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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남북관계 긍정적 신호 잇따라
[초점] 남북관계 긍정적 신호 잇따라
  • 이용인 기자
  • 승인 2002.01.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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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호적 메시지 주고받으며 대화 가능성 타진… 금강산 관광사업이 잣대 될 것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새로운 국면전환의 가능성을 엿보이고 있다.
남북이 서로 우호적인 메시지를 주고받는가 하면, 북미관계에서도 북쪽이 한발짝 다가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적어도 지난해 11월, 6차 남북장관급 회담 결렬 이후 얼어붙었던 한반도 정세가 다소 누그러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남북관계나 북미관계가 어느 단계까지 진전될 수 있을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사실 지난 1월14일 김대중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을 할 때만 해도 남북관계나 북미관계 모두 대화 재개의 명분이나 단서를 찾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대통령은 연두기자회견에서 남북, 북미관계가 확실한 전망이 없다거나 불투명하다는 답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며칠 뒤인 1월17일 김 대통령은 “북한이 경의선 공사 막사를 수리하는 등 철도연결 조짐을 보이고 있다”면서 북한에 변화의 조짐이 있음을 강하게 암시했다.
이어 북한은 다음날 금강산을 방문한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에게 “5, 6월 평양에서 열리는 아리랑공연에 금강산 관광객들이 참관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며 도움을 요청한다.
정부, 금강산 사업 지원책 발표 북쪽의 손짓에 남쪽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발빠르게 ‘화답’했다.
곧바로 아리랑 공연 참가 허용을 발표한 정부는 이어 1월21일 중단위기에 처한 금강산 관광을 지원할 것이라고 발표한다.
다시 북한은 다음날인 22일 ‘정부·정당·단체 합동회의’를 통해 사실상 조건없는 당국간 대화에 나설 뜻을 강하게 내비쳤다.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남조선(남한)에서 누가 집권하고 어떤 정권이 나오든” 6·15 공동선언의 고수·이행을 강조한 것이다.
북한은 또한 이날 회의에서 “우리는 당국 사이의 대화와 모든 형태의 민간급 회담 및 접촉을 모색해야 하며 그것을 적극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당국간 대화를 직접 제의한 것은 아니지만, 대화를 위한 분위기는 일단 띄워놓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북미관계에서도 북한은 대화 재개를 위한 새로운 방법 모색에 나서고 있다.
도널드 그레그, 스티븐 보즈워스, 리처드 워커, 윌리엄 글라이스틴 등 전직 주한 미대사 4명과 미국의 아시아문제 전문가인 로버트 스칼라피노 버클리대 명예교수를 초청한 것이다.
북한은 애초부터 전직 대사들의 방북에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비록 ‘민간차원’의 방북이기는 하지만 부시 행정부에 강한 대화재개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일련의 상황들을 보면 겉으로는 북한이 한반도 정세 해빙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북한은 대외적으로 정치적·경제적 고립 위기에 처해 있다.
북한의 대미관계는 국제무대에서 정치적 위상을 유지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내부의 경제위기를 돌파하는 핵심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몇년 동안 공을 들여왔던 대미관계는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물거품이 돼버렸다.
부시 행정부는 지난해 6월 ‘선결조건 없는 북한과의 대화’ 시작에 동의하면서도 북한 핵무기와 미사일 문제 외에 재래식 무기에 대한 논의를 추가로 요구했다.
게다가 번번이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내놓고 있다.
그때마다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 등 단골 메뉴를 내세우고 있지만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으로 체제 긴장도가 높아져 있는 상태다.
게다가 일본 당국도 재일 총련계 동포들의 신용조합에 대대적 수사를 벌이는 등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이처럼 고립 위기 속에서 북한은 계속 미국에 대화 재개 의사를 간접적으로 표명해왔다.
반테러 협약에 가입할 의사를 비친 것이나, 지난해 11월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대사를 국장급에서 차관급 혹은 차관보급인 박길연 대사를 보낸 것도 일종의 ‘러브 콜’이라고 할 수 있다.
전직 주한 미대사들을 초청한 것 역시 이런 연장선 위에 있다.
주로 북한에 호의적이었던 미국 민주당 소속의 전직 대사들을 초청해 공화당의 부시 행정부에 북한이 ‘깡패국가’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의도인 셈이다.
전직 대사들의 방북기간이 부시 미 대통령의 한국 방문 일정과 겹치는 2월19부터 23일인 점도 극적인 효과를 높이는 방법이다.
