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항공은 일찌감치 파산신청을 냈고, 미국의 메이저 항공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울상이 된 얼굴로 TV 화면에 나타나 미국 정부와 소비자들에게 온정을 베풀어줄 것을 호소했다.
이번 사건이 아니더라도 국내 어떤 항공사 회장은 자기 회사가 운영하는 스포츠팀이 경기에서 져서 신문 스포츠 섹션에 ‘000팀 추락’ 또는 ‘000팀 격추되다’라는 기사제목이 뽑히면 거의 이성을 잃다시피 한다.
홍보 담당자들에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신문 제목을 바꾸게 하라는 불같은 지시가 떨어진다.
회장은 차라리 ‘참패, 대패배, 몰락’ 같은 단어는 참고 넘어가도, 추락이니 격추니 침몰이니(계열사 중에 해운회사도 있어서) 피격이니 하는 단어는 절대 용납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항공사가 고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핵심에는 안전이 최우선 순위로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회장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다소 이해가 간다.
그러나 과연 안전과 속도만이 항공서비스의 중요한 경쟁요소일까? 루디 피터슨이라는 미국의 비즈니스맨은 유럽 출장중 스톡홀름에서 코펜하겐으로 갈 일이 생겼다.
그는 빠듯한 일정 때문에 호텔을 허둥지둥 빠져나와 공항으로 달려갔다.
그러다 공항에 도착해 탑승수속을 하려다가, 항공권을 호텔에 놓고온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런 경우의 황당함은 누구나 충분히 공감할 수 있으리라. 비록 하루짜리 비즈니스 여행이지만 그 여행은 피터슨에게 무척 중요한 것이었다.
그는 코펜하겐에서 거래 파트너들에게 중요한 프리젠테이션을 할 예정이었다.
세계 대부분의 항공회사들은 항공권을 제시하지 않으면 비행기 탑승을 거절하는 업무규정을 운영한다.
이를 잘 알고 있던 피터슨은 비행기 탑승은 물론 회의 참석도 포기해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무척 곤혹스러워했다.
하지만 한번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항공사 담당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도움을 구했다.
피터슨의 딱한 사정을 다 들은 항공사 직원은 뜻밖에 피터슨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항공사 직원은 우선 피터슨을 안심시키고 임시 항공권을 줬다.
이어 피터슨에게 묵었던 호텔의 이름과 방 번호, 코펜하겐에 도착해서 연락을 받을 수 있는 전화번호 등을 알려달라고 했다.
나머지 일은 자기네들이 알아서 처리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까지 해줬다.
물론 이 직원은 피터슨과 대화하면서 줄곧 상냥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피터슨으로서는 불행 중 다행이었다.
항공사의 통상적인 서비스 절차에서 예외적인 상황이 발상하자 이 항공사 직원은 능숙하게 새로운 서비스를 즉석에서 ‘만들었다.
’ 우선 피터슨이 묵었던 호텔로 신속하게 전화를 걸었다.
피터슨이 숙박했던 방을 확인하고 그 방에 빠뜨리고 온 항공권을 확인하고는 호텔 종업원에게 항공권을 잘 보관해달라고 부탁했다.
항공사의 차량과 직원을 호텔로 보내서 항공권을 찾아오도록 했다.
항공권이 공항에 도착한 것은 피터슨이 타기로 예정된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어쨌든 비행기를 타고 가서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게 어디야’ 하고 안도하며 탑승을 기다리던 피터슨은 항공사 직원으로부터 자신이 호텔에 두고온 항공권을 전해받고는 깜짝 놀랐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피터슨은 원래의 항공권으로 예정대로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고 코펜하겐에서의 업무회의도 훌륭하게 끝마칠 수 있었다.
피터슨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서비스 경험이었다.
이쯤에서 눈치챘겠지만 피터슨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 항공사의 열렬한 팬이자 충성도 높은 평생고객이 되었다.
앞의 사례는 스칸디나비아항공사에서 신화처럼 전해지는 사실이다.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던 중소규모 항공사 스칸디나비아항공을 흑자기업으로 부활시키는 데 성공한 얀 칼슨 회장이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일화이기도 하다.
칼슨 회장이 강조한 성공비법은 간명하다.
“고객과 회사가 접촉하는 매순간마다 고객을 최대한 만족시켜라.” 종업원들이 고객과 맞닥뜨리는 순간은 참으로 많다.
고객이 전화로 좌석 현황이나 운항 스케줄 등을 문의할 때, 예약을 하거나 공항 카운터에서 항공권을 구입할 때, 티켓을 건네고 탑승할 때, 기내에 올라서 처음 승무원들의 인사를 받을 때, 좌석안내를 받을 때, 기내식 서비스를 받을 때, 수하물을 맡기거나 찾을 때 등등. 항공서비스는 항공사 종업원들과 고객들이 부단히 서로 접촉하고 커뮤니케이션을 주고받으면서 창출된다.
얀 칼슨 회장은 종업원과 고객이 부단히 접촉하는 순간들을 ‘모멘트 오브 트루스’(moment of truth)라고 불렀다.
마케팅학자 노먼이 그 개념을 창시했지만, 기업혁신 현장에 적용해서 크게 선풍을 일으킨 것은 스칸디나비아항공의 칼슨 회장이었다.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품질이 바로 종업원들과 고객이 만날 때에 결정적으로 좌우된다는 점에서 서울대 이유재 교수는 “결정적 순간”이라고 번역한다.
그렇다.
서비스 경쟁력은 종업원과 고객들이 대면하고 의사소통을 나누며 상호작용을 나누는 “결정적 순간”에 판가름난다.
종업원과 고객이 만나는 매순간마다 고객이 기대하는 것과 실제 고객이 느끼는 차이에서 서비스 질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고객은 자신이 기대한 것보다 제공받는 서비스가 만족스러우면 좋은 품질로 인식하지만, 기대에 못미치면 서비스 질이 나쁘다고 인식한다.
이렇게 한사람 한사람 고객의 서비스 품질 평가가 차곡차곡 쌓여서 기업을 흥하게도 망하게도 한다.
필자의 유치원생 아이도 동네에서 좀더 친절한 가게를 구별할 줄 안다.
동네 꼬마들과 접촉하는 결정적 순간에 아이들을 실망시키는 가게주인은 사탕 한개도 못 팔게 되어 있다.
고객과의 결정적 순간에 자신이 얼마나 열악한 서비스를 제공했던가는 모른 채 운이 없다는 둥, 가게 위치가 안 좋다는 둥 엉뚱한 데서 실패의 원인을 찾는 가게 주인을 보게 되면 참으로 안타깝다.
동네 슈퍼뿐만 아니라 제아무리 거대한 다국적기업이라도 고객과의 결정적 순간을 소홀히 하면 흔적도 없이 망한다는 것은 변함없는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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