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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정보의 '날개'를 꺽지 마라
[포커스] 정보의 '날개'를 꺽지 마라
  • 김윤지
  • 승인 2000.08.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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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망 정부규제 강화 조치 발표…서비스 거부공격 등 강한 반대 여론 정보통신부 홈페이지 www.mic.go.kr 사이버민원실 자유게시판은지금 ‘검열반대’ 시위로 뜨겁다.
네티즌들이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 관한법률’ 개정안에 반발해 온라인에서 행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난7월13일 처음 발표된 이 개정안은 7월20일 정보통신부 공청회 이후 “통신망에 대한 정부의 무모한 통제 시도”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온라인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 이번 온라인 시위는 지난 8월20일 저녁 10시 정보통신부 홈페이지에서 벌어진 ‘서비스거부공격’으로부터 시작됐다.
서비스거부 공격은 특정한 시간 동안 특정한 사이트에 몰려가서 브라우저의 ‘새로고침’(reload) 버튼을 계속 누르는 것으로, 최근 외국의 많은 온라인 단체들이 시도하는 시위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네티즌들의 행동은 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자유게시판에 검열반대의견 제시하기, 법안 반대 배너와 로고달기, 표현의 자유 메일링리스트에 참여하기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8월28일 낮 12시에는 2차 온라인시위도 벌일 계획이다.
민주노동당, 진보네트워크센터, 대자보, 안티조선 우리모두, 하이텔 통신자유를 위한 모임, 넷츠고 통신자유를 위한 모임 등이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정부는 시위대의 공격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한발 물러섰다.
정부는 온라인시위가 예고되자 8월19일 수정안을 내놓았다.
개정안에서 크게 바뀐점은 없지만 인터넷내용등급제에 ‘자율등급’이라는 용어를 넣어 등급제에대한 비판을 일부 수용했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등급기준과 표시방법을정하면 정보제공자는 자신이 제공하는 정보에 스스로 등급을 표시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포장만 그럴싸할 뿐 진정한 자율등급제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진보네트워크센터 장여경 정책실장은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부적절한 등급이라고 판단하면 언제든지 ‘적정한 등급으로 조정’할 수 있고 정보제공자가 등급을 부여하지 않은 정보에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독단적으로 등급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볼 때 과연 자율등급제인지 의문이 든다”고 말한다.
법안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면서 시민단체 사이에서도 입장차이가 불거지고 있다.
법안이 개인정보보호, 청소년보호, 정보서비스제공자 책임 등 민감한 부분을 폭넓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단체들은 정부의 통제라는 큰틀에는 반대하지만 온라인 성폭력 문제에 대안이 없어 법안을 무조건 반대하기는 힘들다고 말한다.
학부모단체들은 청소년보호라는 차원에서 오히려 이 법안을 찬성한다는 것이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주장이다.
실효성 없는 규제는 ‘위축’만 가져올 듯 인터넷업체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제까지 공공연하게 정부의 과도한 통제는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으면서도 정작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의 책임을 규정한 법안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의견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법률정책연구원 김태동씨는“공청회를 할 때까지 누구도 이렇게 강력한 법안일 줄 몰랐다.
만약개정안대로 시행한다면 분명히 기업활동에 지장을 줄 것이다.
없던 규제가 생기기 때문인지 기업들이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법안의 실효성을 의심하기도 한다.
야후코리아 법무팀 최성택씨는 “유통정보의 사업자 인지책임 등이 민감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개정안대로라면 사업자의 고의과실을 입증하기 힘들다.
미국에서도 온라인 정보를 일일이 모니터링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인정해 사업자에게 거의 책임을 지우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며 개정안이 실효성을 가질수 있을지 의문을 나타냈다.
막연하게 통제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법안이 그런 모양을 띠게 될지 반신반의하고 있는 것이 현재 인터넷업체들의 상황이다.
이미 몇해 전부터 통신 아이디 삭제, 구속 등을 경험하며 정부의 통제가 얼마든지 위협으로 변할 수 있다고 믿는 네티즌들만이 지금 온라인을누비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네티즌들은 8월30일 시민공청회를 열고 9월2일에는 오프라인 시위도 벌일 계획이다.
