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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엔화 약세 약인가 독인가
[초점] 엔화 약세 약인가 독인가
  • 오석태/ 씨티은행
  • 승인 2002.01.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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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 동반 약세 오히려 호재… 대일본 수출 원/엔 환율과 관계 미미 의견도

2001년 연말부터 두드러진 엔화 약세는 경제회복 기미가 완연해진 한국 경제에 새로운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다.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 곳은 외환시장이다.
원-달러 환율은 엔-달러 환율의 급등세를 그대로 반영해 한때 1330원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우선 엔화 약세에 따른 수출 부진이 올해 한국 경제에 새로운 악재가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올해 원화와 엔화 환율의 향방은 어떻게 될 것이며, 엔화 약세는 한국 경제와 국내 금융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지난해 12월에 가속화한 엔화 약세로 인해 이제 금융시장에서는 엔-달러 환율이 곧 140엔대로 오를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엔화는 올해 초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며, 적어도 지난해 말의 급락세를 계속 이어가서 140엔선을 쉽게 돌파할 것으로는 보이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지난해 말의 엔화 약세는 일부 단기적 환투기 세력의 엔화 매도와 일본 정부 정책당국자의 방조에 의한 것이며, 일본 국내 기관투자가나 개인투자자, 또는 해외 장기투자자들에 의한 달러 매입이 수반되지 않았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 투자자들은 계속 해외 채권을 매도하고 있다.
씨티은행 자료에 따르면 일본 정부 관리들이 엔화 약세를 유도하는 발언을 거듭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들의 달러 예금은 줄어드는 추세다.
따라서 최근 엔화 약세의 지속에 대해서는 한번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제한적 약세 전망에 힘실려 또한 올해 1분기에는 일본 금융기관들이 3월 결산에 맞추어 해외자산을 회수하는 움직임을 보일 것이며, 이 때문에 엔화가 오히려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9월의 미국 테러 사태와 세계의 주가 폭락으로 많은 일본 은행들이 반기말 시가평가를 연기한 바 있다.
따라서 올해 3월 결산 시점에는 닛케이지수가 13000선에 이르렀던 지난해 3월말 대비로 보유 국내주식에 대한 시가평가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국내 자산의 평가손을 보전하기 위한 일본 금융기관들의 해외자산 회수는 올해의 경우 예년보다 더 커질 수 있다.
금융기관들의 이런 해외자산 회수 움직임에 환투기 세력들이 이익실현을 위한 달러 매도세로 응할 경우 엔-달러 환율은 오히려 125엔 이하로 폭락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실제로 현재 씨티은행의 엔-달러 환율 예측치는 1개월 후 127엔, 3개월 후는 124엔이다.
엔화 약세를 유도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정책적 태도 역시 아시아 각국, 특히 한국과 중국 정부의 민감한 반응에 의해 제한될 것이다.
나아가 일본 정부의 엔화 약세 정책이 세계 각국의 경쟁적인 자국통화 절하로 이어진다면 10년 이래 최악의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도 사태를 방관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제조업체 최고경영자 출신인 미국의 폴 오닐 재무장관이 과연 자국 제조업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엔 약세, 아시아통화 약세, 달러 강세를 얼마나 더 용인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일부에서 예상하고 있는 150엔대 이상의 엔화 초약세 시나리오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세계 각국 외환정책 당국의 합의가 필수적이며, 현 시점에서 이러한 국제적인 합의 도출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올해 엔화 환율은 125~130엔 수준의 제한적인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경기 최대 변수는 세계경제 회복 만일 엔화 약세가 125~130엔대에서 제한된다면 원-달러 환율 역시 급등할 가능성은 적을 것이며, 당분간 1300원선 주변에서 등락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엔-달러 환율의 투기적인 오버슈팅을 감안하더라도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최고점인 1360원선을 계속 지킬 것으로 예상된다.
원화 환율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 요소는 결국 세계경제와 수출 회복 여부다.
우리 예상대로 미국이 선도하는 세계경제의 강력한 회복이 현실화한다면, 엔-달러 환율이 130엔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하더라도 원화는 강세를 보여 원-달러 환율은 올해 하반기에 1200원대 초반까지 하락할 수 있을 것이다.
