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7:18 (금)
[비즈니스] ‘빚 내서 소비’ 아슬아슬한 버팀목
[비즈니스] ‘빚 내서 소비’ 아슬아슬한 버팀목
  • 조준상/ <한겨레> 경제부
  • 승인 2001.12.2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비지출이 소득 증가율 웃돌아… 경기회복 늦어질 땐 급속한 소비 둔화 위험 현실로 가계부채가 너무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저금리의 달콤한 유혹에 빠진 개인들이 나중에 빚을 감당할 여력을 생각하지 않고 빚을 늘리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엔 소비지출 증가율이 소득 증가율을 웃돌고 있어 걱정을 더하고 있다.
결국 정부 재정지출과 함께 가계부채 증가에 기댄 ‘거품 소비’가 내수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선진국에 비해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가계부채 증가세를 너무 과장하면 그나마 경기를 지탱하고 있는 소비지출마저 움츠러들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어떤 분석이 더 타당한 것일까? 소득은 줄고, 소비는 늘고 가계부채 증가에 대한 우려는 상당한 근거가 있다.
물가요인을 뺀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1995년 가격 기준)은 2001년 3분기 1.8%였다.
1% 초반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던 성장률이 이렇게 더 높은 수준을 보인 데는 민간소비지출 증가가 결정적이었다.
냉장고·텔레비전·무선전화기 등 내구소비재 지출과 외식·교육·오락비 등 서비스 지출이 주도한 민간소비지출은 1년 전에 비해 3.4% 증가했다.
전분기의 2.9%를 훨씬 웃도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민간소비지출이 국내총생산 성장에 공헌한 기여율은 전분기 54.9%에서 97.5%로 급증했다.
민간소비지출 증가가 성장률 1.8%의 대부분을 설명한다는 것이다.
정부 재정지출의 성장기여율 역시 같은 기간 27.5%에서 51.3%로 급증했다.
수출 및 설비투자 감소에 따른 설비투자 하락을 민간소비지출과 재정지출이 막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소득이 늘어나 소비가 늘어나는 것이라면 별다른 문제가 될 게 없다.
하지만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이는 소득의 실질구매력인 국민총가처분소득(당해연도 가격 기준)은 3분기에 2.6% 증가에 그쳤다.
경기침체를 반영해 1분기와 2분기의 5.0%, 4.9%보다 훨씬 낮아진 것이다.
반면 민간부문은 7.4%, 정부부문은 10.6% 등 최종소비지출 증가율은 7.9%나 됐다.
국민총가처분소득 증가율과 소비지출 증가율의 격차가 4.3%포인트로 벌어져 2분기 3.2%포인트, 지난해 연간 1.5%포인트보다 크게 확대된 것이다.
이는 결국 3분기 총저축률이 27.8%로 뚝 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한은은 올해 연간 총저축률이 30.0% 전후하는 수준에 머물러 1983년의 29.0% 이후 18년 만에 최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3분기 국내 총투자율이 26.3%인 점을 감안하면, 경기회복이 시작되면 국내 저축으로 국내 투자를 감당할 수 없어 해외에서 돈을 빌려와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는 셈이다.
실제로 가계부채는 올해 연말에 가면 한해 동안 가계에서 벌어들이는 가처분소득의 90%에 육박할 전망이다.
지난 12월14일 한은이 발표한 ‘2001년 3분기 가계신용 동향’을 보면, 가계부채 잔액이 336조원에 이르러 가처분소득의 91%에 이를 것으로 나타났다.
9월말 가구당 빚은 2200만원에 이르러 1년 전과 견주어 25% 늘어났고, 석달 전과 비교해선 140만원이 증가했다.
은행이 가계에 꿔준 가계대출잔액은 283조2천억원으로 1년 전의 227조1천억원보다 24.7%, 신용카드 할부구매 등 판매신용액은 33조1천억원으로 37.4%나 증가했다.
이런 근거들로만 보면 가계부채와 가계소비지출은 소득 증가에 비해 너무 빠르게 증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12월19일 한은이 발표한 ‘2001년 3분기 자금순환 동향’은 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가계와 소규모 개인기업 등을 포함한 개인부문의 경우 금융부채가 크게 늘기는 했지만, 금융자산도 대폭 늘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빚을 늘려 소비지출에 써버린 게 아니라 그 상당액을 금융자산에 투자했다는 얘기다.
3분기 개인부문의 금융부채는 21조8260억원 증가했다.
전분기 증가액 14조607억원보다 55% 늘어난 것이다.
동시에 금융자산 증가액도 23조6120억원에 이르러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전분기 증가액 17조4450억원과 견주어 35% 늘어난 것이다.
결국 금융부채 증가율 55%와 금융자산 증가율 35%의 격차인 20%포인트 정도가 소비지출로 흘러들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렇게 보면 가계부채 증가가 걱정할 정도는 아닌 셈이다.
한은 김영헌 조사역도 '개인부문의 부채가 급증하고는 있지만, 자산도 함께 늘고 있어 크게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올 9월말 개인부문의 금융자산 잔액은 844조2천억원으로 금융부채 334조9천억원의 2.52배였다.
이는 91~97년 2.4~2.5배, 98~99년 2.8~2.9배, 2000년 2.6배와 비슷한 수준이다.
미국과 단순비교는 무리 연말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91%에 이른다고 해도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그리 높은 수준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의 경우 가계부채는 가처분소득의 120.3%에 이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나라와 미국이 놓은 현실이 다르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리나라 가계부채 중 만기가 비교적 긴 주택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은 17.3%인 반면, 미국은 만기 10~20년의 주택금융 등 장기주택금융 비중이 81.5%에 이른다.
우리나라 가계부채 구조가 불안정해 소득수준이 하락할 경우 그만큼 빚상환 능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얘기다.
미국 내부에서도 가계부채가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우려가 많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가처분소득의 120%를 넘는 미국의 가계부채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가계파산에 대한 경고가 계속돼왔기 때문이다.
미국과 단순비교는 무리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소득수준이 하락할 경우 언제든지 매우 부담스러운 수준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기업들의 고용조정이 한꺼번에 몰리거나, 97년 IMF 사태 이후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구조조정’ 타령이 재개될 경우, 현재의 가계부채 수준은 급속한 소비 둔화를 낳을 만큼 충분한 수준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늘어나는 가계 금융부채의 일부가 소비지출 증가로 이어져 경기를 떠받치는 것도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수출이 살아나 본격적인 경기회복이 이뤄지는 시점이 지연될수록 가계부채의 잠재적인 위험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