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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프로] 유난희 /쇼호스트
[나는프로] 유난희 /쇼호스트
  • 이미경 기자
  • 승인 2001.12.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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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최전선에 서다 지난 1995년 홈쇼핑 채널의 등장과 더불어 ‘쇼호스트’라는 직업이 국내에 첫선을 보였다.
유난희씨는 당시 39쇼핑(현 CJ39쇼핑)에서 실시한 공채에 합격해 활동을 시작한 국내 쇼호스트 1기다.
함께 입사했던 동료들은 대부분 일을 그만두거나 전직을 했지만 그는 지난 7년 동안 한우물을 팠다.
그 결과 업계 최고 연봉을 자랑하는 쇼호스트로 우뚝 설 수 있었다.
“96년에는 케이블 가입자들이 많지 않아서 한시간에 5천만원 정도가 보통이었거든요. 제가 두시간 동안 보석으로 7억원의 매출을 올려서, 업계에 소문이 났어요.” 그뒤 시간당 1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등 승승장구하던 유난희씨는 얼마 전 신규 채널인 우리홈쇼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가 진행하는 <유난희의 명품 갤러리>는 보석, 가구, 고급 의류를 주로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값이 비싼데다 소비자들이 직접 만지고, 입어본 뒤에 구매하길 원하는 상품들이라 홈쇼핑 채널에서는 비교적 판매가 힘든 품목으로 꼽힌다.
그러나 일단 팔리기만 하면, 이런 고가 상품들은 기업 전체의 매출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우리홈쇼핑쪽에서 유난희씨에게 연봉 1억3천만원이라는 파격적인 스카우트 제의를 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실시간으로 판매량 확인돼 “이제는 소비자들이 홈쇼핑을 통해 구매하는 일에 익숙하잖아요. 채널도 다섯개로 늘었고 앞으로 시장이 엄청나게 커질 거라고들 하니까, 후배들은 저보다 고생을 덜 할 거예요.” 방송생활 초기, 유난희씨는 마음 고생을 좀 했다.
오랜만에 만난 선후배들이 “방송 잘하더라”라는 말 대신 “얼마나 팔았느냐”고 묻곤 했던 것이다.
방송인의 길을 걷고 싶었던 그는 자존심이 상했고, 일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함께 입사한 아나운서 출신 선배의 충고가 그 결심을 흔들어놓았다.
“아나운서는 나이가 들면 카메라 앞에 서기 힘들지만, 쇼호스트는 자신의 전문성을 계속 키워나갈 수 있다.
” 6개월이 지나자 유난희씨는 쇼호스트의 즐거움이 ‘진행’에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대본 없는 생방송을 자연스럽게 해냈을 때의 성취감은 물론이고, 그가 하는 말에 따라 화면에 표시된 판매량이 급신장하는 걸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짜릿함에 절로 신바람이 났다.
‘쇼호스트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그는 진행자이기보다는 ‘마케터’로서 자신을 단련시키기로 결심했다.
“전자제품을 팔 때는 아주 이성적이어야 해요. 백화점을 상상해보세요. 7~8층에 있는 매장까지 올라와서 꼼꼼히 둘러보는 사람들은 구매 의사가 확실한 사람들이거든요. 공연히 감성을 자극할 필요가 없죠.” 유난희씨는 전자제품을 소개할 때 상품의 기능과 가격에 초점을 맞추고 ‘이보다 더 합리적인 구매는 없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그러나 의류와 보석을 설명하는 방식은 이와 정반대다.
“의류나 보석은 무대를 화려하게 꾸미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던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어 상품을 ‘구경’하게 만들잖아요. 수동적인 태도로 TV를 보는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려면 감각적인 멘트를 최대한 구사해야 돼요.” 그렇다고 터무니없는 감탄사만 잔뜩 늘어놓으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이 바지는 지금 갖고 계신 셔츠 중에 이러이러한 것과 함께 입으면 멋쟁이가 될 수 있다”는 식으로 패션 제안을 하는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소비자들의 구매욕을 높일 수 있다.
물론 이런 제안이 순식간에, 저절로 떠오를 수는 없는 일이다.
유난희씨가 백화점에 들르지 않으면 어쩐지 불안하고, 길을 걸으며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이 생긴 것은 오랜 쇼호스트 생활에서 생긴 일종의 ‘직업병’인 셈이다.
‘유난희가 소개하면 믿을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종종 묻는다.
“어떻게 매번 상품을 자랑하고, 애정을 듬뿍 담아 소개할 수 있느냐”고.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그가 어떤 상품이건 ‘매번’ 칭찬할 마음이 나는 건 아니다.
“상품 기획회의부터 참여하거든요. 금방 알 수 있어요. 이 상품은 품질에 비해 값이 너무 비싸다든지, 어딘지 모르게 기능이 의심스럽다든지…. 그런 상품을 소개할 땐 애를 먹죠.” 방송 초기에는 마음에 안 드는 상품을 그럴듯하게 포장하지 못하는 게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경력이 점차 쌓이면서, 유난희씨의 생각이 바뀌었다.
자신이 느끼는 대로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시청자를 대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도 방송할 만한 상품이 아니라는 확신이 서면 MD와 상의해 상품 소개를 취소하는 일도 더러 있다.
“오늘은 이 상품이 좋다고 말하고 내일은 경쟁사의 다른 상품이 최고라고 말하고…. 앵무새처럼 똑같이 말하면 시청자의 신뢰를 얻을 수가 없어요. 각각의 특징을 설명하고, 업체에서 항의하지 않는 선에서 솔직하게 비교해주려고 해요.” 쇼호스트가 질긴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자신의 느낌에 솔직하고 당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유난희씨의 생각이다.
쇼호스트의 이미지는 곧 상품의 이미지고, 소비자들이 쇼호스트가 거짓말을 일삼는다고 느끼면 어떤 상품도 팔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청자분들이 ‘유난희가 소개하면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때 비로소 프로라는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상품에 문제가 있을 때, 소비자들이 업체가 아니라 제게 책임을 지라고 항의한다면 쇼호스트로선 정말 성공한 셈이죠.”

쇼호스트가 되는 길

국내에 홈쇼핑 채널이 다섯개로 늘면서 능력있는 쇼호스트를 찾는 업계의 구인광고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대부분 서류심사와 실기평가, 여러 차례의 면접을 거쳐 선발되는데, 대본없이 생방송으로 진행해야 하므로 타고나 말솜씨와 순발력 등을 중점적으로 평가한다.
유난희씨는 쇼호스트가 갖춰야 할 첫번째 자질로 ‘성실성’을 꼽는다.
자신이 소개해야 할 상품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방송을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체 관계자들이 함께 출연한다고 해서 마음놓고 있으면, 높은 매출액을 내기가 어렵다고 한다.
쇼호스트는 두시간 동안 서서 진행하면서 끊임없이 말을 해야 하는 직업이라 체력 소모가 심하다.
유난희씨는 하루에 2~3시간, 일주일에 10시간 남짓 방송을 하지만, 경력이 짧은 쇼호스트들은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서 있어야 한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시간당 매출액이 드러나고 실적이 좋지 않으면 그만큼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스스로 일을 즐기지 않으면 금방 지치게 된다.
유통과 마케팅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주변사물을 유심히 보는 습관을 들인다면 좋은 쇼호스트가 될 수 있다.
빼어난 미모는 아니더라도, 편안한 인상으로 시청자들에게 신뢰감을 주는 사람이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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