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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인터넷영화 찬란한 이륙
[문화] 인터넷영화 찬란한 이륙
  • 이경숙
  • 승인 2000.08.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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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미르 에리코, 목이 잘린 채로 사망!” 일본 뉴스메일 <덴엔타임스>의 머릿기사 제목이다.
기사는 이어진다.
“덴엔시의 한 주택에서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9월14일 주민 시미르 에리코(31)는 자신이 살고 있는 그라우엔 하임의 옥상에서 머리가 잘린 채 발견됐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시미르는 뚜렷한 원한관계는 없으며, 최근 사기성 벤처기업에 투자해 총 9천만엔의 빚을 졌다.
시미르는 또한 한 법인을 수취인으로 한 거액의 생명보험에 가입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택과 참여는 인터넷영화의 열쇠말 그러나 이 기사는 ‘사실’이 아니다.
<그라우엔의 새장>이라는 인터넷 드라마에서 사건 진행에 따라 발행하는 드라마 안의 뉴스메일일 뿐이다.
그런데도 연재 첫날 1분짜리 이 드라마가 히트수 170만회라는 놀라운 기록을 올렸다.
‘인터넷다운 너무나 인터넷다운’ 영화들이 주가를 올리고 있다.
그냥 인터넷에서 상영되면 인터넷영화라 불러주던 시대는 갔다.
‘선택’과 ‘참여’는 인터넷영화의 핵심 키워드가 됐다.
네오타이밍 www.neotiming.com은 8월15일 한국통신 코넷 상영관 www.kornet.net과 동시에 <4계 신데렐라> 시리즈의 첫편인 <여름이야기>를 개봉했다.
이 영화는 주인공 여름(김민선 분)의 두가지 사랑이야기를 양쪽 사이트에서 하루 2분씩 펼쳐보인다.
네티즌은 남자주인공 둘 중 하나를 선택해 드라마를 볼 수 있다.
게임 프로그래머 성제(김승현 분)와의 톡톡 튀는 사랑을 선택하면 네오타이밍 상영관으로, 대기업 영업개발팀장 상덕(박용하 분)과의 은은한 사랑을 선택하면 코넷 상영관으로 가게 된다.
물론 ‘양다리’를 걸치고 양쪽 다 볼 수도 있다.
네오필름 www.neofilm.com은 네티즌이 줄거리 구성에 참여하는 쌍방향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시작한다.
학원물인 <클로버 3/4>는 8월30일 오프닝 화면과 주제곡, 주인공들만 네티즌에게 선보인 뒤 아예 네티즌들에게 이야기 전개를 맡겨버린다.
네티즌이 여러가지 갈등상황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고, 또 자신의 에피소드를 극 전개에 사용할 수 있다.
일종의 네티즌 공동창작 방식이다.
네오필름은 이 시리즈를 1년 동안 연재할 예정이다.
인터넷방송 채티비 www.chatv.co.kr는 인터랙티브 영화 <나인 테일즈>를 150초씩 20편으로 나누어 상영할 예정이다.
이 영화는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살인사건을 다룬 미스터리 공포물이다.
지오인터랙티브의 인터넷쇼핑 테마파크 드라마트 www.dramart.com는 라이코스코리아를 통해 <아이드라마 에피소드2>를 지난 4월부터 방영하고 있다.
이 영화는 <주유소 습격사건> <간첩 리철진> <쉬리> 등 몇개 영화를 패러디한 것으로, 네티즌의 선택에 따라 서로 다른 결말에 이르게 된다.
인터넷영화 ‘황금거위’ 될까? 이들 인터넷영화는 태어난 지 1년도 안 됐지만 ‘짧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확실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세계 최초의 인터랙티브영화’로 기네스북에 오른 네오타이밍의 <영호프의 하루>는 관람객이 100만명을 넘었다.
캐스트코리아 www.castservice.com가 지난 3월부터 연재중인 <그라우엔의 새장>은 요즘도 하루 1만여명이 관람하고 있다.
이 사이트는 ‘그라우엔의 닭장’이라는 팬클럽이 생길 만큼 인기다.
사건일지, 등장인물 프로필 등 관련 콘텐츠가 풍부한 탓에 페이지뷰는 10만회, 히트수는 100만회에 육박한다고 한다.
“글쎄…. 새로움 때문에 네티즌을 끌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영화들은 무료로 상영하고 있잖아요. 도대체 어떻게 돈을 번다는 거죠?” 한 영화 사이트의 이사는 이렇게 반문한다.
