분하면 실수가 따르잖아요. 평상심을 지키려고 노력하죠.' 그런 전씨도 뇌사자의 아내가 '아이가 크면 아버지는 훌륭한 일을 하셨다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며 몇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전하는 순간에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이것이 그가 장기이식정보센터를 ‘병원 전체에서 가장 사람 냄새 나는 곳’이라고 여기는 이유이고, 일반 간호사와 똑같은 보수를 받는데도 큰 불만이 없는 이유라고 한다.
'환자분들은 대부분 언제 상태가 악화될지 몰라 불안해 하면서 죽음을 준비하시거든요. 기증자가 나타나 수술을 받고, 정기검진을 위해 병원에 다시 들르시는 표정이 그렇게 밝을 수가 없어요. 그때 느끼는 보람은 말로 다 할 수 없죠.' 가장 사람 냄새 나는 곳 전경옥씨는 한해 보통 130~150건에 달하는 장기기증 관련 업무를 처리한다.
뇌사자가 아니더라도, 생전에 자신의 신장이나 골수를 기증하겠다는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종종 있다.
여기에 장기이식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과 시술을 받은 뒤 정기적으로 병원에 들러야 하는 사람들까지, 그가 일상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경우는 수없이 많다.
지난 3년여 동안 수많은 사람과 함께하면서, 전경옥씨는 오히려 자신이 그들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금 교도소에서 출소했다며 '남을 위해 뭔가 좋은 일을 하고 싶다'고 털어놓던 사내와 '아들이 누군가에게 신장을 받았으니, 나도 다른 누군가를 위해 신장을 기증하고 싶다'던 중년 여성은, 그에게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희망을 심어줬다.
그러나 신장을 기증받은 뒤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또다시 신장병을 앓게 된 환자는 ‘생명이란 거져 주어지거나 방치해도 좋은 것이 아니다’라는, 안타까운 깨달음을 주기도 했다.
'이곳에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보여요. 사라지면서 더 큰 빛을 내는 삶은 더욱 아름답게 보이고요.' 전경옥씨는 이처럼 아름다운 삶에 동참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02-2260-7016)에 연락해서 사후 장기기증 의사를 밝히면 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장기이식 코디네이터가 되는 길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는 흔히 ‘전문 간호사’로 분류된다.
전문 간호사는 병동에서 근무하는 일반 간호사와 조금 다른 일을 하는 간호사를 말한다.
소외된 사람을 찾아다니며 돌보는 사회복지 간호사나 통원 치료가 불가능한 사람을 방문하는 가정 간호사, 당뇨전문 간호사, 정신보건전문 간호사, 호스피스 등이 이에 해당한다.
외국의 경우는 이런 전문 간호사를 양성하는 별도의 기관과 자격증 제도가 있는데, 요즘 국내에도 이러한 제도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종합병원이 아니더라도, 신장 이식수술을 하고 있는 병원이면 어디에나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들이 활동하고 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임상경험이 풍부한 간호사로 구성되는데, 의학적 지식이 바탕이 돼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는 의료진에서 행정·관리직에 이르기까지, 병원내 다양한 사람들과 접촉해야 한다.
따라서 다른 이들의 말을 듣고 조율하며,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긴급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침착함과 꼼꼼함, 긍정적이고 밝은 성품의 소유자에게 적합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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