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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올빼미 증시, 개미는 꼬이는 데
[초점] 올빼미 증시, 개미는 꼬이는 데
  • 이용인 기자
  • 승인 2002.01.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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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반 우려 반’의 눈길 속에 지난해 12월27일 야간증시(ECN)가 문을 연 지 보름이 지났다.
다소 이른 감은 있지만 그동안의 운영 실적을 놓고 여기저기서 평가가 한창이다.
한편에선 야간증시가 의외로 빠르게 자리를 잡고 있다며 여전히 기대를 걸고 있다.
다른 쪽에선 ‘단일가 매매방식’(종가 기준)이라는 어정쩡한 모습 때문에 또하나의 ‘정책실패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하지만 보름 동안의 ‘실험’을 거친 야간증시는 일단 선전하고 있다는 평가가 우세한 것 같다.
무엇보다 외부상황이 좋았다.
올해 들어 정규시장이 활황을 보이면서 야간증시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감도 커진 덕분이다.
종가로밖에 거래할 수 없지만 주가상승을 기대하고 야간에라도 주식을 사겠다는 투자자들과 장중 이익실현을 못한 투자자들 사이에 이해가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야간증시의 하루 거래대금이 100억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첫 거래일인 지난해 12월27일 야간증시 거래량은 25만6천주, 거래대금은 14억원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개인들의 참여가 늘어나면서 올해 1월15일 야간증시에선 거래량이 254만주, 거래대금은 113억원에 이르렀다.



정규시장에 대한 영향력 조금씩 커져

출발 보름 만에 거래량과 거래대금이 급속히 늘어나자 야간증시를 운영하는 한국ECN증권쪽은 흡족해하고 있다.
비교적 시장다운 면모를 갖춰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ECN증권 시장운영팀 손영락 과장은 “가격변동 없이 당일 종가 단일가격으로만 거래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대 밖으로 선전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한다.
내부에서도 출발 초기에 걱정을 많이 했지만 이제 “해볼 만하다”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또한 야간증시는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통한 전산매매로 이루어진다.
때문에 매매시스템의 안정성이 야간증시의 가장 큰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 별다른 시스템 사고가 없었다는 점도 거래자들에게 신뢰감을 준다.
한국ECN증권은 거래 데이터가 축적돼 그래프나 통계 등의 서비스가 많아지면 더욱 완벽한 꼴을 갖출 것이라고 말한다.


야간증시 관계자들을 더욱 고무시키는 것은 야간증시 거래동향이 다음날 정규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애널리스트들과 영업직원들 사이에서는 야간증시 동향을 살펴 다음날 투자전략을 짜거나 종목별 대응법을 체크하는 등 점차 활용도를 높이고 있다고 한다.
야간증시에서 거래가 많거나 매수·매도 잔량이 많았던 종목을 통해 시장대응에 필요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1월2일부터 15일까지 2주일(실거래일수로는 10일) 동안 야간시장에서 매도잔량이 많은 상위 10개 종목이 다음날 거래소의 시초가 평균수익률에 미친 영향을 조사해보았다.
종가로만 거래되는 야간증시에서 해당 종목의 매도잔량이 많다는 것은 다음날 주가가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사결과 10일 가운데 9일 동안 거래소의 시초가 평균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거꾸로 야간증시에서 매수호가 잔량 상위 10개 종목이 다음날 거래소에 미친 영향을 조사한 결과 하루를 제외하고는 수익률이 플러스를 기록했다.
또한 매도잔량보다는 매수잔량이 다음날 증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래프 참조)

하지만 야간증시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아직도 적지 않다.
먼저 투자주체별로 보면 그동안 개인들이 전체 매매의 97% 이상을 차지하고, 외국인과 기관은 거의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다음날 증시에 미치는 영향력이나 수수료 수입 면에서 볼 때 외국인과 기관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유인책이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제가 그리 쉽게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점심시간 개장을 둘러싸고도 노동조건 악화 등으로 내부 반발이 심했다”면서 가격변동이 없는 상황에서 기관투자가들이 야간증시에 참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전한다.


또한 거래가 가능한 종목 수는 코스피200과 코스닥50 구성종목 등을 합쳐 모두 250개에 이른다.
하지만 이 가운데 실제 거래되는 종목 수는 60% 수준인 150개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100여개 종목은 거의 ‘휴면 종목’이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한국ECN증권은 4월1일부터 거래종목을 거래소와 코스닥에 상장된 거의 모든 종목인 1500여개로 확대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 거래되는 종목이 얼마나 늘어날지 자신없어 하는 표정이다.
특히 지금까지의 결과를 살펴보면 하이닉스반도체가 야간증시를 먹여살렸다고 할 정도로 특정 종목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심한 경우 하이닉스반도체는 거래량과 거래대금 규모에서 전체 야간증시 거래의 60%를 차지하기도 한다.
한 종목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이런 거래구조는 야간증시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잘 보여준다.


한국ECN증권은 실거래 종목이 이처럼 편중되는 이유를 단일가 매매 방식에서 찾고 있다.
가격변동이 없기 때문에 정규시장 마감 뒤 호재나 악재가 터져도 투자자들은 일방적인 매수나 일방적인 매도 이외의 다른 전략을 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매수나 매도 잔량만 쌓이고 거래는 성립되지 않는다.
게다가 한국ECN증권은 손익분기점을 넘어서려면 하루 거래대금이 1천억원 정도는 돼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재의 단일가 매매 방식으로는 거래대금 300억~400억원 이상의 성장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현재 야간증시의 매매가격 변동 허용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부 입장에선 국민을 ‘야간증시 도박장’으로 몰아넣으려 하느냐는 여론의 비판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과 같은 ‘반쪽짜리 야간증시’를 무작정 끌고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기에 정부의 고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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