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6:56 (목)
[커버스토리] 신경제 잔치는 끝났는가
[커버스토리] 신경제 잔치는 끝났는가
  • 이용인
  • 승인 2000.10.2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식시장 바닥으로 낙관론 비관론 맞서…시장 원리에 좀더 주목해야 미국은 비틀거렸다.
일본과 독일은 맹주 자리를 위협하며 바짝 추격해왔다.
미국인들은 화려했던 ‘팍스아메리카’ 시대를 그리워했다.
하지만 역사는 되돌아왔다.
80년대만 해도 맥을 못추던 미국 경제가 90년대 들어 다시 뜀박질을 시작한 것이다.
정보통신이라는 대표선수가 ‘신경제’라는 깃발을 들고 연신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80년대 2%에서 바닥을 기던 미국의 실질경제성장률은 4%까지 뛰어올랐다.
호황 국면에서 으레 골칫거리로 등장하던 높은 인플레이션도 3% 안에서 잡혔다.
높은 실질경제성장률과 낮은 인플레이션은 양립할 수 없는 거였다.
호황기에 수요가 많아지면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한다는 게 경제학의 오랜 불문율이었다.
하지만 ‘신경제’는 기존 경제교과서를 비웃으며 115개월 동안 미국 경제에 호황을 안겨주었다.
불황을 모르는 신경제의 ‘신화’는 그렇게 태어났다.
무너지는 신경제 신화 하지만 신경제 신화의 권위가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신경제의 ‘용광로’ 노릇을 하던 주가가 최근까지 곤두박질치고 있다.
다우지수는 올해 초와 비교해 11%나 하락했다.
정보통신 주가의 가늠자인 나스닥지수는 올 3월 최고치에 비해 40%나 빠졌다.
월스트리트에서 규정하는 약세장(최고치와 대비해 20% 이상 하락)의 수준을 크게 넘어선 상태다.
신경제의 대표선수들이 받은 타격은 더욱 컸다.
찬란한 상승세를 자랑하던 델컴퓨터는 올해 최고치에 비해 54%나 하락했다.
인텔과 루슨트테크놀로지도 최고치와 비교해 각각 47%와 72% 떨어졌다.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주가마저 2년 만에 최저치로 가라앉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주가는 지난해 12월 기록한 최고치 119.94달러에서 무려 60%나 폭락한 상태다.
상황이 이렇게 바뀌자 신경제의 실체를 부정했던 비관론자들의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미국 경제가 장기적인 호황을 누려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불황이 없는 ‘지속적 성장’이 가능하다는 신경제론자들의 주장은 터무니없다”는 것이다.
비관론자들은 이제 미국의 경기 둔화가 확실해지고 있으며, 정보통신도 그 영향권 안에 들었다고 말한다.
미국 <새너제이머큐리>는 최근 기사에서 “하이테크 기업들이 경제 부침에 무관하다는 전제는 이제 시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첨단기술 분야의 투자가 둔화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한다.
신경제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의 대결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주가의 급격한 등락이 있을 때마다, 아니면 다소 돌출적인 경기지표가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논쟁이 붙었다.
학계에서는 스탠퍼드대 폴 로머 교수가 신경제학의 기수를 자청했으며, MIT 폴 크루그만 교수는 “첨단산업 주가는 피라미드 판매방식의 사기와 비슷하다”며 비관론을 지켰다.
언론 쪽에서도 미국 <비즈니스위크>가 낙관론을 옹호했다면,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신경제는 허구”라며 눈썹을 치어올렸다.
하지만 최근 논쟁은 이전과는 사뭇 무게를 달리한다.
이전 논쟁은 경기순환론이나 인플레이션 등 거시적인 전망을 둘러싼 견해 차이였다.
어찌보면 호황이 계속되는 국면에서 “불황을 대비하자”는 식의 행복한 논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 경제의 성장세가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유가상승으로 기업들의 에너지 비용이 증가하고, 유로화 약세로 유럽 시장에 진출한 미국 다국적기업들의 실적이 아래를 향한다.
이런 외적 악재 속에서 전반적으로 기업수익이 떨어지고 있다.
신경제는 한때의 유행인가
세계 2차대전을 거치면서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은 50, 60년대 3%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70년대를 거쳐 80년대로 들어서면서 미국 경제는 바닥을 기었다.
그런데 90년대 들어 갑자기 투자와 생산이 눈에 띄게 늘었다.
게다가 시장불안도 급격히 해소되면서 소비도 회복세를 보였다.
신기한 것은 금리와 물가가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상식적으로 볼 때 투자수요가 늘면 금리도 오르고, 소비수요가 증가하면 물가가 올라야 하는데 정반대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신경제’는 이처럼 고성장, 저물가, 저실업 등 세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미국 경제 현상을 설명하려는 시도에서 나왔다.
신경제에서는 굴뚝산업과 달리 ‘수확체감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수확체감의 법칙이란 어떤 상품을 추가로 한단위 더 생산할 때 들어가는 비용(한계비용)이 점점 늘어나기 때문에 생산을 늘릴수록 수익이 줄어든다는 원리다.
그런데 정보통신 분야에선 초기 개발비용은 엄청나게 들어가지만 일단 개발만 끝나면 추가생산 비용이 급격이 떨어진다.
소프트웨어가 대표적인 예이다.
따라서 신경제에선 수확체감 대신 수확체증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한다.
PC를 서로 연결해 작업하면 사람이 일일이 하는 수고에 비해 효율도 높아지고 비용도 줄어드는 이른바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한다.
수확체증과 네트워크 효과는 서로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생산성 증가를 가져온다는 게 신경제의 핵심적인 주장이다.
생산성이 향상되면 물가상승 압력이 그만큼 줄어든다.