북한이 대외적 고립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선 북미관계뿐 아니라 남북관계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최근 북한의 발빠른 반응은 이런 맥락 속에서 해석할 수 있다.
남북관계가 끊어지면 당장 테러지원국 응징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북한으로 쏠리게 된다.
“아쉬울 것 없다”며 꿈적도 하지 않고 있는 미국을 움직이기 위해선, 그리고 소극적으로는 북미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선 남북관계 개선을 버팀목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북한의 대외관계에서 남북관계 개선이 이전보다 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북한 사회 내부적으로도 올해 남북관계 개선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올해 김정일 국방위원장 60회 생일, 인민군창설 70돌, 김일성 탄생 90돌 등 굵직굵직한 행사들을 앞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관계 경색으로 체제 긴장도를 높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아리랑 축제 등에는 대규모 자금이 들어간다.
북한이 금강산 관광객과 아리랑 축제 관광을 연계시키자고 제안한 것도 이런 경제적 측면을 염두에 둔 것이다.
북한의 최근 변화가 갑작스러운 ‘사건’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이미 북한은 지난해 9월부터 남북대화 재개를 커다란 전략적 축으로 삼아왔다는 것이다.
실제 북한은 지난해 상반기에 전력 지원 문제 등으로 장관급 회담이 결렬되자 같은해 9월 5차 장관급 회담을 열자며 먼저 제의를 해왔다.
세종연구소 이종석 남북관계연구실장은 “북쪽의 입장보다는 남한이나 미국의 대응 방식 변화에 따라 정세가 달라진 측면이 강하다”고 진단한다.
실제 남한쪽에서 먼저 ‘신호’를 보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 안팎에서도 지난해 5차 남북장관급 회담 결렬을 둘러싸고 ‘남쪽 책임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남쪽이 회담 막판에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추위)의 개최장소를 금강산으로 할 것이냐, 서울로 할 것이냐는 너무 사소한 문제에 매달리는 바람에 판이 깨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담 이외에도 임기말인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성과를 마무리해야 할 정치적 필요성 때문에 남쪽이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어찌됐든 해빙 ‘가능성’을 보여준 최근 기류가 어느 정도 실제 성과로 나타날 수 있을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금강산 관광사업이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한 남북협력기금 지원 방침을 발표한 것은 지난해 6월 북한이 합의한 금강산 관광특구 지정과 육로관광 허용을 시행하라는 대북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한편으로는 육로관광 허용 때까지 현대아산의 적자폭을 최대한 줄여나가며 시간을 벌겠다는 뜻도 있지만 말이다.
사실 ‘비즈니스’ 측면에서만 보면 정부의 금강산 관광 지원이 그리 실효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자세한 지원내용이 결정되려면 좀더 시간이 필요하지만 정부는 이산가족과 학생들의 수학여행에 대한 금강산관광 경비 보조, 관광공사에 대한 남북협력기금 대출상환 조건 완화, 면세점 승인 등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정도의 지원으로 금강산 관광이 자체 동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현재 관광객이 매월 4천명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매달 20억~30억원에 이르는 운영적자를 보고 있다.
현대쪽은 정부의 지원으로 연간 수학여행 대상 학생 63만명 중 30% 가량인 18만명을 유치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 정도 관광객이 찾아줄 만큼 붐이 조성될지는 의문이다.
해빙에 대한 섣부른 기대 금물 결국 북한이 남한 정부의 1단계 조처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금강산 관광사업과 남북관계의 풍향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남북대화 재개의 최대 걸림돌 가운데 하나는 밀린 관광대금 2400만달러 지급 문제였다.
북한이 계속 밀린 대금에 대해 남한 정부의 보증을 요구한다면 남북관계는 다시 얼어붙을 가능성이 높다.
가뜩이나 야당으로부터 ‘퍼주기’라는 비난에 시달리고 있는 정부가 더이상 진전된 지원책을 내놓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북한이 관광특구만이라도 지정을 하고 나선다면 남북관계는 다시 급진전될 가능성이 높다.
어차피 육로관광 허용은 군사적 문제 등과 맞물려 있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1월 중순부터 나타난 남북관계의 청신호들은 남북당국자 회담 개최 등 한반도 해빙에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신중론도 적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조동호 북한경제팀장은 “남북관계 해빙은 아직 ‘가능성’일 뿐 워낙 변수가 많아 좀더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북관계가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물려가며 상승작용을 하지 않으면 또다시 기대만 부풀려놓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직 섣부른 낙관론이나 비관론은 접어두는 게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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