엔화 약세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재 한국의 외환시장 제도가 자유변동환율제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실 IMF 경제위기 이전의 관리변동환율제도 아래서는 엔화 약세가 원-달러 환율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 제한되어 있었던 반면, 현재의 자유변동환율제 아래서는 원화 환율이 엔화 약세를 100% 반영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수출 경쟁력이 보전될 수 있다.
따라서 자유변동환율제를 통한 원화의 동반 약세가 엔화 약세의 악영향을 상당부분 중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엔화 약세가 과연 한국의 수출에 크게 악영향을 주어왔는지도 다시 한번 확인해봐야 한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엔화가 원화에 대해 10% 약세가 되면 한국의 수출은 27억달러 정도가 감소한다고 한다.
만약 원화에 대한 엔화의 약세가 일본의 수출 가격 경쟁력을 강화시켜 한국 수출에 악영향을 주었다면 원-엔 환율의 하락은 일본 수출에 비해 한국 수출의 비율을 감소시켜야 한다.
그러나 과거 20년간의 데이터를 잘 살펴 보면 일본의 수출에 대비한 한국 수출의 비율은 원-엔 환율과 별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설령 엔화의 10% 약세가 한국 수출을 27억달러 감소시킨다는 명제가 사실이라 할지라도, 이는 1506억달러 정도로 추정되는 지난해 연간 전체 수출과 비교하면 2%도 채 안 되는 수치다.
지난 한해 세계 불황의 여파로 수출이 12% 넘게 급감했던 상황과 비교해볼 때,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한국 경기와 수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세계경제의 회복 여부이며, 엔화 약세에 따른 악영향은 ‘세계경제 회복’이라는 대명제와 비교해볼 때 너무나 부차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엔화 약세가 일본 경제를 회복시키는 데 일정 정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엔화 약세로 촉발된 원화 약세는 한국 경제에 오히려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실제로 한일 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 비중을 보면 일본은 10%를 조금 넘는 수준인 반면 한국은 지난해 수출 부진에도 불구하고 40%를 넘는다.
원화 약세로 인한 수출업체의 수익성 보전은 지난 한해 한국 경제가 세계 불황의 파도를 헤쳐나갈 수 있게 해준 주된 이유 중 하나였으며, 엔화의 약세로 인한 원화의 동반 약세는 올해 상반기 계속되는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속에서 한국 경제에 계속 호재로 자리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단적으로 엔화 약세로 촉발된 원화의 약세는 전체 수출 중 일본과 직접적으로 경쟁하지 않는 40~50% 정도의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 입장에서 볼 때는 100% 호재일 뿐인 것이다.
실제로 많은 증권 회사들이 환율 상승에 따라 수출업체의 수익이 호전될 것이라는 전망을 이미 내놓고 있다.
또한 원화 약세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 역시 한국 경제에서는 득이 될 수 있다.
지난 한해 금융시장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한국 시장과 해외시장과의 동조화 현상이다.
원화 약세로 인해 일정 정도 인플레이션이 나타난다 해도 세계경제의 회복세가 뚜렷하게 가시화하지 않는 이상 명목금리의 상승은 제한될 것이며, 이는 결국 실질금리의 하락으로 이어져 실물경제를 회복시키는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런 실질금리의 하락 효과 역시 이미 지난해에 잘 나타난 바 있다.
마지막으로 엔화와 원화의 동반 약세가 외국인 주식투자자들의 한국 주식 매도를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도 지금으로서는 비현실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원-달러 환율이 1110원대에서 1360원대로 급등한 2000년 11월에서 2001년 4월 사이에 과연 외국인 주식 매도세가 있었던가? 오히려 세계경기가 조기 회복될 것이란 기대와 맞물려 외국인들의 강력한 매수세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 보더라도 한국 주식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다름 아닌 세계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이며, 엔화 약세가 우리나라의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거나 기업에 환차손을 입힌다든가 하는 우려는 세계경제 회복이 실현된다면 가볍게 잊혀질 수 있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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