그러나 일부 인터넷영화의 실적은 의외로 높다.
이들 인터넷영화는 콘텐츠 판매와 광고수익으로 과연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을까. 네오타이밍은 상반기에만 6억9천만원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밀레니엄 살인사건>, <4계 신데렐라> 시리즈의 판매와 광고를 통해 번 돈이다.
특히 드라마 중간중간에 협찬업체의 상품을 노출시켜 쇼핑과 연계하는 새로운 광고기법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영화 제작부터 주인공의 의상, 소품 따위가 관객에게 더 잘 보이게 배치하거나, 스토리를 구성해 상품광고의 노출도를 높이고, 인터넷 사이트에 관련 정보를 올려 상품구매로 이어지게 한다.
4계시리즈 첫편 <여름이야기>는 수익구조를 더욱 다원화했다.
이 시리즈는 영화뿐 아니라 만화로도 연재되며 곧 출판물로도 발간된다.
네티즌 반응이 좋으면 주인공들의 캐릭터 상품도 개발할 예정이다.
네오타이밍의 조영호(29) 대표는 “우리는 매출로 승부한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수익구조가 불투명한 다른 인터넷방송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안방에서 볼 수 있는 영화,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영화는 인터넷에서는 뜨질 않아요. 아무리 인기가 높은 <쉬리>나 <타이타닉>도 인터넷에는 맞지 않는 콘텐츠죠. 화면이 뚝뚝 끊기고 소리가 웅웅 울리는 통신환경에서 누가 돈내고 보겠습니까. 인터넷에는 인터넷용 영상 콘텐츠가 필요합니다.
” 직접 인터넷영화를 제작, 연출중인 조 대표는 올해 말쯤 가족문제를 다룬 영화 <개족>을 인터넷판과 극장판으로 따로 제작해 발표할 예정이다.
인터넷영화와 극장영화가 별도의 장르이면서 서로 보완할 수 있는 관계임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란다.
일본 e세카이의 인터넷영화 <그라우엔의 새장> 시리즈도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이 시리즈에 투입한 총 제작비는 우리돈 30억원으로 적지 않은 금액이다.
그러나 e세카이는 이미 지난달에 모든 투자금액을 뽑고 순수익을 올리기 시작했다.
주인공과 관련 상품 PPL, 전자상거래서비스는 물론 무선인터넷 ‘아이모드’에 관련 뉴스와 실마리를 제공하는 정보 서비스에서 솔찮은 수입을 내고 있는 것이다.
<그라우엔의 새장> 한국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는 캐스트서비스도 만족스런 표정이다.
시리즈 시작 반년도 안 돼 벌써 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자랑한다.
광고와 콘텐츠 판매 수익이 반반이다.
또 온라인 유료상영도 계획하고 있다.
휴대전화를 이용한 결제시스템이 보급된 덕분에 400원에서 1천원 사이의 소액결제가 손쉬워졌다는 것이다.
“VOD는 멀고 인터랙티브는 가깝다” 캐스트서비스의 김남훈(27) 신규사업부 대리는 인터넷이 단순하게 스트리밍으로 영상을 흘려보내는 것만으로는 TV 같은 다른 매체에 절대적으로 뒤진다고 고백한다.
“그렇지만 <그라우엔의 새장>처럼 막대한 데이터베이스와 연계된 홈페이지를 활용한다면, 새로움을 추구하는 유저들을 붙잡아둘 수 있어요. 인터넷은 단순하게 TV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형태의 미디어로 나아가고 있죠.” 네오필름의 변연옥(28) 인터넷사업부 총괄이사는 “인터넷은 더이상 새로운 산업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이제 거대 매체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 자체로 문법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터넷방송과 영화 포털 사이트들이 주력하는 주문형비디오(VOD)나 생중계 방송은 현재 우리의 통신인프라로 볼 때는 너무 미래형이다.
텍스트 콘텐츠의 인터랙티브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토대로 한 인터넷영화들이 현재시제의 인터넷문법이라면 말이다.
저예산 영화 황금콤비를 만나다
“영화 홍보 좀 하소! 화 날려구 합니다.
정말루 좋은 영화란 말예여! 진짜 잼난 영화란 말예여!”(중독녀) “이 영화 관객의 특징…. 두번 아니면 세번 본다.
시사회가 아닌데도 영화가 끝나면 박수를 친다.
얼마되지 않은 상영관을 물어물어 찾아간다.
…”(관찰녀) “씹쌔, 좃나게 잘 만들었네…. 영화를 보면서 내내 욕에 찌들어 있던 내가 코아아트를 나오면서 내뱉은 감탄사다.