기업의 수익이 높아지므로 실업률 하락에 따른 인력 부족으로 임금이 상승해도 기업은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기업들이 임금상승분을 보충하기 위해 굳이 물건값을 올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생산성 향상의 젖줄은 높은 주가다.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은 기술개발 투자->생산성 향상->저실업, 고물가 유지라는 엔진의 기름 역할을 해왔다.
신경제에서 주가의 향방은 매우 민감한 문제다.
신경제 비판자들은 세마리 토끼를 잡는 전략이 수요-공급에 따른 기존 시장논리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힘들다고 주장한다.
생산성이 아무리 올라도 지속적인 실업률 하락은 결국 물가압력을 몰고온다는 것이다.
생산성 향상도 컴퓨터 분야에만 한정돼 있다.
이들은 또 과거에도 라디오, 영화, 텔레비전, 자동차 등이 세상에 선을 보일 때 지금과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고 말한다.
수년간 고성장, 저물가, 저실업이 유지되면서 기존 경제패턴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주식시장이 ‘거품’을 보인 점도 똑같다.
누구의 주장이 맞을지는 좀더 두고봐야 할 일이다.
이용인 기자 dragon@dot21.co.kr
외부 충격 강력, 거시지표도 적신호 거시경제 지표도 좋지 않다.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올 들어 3.8%나 올라 경기호황이 시작된 9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인들의 소비도 주춤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조금만 여유가 생겨도 집을 고친다.
주택수리자재 판매율은 소비자 구매력의 징표로 통한다.
그런데 세계적인 주택수리자재업체 홈디포 www.homedepot.com의 수익이 월스트리트의 애초 예상치보다 뚝 떨어졌다.
이 회사의 수익 악화는 10월12일 다우지수를 폭락시키는 기폭제가 될 정도였다.
게다가 ‘신경제의 기수’로 알려진 <비즈니스위크> 경제부장 마이클 만델이 신경제에 등을 돌렸다.
그의 ‘배신’은 불씨를 키우고 있는 논쟁에 기름을 끼얹었다.
그는 최근 펴낸 <다가오는 인터넷 공황>에서 “신경제는 없다”며 ‘사상전향’을 선언했다.
첨단기술이 주도하는 미국 경제의 호황이 조만간 급격한 침체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델은 증시 위축으로 기술 관련 투자가 줄어들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신기술 개발을 늦춰 생산성을 저하시킨다.
생산성이 떨어지면 경제 전반의 성장률도 하락할 수밖에 없고, 저물가 기조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물가상승과 달러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게 되고, 그 결과 경기둔화 폭은 더욱 커지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만델은 이런 과정을 거쳐 미국 경제가 심각하고 장기간에 걸친 경기후퇴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신경제를 낙관하는 이들은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월스트리트의 그린스펀’으로 불리는 골드만삭스의 애비 조셉 코언을 비롯한 미국의 내로라하는 투자전략가들은 미국 경제 전망이 아직도 밝다고 주장한다.
코언은 기업들의 수익성이 저하되고 있다고 하지만 3분기 수익을 발표한 기업 가운데 70%가 예상치를 충족시켰거나 웃돌았다고 강조한다.
그 정도면 꽤 괜찮은 성적표라는 것이다.
투자은행 페인웨버의 분석가 에드워드 커시너도 현재 주식시장이 16% 가량 저평가돼 있는 상태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미국 경제의 토대는 여전히 튼튼하다.
조만간 주가가 반등하면 소비가 증가해 경기를 확장시키는 ‘부의 효과’가 다시 나타날 수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미국의 IDC는 각국 기업들의 올해 정보통신 관련 투자가 지난해에 비해 10.4% 증가한 9750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내년에도 10.1%의 증가율을 보일 것이라고 주장해 신경제론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논쟁의 극단에 서 있는 이들은 이처럼 한치의 양보도 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하지만 최근 낙관론과 비관론의 ‘거두’들이 균형적인 시각을 강조하고 나서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스탠퍼드대 폴 로머 교수는 지난 10월17일 한국에서 열린 ‘세계지식포럼 2000’에 참석해 “경제에서 영구적으로 움직이는, 마찰없는 장치란 없다”고 주장했다.
신경제가 경기 사이클에서 비껴나 있다는 그동안의 주장을 우회적으로 거둬들인 셈이다.
폴 로머는 “과거 시장의 교훈을 잊지 말자”고 강조한다.
미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요인들을 신경제로 정의한다면, 그건 기술혁신과 시장장치의 균형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술 발전은 큰 그림의 일부일 뿐이다.
환율, 금리, 예금 등 ‘구경제’의 개념들에서 배우자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요컨대 경기가 둔화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시장에서 대안을 찾아보자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다.
낙관론과 비관론을 모두 경계하자 그동안 신경제를 강력하게 비판했던 영국 <이코노미스트>도 폴 로머 교수와 비슷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9월29일치에서 미국의 경제적 성공은 안정된 재정·통화정책과 신기술이 적절히 조화를 이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인터넷이 기술 혁명의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이전보다 훨씬 더 장기적인 호황이 계속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컴퓨터 기술발전에 따른 지속 성장을 주장하는 낙관론과 거품론을 펼치던 비관론을 모두 비판한 것이다.
지칠 줄 모르던 미국 신경제는 유가 상승과 유로화 하락, 주가 폭락 등 안팎의 장애물을 만나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이제 정보통신 혁명이 생산성 향상에 상당한 공헌을 했다고 자축할 때는 지난 것이다.
“신경제 잔치를 이어가기 위해서도 기존 시장원리를 더욱 잘 이해해야 한다”는 폴 로머 교수의 말은 그래서 의미있게 들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