로봇의 등급부여, 얼마나 믿을 수 있나
인터넷내용등급제를 뒷받침하는 기술적 장치들도 도마에 올랐다.
수정안에 따르면 인터넷내용등급제는 자율등급제를 기본으로 하면서 제3자 등급서비스로 자율등급제를 보완하는 복합적 형태로 운영된다.
자율등급제는 정보제공자가 스스로 HTML문서 내부에 특별한 태그의 형식으로 등급정보를 표시하고, 정보이용자는 웹브라우저나 소프트웨어에 자신이 볼 수 있는 등급방식과 등급을 지정하여 정보내용을 선별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자율등급제의 기술적 바탕으로 채택한 웹 프로토콜이 PICS(Platform for Internet Content Selection)다.
인터넷의 정보내용을 규제하려는 목적으로 95년 월드와이드웹 컨소시엄(W3C)이 개발한 PICS는 HTML문서 내부에 등급별 표시를 하는 것을 도와주는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조사연구의 최승훈씨는 “예전의 목록리스트 차단 방식은 리스트만 보고 정보를 차단했기 때문에 좋은 내용까지 배제될 위험을 안고 있었지만, PICS는 내용을 선별하는 것이라 훨씬 정확하다”고 말한다.
PICS가 정보제공자 스스로 정보내용에 등급을 매기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검열없는 인터넷 규제’가 실현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보네트워크센터 장여경 정책실장은 “PICS는 가치중립적인 기술이다.
중요한 것은 등급 기준을 누가 만들고, 판단하고, 부과하는가이다.
그러한 권한을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가지고 있다면 PICS는 국가의 검열을 도와주는 기술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자율등급제를 보완하는 제3자 등급서비스와 관련해서는 논란이 더욱 분분하다.
정보에 등급이 표시되지 않았거나 적정하지 않은 등급이 표시된 경우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등급을 부여하는 것이 제3자 등급서비스이다.
이를 위해 ‘등급제 자동화시스템’을 도입한 것에 우려를 나타내는 사람들이 많다.
등급제 자동화시스템은 정보내용을 일일이 사람이 판단하여 등급을 내리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로봇을 활용해 ‘양적 규제’를 하도록 한다.
‘양적 규제’는 크게 ‘언어형태소 분석’과 ‘이미지패턴 분석’으로 나뉜다.
‘언어형태소 분석’은 문장에서 특정 단어가 얼마나 들어 있는가를 분석하는 것이어서 기술적으로 크게 이견이 없다.
예컨대 한 문장에 ‘음란’이란 낱말이 몇개 이상 들어 있으면, 문장을 음란한 것으로 판정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미지 패턴 분석’이다.
이미지 패턴 분석은 특정한 화상에서 추출한 패턴을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패턴들과 비교해서 가장 유사도가 높은 패턴으로 인식하게끔 하는 것이다.
어떤 그림을 이미 음란하다고 지정된 그림과 비교하여 패턴이 유사하면 음란물로 지정하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게 ‘이미 비교할 대상이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우기술 진헌규씨는 “패턴 종류를 미리 데이터베이스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세계 음란물 사진들을 ‘옷 벗고 서서 왼다리에 손을 얹고 정면을 바라보는 여자’, ‘바닥에 엎드려 양손을 턱에 괴고 허공을 응시하는 여자’라는 식으로 하나하나 분류해 데이터베이스화할 수 있겠는가. 설령 그것이 가능하더라도 전세계 그림들을 하나하나 입력해둔 패턴들과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현재 기술로는 이미지 패턴 인식을 통해 정보내용의 등급을 매기는 것은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현재 기술로도 가능하다고 반박한다.
모든 것을 다 포괄할 수는 없지만 ‘살색 몇%’라는 기준만 갖고도 대강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로봇이 당신에게 주어질 정보의 등급을 결정할지 모른다.
‘멋진 신세계’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지금 펼쳐지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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