류승완, 나보다 스무살 가까이 어린 감독. 나는 그의 평생 팬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의 영화를 다 보려면 오래 살아야겠다.
”(정병태)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글들이다.
16㎜ 필름으로 개봉했던 이 영화는 8월5일 35㎜ 영화로 재개봉됐다.
세간의 표현대로 ‘국내에서 처음 있는 사건’이었다.
이 영화는 애초 서울 코아아트홀 영화관에서만 개봉했다.
16㎜ 필름 상영관이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9일간 7천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관객점유율 90%! 지방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상경’했다.
영화를 상영하겠다는 극장들도 속속 늘었다.
전문배급사들이 전국 배급을 맡겠다고 선뜻 나섰다.
할리우드현상소, 일본 이마지카 등 필름현상소 등이 1억, 2억에 달하는 ‘블로우 업’(16㎜를 35㎜로 바꾸기) 비용을 지원했다.
그 흔한 홍보도 없이, 마케팅도 없이 심지어 배급망도 시원치 않은 이 영화가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입소문의 매체’ 인터넷 덕분이었다.
관객들의 평가는 영화 공식 홈페이지뿐 아니라 영화 포털사이트나 동아리 게시판을 통해 전국적으로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네티즌의 힘은 주류 영화배급판에서 ‘죽거나 혹은 나쁜’ 성적으로 물러났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근사한 모습으로 살려냈다.
우리나라 네티즌의 강력한 커뮤니티는 할리우드와 충무로의 메이저영화들 사이에 끼어 고전하는 저예산영화들에는 인큐베이터나 다름없는 천혜의 공간이다.
<죽거나…>를 비롯해 <반칙왕> <동강> 등에 투자해 잇따라 홈런과 안타를 날린 인츠닷컴의 인츠필름 film.intz.com은 아예 <몽유도원도> 공동제작에 나섰다.
인츠필름은 최초로 네티즌을 대상으로 영화자금을 모은 곳이기도 하다.
최근엔 한스글로벌의 한스붐 www.hansboom.com, 아이피닉스의 사이버영화지분거래소 www.movie-stock.co.kr 등이 같은 방식으로 영화투자에 나섰다.
영화 포털사이트 엔키노www.nkino.com는 영화진흥위원회, 동양그룹 등과 함께 영화펀드를 조성해 영화제작과 온라인마케팅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영화인들도 속속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인터넷에 상륙하고 있다.
강제규 감독을 주축으로 안성기 등 주류 영화인들이 주주가 되어 설립한 iCBN www.icbn.net과, 장진 감독 등 상업영화 감독들이 대거 참여한 시네포엠 www.cine4m.com이 대표적 예다.
iCBN은 설립 초기부터 56억원이 넘는 대규모 자본금을 모아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상업영화의 주류를 이루는 강제규 감독 군단의 인터넷 사업 진출이 영화 인터넷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하리란 기대를 걸고 있다.
iCBN의 윤수인(29) 경영기획실장은 지금 시점에서는 “시장이 있다”라는 확신보다는, “시장을 개척한다”라는 마음으로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대중’을 공략해야 하는 아날로그 영화 제작과는 달리, 인터넷은 아이디어의 자유로움을 고무하고 이것을 개인의 네트워크로 연결해 다양한 창작을 가능하게 한다.
더 싼 제작비로 개인과 소집단이 만든 영화들이 인터넷을 통해 제작·배급·유통되어 영화의 다양성, 새로운 가능성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 ‘프로페셔널’의 인터넷 상륙은 한편으론 한국 동영상 콘텐츠의 질과 경쟁력을 한단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감독들은 저렴한 인터넷을 스크린 삼아 주류 영화판에서는 해보지 못한 다양한 시도들을 펼친다.
인터넷에서 감독들은 디지털 기기를 사용해 6천만원 안팎의 저렴한 예산으로 30~40분짜리 ‘양질’의 영화를 찍어 발표한다.
특히 시네포엠에서 상영중인 영화들은 ‘프로’ 감독들의 실험정신이 돋보인다.
<반칙왕>으로 유명한 김지운 감독의 <커밍아웃>, 이준택 감독의 <클리너> 연작시리즈는 탄탄한 구성과 인터넷에 맞는 표현기법으로 네티즌의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죽거나…>의 류승완 감독도 9월 안으로 인터넷용 액션 단편영화를 선보일 예정이다.
한국 저예산영화는 드디어 궁합이 잘 맞는 짝을 만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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