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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디지털화로 시작된 지각변동
[일본]디지털화로 시작된 지각변동
  • 도쿄=이홍천 통신원
  • 승인 2002.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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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산업계 전체가 10여년에 걸친 기나긴 불황의 터널을 여전히 벗어나고 있지 못한 것과 달리, 지난 한해 일본에서 호황의 즐거움을 한껏 누린 산업이 있다.
바로 방송산업이다.
이 산업은 지난해 30개 업종별 영업수익률 순위에서 2위를 차지했다.


매출규모로만 따진다면 방송산업은 그다지 주목할 만한 산업이라 할 수 없다.
지난해 일본의 광고시장 규모는 연간 6조1102억엔에 이르렀고, 그 가운데 방송광고 매출은 34%인 2조793억엔을 기록했다.
이같은 방송광고액은 도요타자동차의 총매출에 비해 7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광고 매출의 증가 추세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과 거의 평행선을 그리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수익률을 놓고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도요타자동차의 영업이익률은 6.4%에 그친 데 비해 민영방송의 선두주자인 ‘일본방송’은 무려 20.2%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지방방송사의 영업이익률도 10%대를 넘어섰다.
수익률만을 놓고 본다면 방송산업은 가히 황금알을 낳는 산업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일본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종 가운데 하나는 여전히 TV방송국이라는 점도 이해할 만하다.
불황을 타지 않고 높은 보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게 방송산업을 선호하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그렇다면 실제로 일본 방송국 사원의 연봉은 어느 정도일까? 공표된 자료에 따르면 민영방송 4사의 서열은 후지TV, TBS, 일본TV, TV아사히의 순서다.
이 직종의 평균연봉은 1400만엔을 넘는다.
구체적으로 후지TV는 평균연령 39.5살에 연봉 1490만엔으로 최고수준을 기록하고 있고, ‘보도의 TBS’라는 명성을 날렸던 TBS가 평균연봉 1486만엔을 기록해 그뒤를 잇고 있다.
일본내 전체 상장회사를 대상으로 연봉 서열을 매겨보면 소프트뱅크가 1917만엔으로 수위를 기록한 것을 빼고는 2위부터 6위까지의 경우가 모두 방송사일 정도이다.
그러나 이같은 수치상의 화려함 뒤편에는 일본 방송산업이 직면한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방송의 디지털화가 가져올 산업구조의 재편이 과연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가에 대해 아직은 쉽사리 가닥을 잡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각 방송사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이 점점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것도 이러한 불안감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이다.
현재 일본내 주식시장에 상장된 민영방송 5개사의 성적표를 자세히 살펴보면, 영업수익면에서는 후지TV가 가장 좋은 성적을 올렸지만 영업이익과 주당순자산가치(PBR)는 일본TV가 가장 높음을 알 수 있다.
계열사를 포함한 평균 영업수익에서는 후지TV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
상장된 5개사 모두 거액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주식시장의 평가는 그렇게 긍적적이지만은 않다.
예컨대 TV아사히의 경우 2001년에 184억엔의 이익을 기록했지만 시장의 평가는 상당히 싸늘한 편이다.
주당순자산가치를 산정했을 경우 그 수치는 일본TV가 2.4, 후지TV가 1.70, TBS가 1.49인 것에 비해 TV아사히는 0.99를 기록했다.
자산가치가 높은 것에 비해서는 그다지 많은 이익을 내고 있지 못하다고도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는 계기는 바로 디지털 위성방송의 출범이다.
총무성 주도로 진행된 지상파 방송사의 디지털 위성방송 진출에는 공영방송인 NHK와 민영방송 5개사가 모두 참여하고 있다.
NKH가 밝힌 바에 따르면 2000년 10월말을 기준으로 디지털 위성방송 수신기 보급대수는 47만대, TV와 PDP 등 시청 기기의 보급대수는 80만대에 이른다.
여기에다 CATV를 경유하는 134만세대를 더한다면 일본 내에서 약 214만세대가 BS디지털방송을 시청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반면 수신기 판매대수는 지난해 1월 이후 월 평균 2만대 전후 수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2000년의 8만대 판매기록에 비하면 25% 떨어진 수치다.
이처럼 시청자 수가 더이상 늘지 않는다는 것과 함께 민영방송의 생명줄인 광고가 예전만 하지 않다는 것도 일본 방송사들에게는 매우 불안한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10여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경기침체로 광고주가 광고비를 대폭 축소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광고주들은 광고비 대비 광고 효과를 예전보다 더욱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냉정하게 선회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대도시권 방송사를 중심으로 TV광고 수주가 몰리는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지방방송사에 광고비 수익을 분배해왔던 기존의 중앙방송사-지방방송사 사이의 시스템이 더이상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 역시 이런 변화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2003년 대도시권, 2006년 말 전국적으로 전개될 지상파 디저털 방송 사업에는 방송국당 평균 60억엔의 설비투자 비용이 요구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비용은 현재 지방방송사의 10년치 이익금에 해당되는 커다란 금액이다.
현재로서는 이 정도 규모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 지방방송사에 분배되는 재원을 줄이는 길밖에 별다른 방안이 없다.
일본 방송사들은 디지털 위성방송을 통해 중계되는 월드컵 경기를 무료로 서비스할 정도로 가입자 확대에 힘을 쏟을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월드컵이 끝난 올해 하반기에도 지난해와 같은 영업실적을 거둘 수 있을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가 힘든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방송산업을 특징짓는 고임금체제는 실상 얇은 본봉과 두꺼운 수당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것과는 달리 그다지 화려하지 않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특히 초과근무수당이 본봉의 2배 이상 차지할 정도로 잔업수당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편이다.
이같은 고임금이 디지털 방송 이후에도 계속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지금까지 인건비 정도만 지급해오면서 프로그램을 제작해왔던 각 방송사가 디지털 위성방송과 지상파의 디지털화에 따른 설비부담의 일정 부분을 인건비 삭감을 통해서 조달할 수밖에 없다는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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