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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부활하는 신경제 옹호론
[미국] 부활하는 신경제 옹호론
  • 박종생/ <한겨레> 국제부
  • 승인 2002.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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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분기 미경제 플러스 성장 ‘이변’… “정보기술 발달 영향” 목소리 높여

미국 경제가 지난해 4분기에 0.2% 성장한 것으로 발표되면서, 미국이 최근 1년반 동안 겪고 있는 경기침체의 성격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일부에서는 신경제시대의 새로운 경기순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고, 일부에서는 경기침체(recession)라는 용어를 연속 2분기 이상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경우에 사용하는 학계의 통상적인 정의를 그대로 적용해 미국이 아직 경기침체 자체를 겪지 않았다는 주장까지 제기하고 있다.
미국 경제가 지난해 3분기에만 마이너스 성장(-1.3%)을 기록하고 4분기에 다시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선 것을 감안하면, 이런 주장들이 아주 터무니없게 들리지는 않는다.
지난해 미국 경제는 1930년대의 대공황과 90년대 이후 일본의 장기불황에 견줄 만한 심각한 침체에 빠져들었다는 게 그동안의 일반적인 시각이었다.
인터넷 거품 붕괴, 9·11 테러, 한해 해고자 200만명, 기업 설비투자 20여년 만의 최악, 세계경제 동시침체 등의 정황은 이런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월가의 전문가들은 대부분 미국 경제가 지난해 4분기에 -1%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3분기에만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다시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다는 발표는 놀라운 소식임에 틀림없었다.
경기침체, 이전보다 짧고 덜 심각해졌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됐을까?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앨런 그린스펀 의장은 1년 전인 지난해 2월13일 미국 상원 은행소위에서 미국 경제가 둔화하기 시작했다고 인정하면서 이렇게 증언했다.
“현재 경기하강 압력이 우세한 것은 사실이나 기술혁신에 따른 생산성 향상이 지속되고 있어 하반기에는 경기가 좋아질 것이다.
정보기술의 발전과 지속적인 생산성 향상은 경기조정 과정을 단축시킬 것이다.
” 지난해 4분기 미국 경제성장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린스펀의 당시 증언이 현상의 일부를 적절하게 설명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지난해 4분기 미국 경제의 플러스 성장에는 지칠 줄 모르는 미국 소비자들의 지출이 가장 크게 기여했다.
미국 소비자들은 9·11 테러 이후 소비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고 소비를 5.4%나 늘렸다.
이런 소비증가율은 2년 만의 최고치다.
또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늘리기 시작해 첨단장비 구입비용이 1년 만에 처음으로 증가했고, 컴퓨터장비 주문도 20%나 급증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기업들이 이 기간에 재고를 엄청나게 줄였다는 것이다.
미국 기업들의 재고 축소규모는 지난해 3분기 619억달러에 이어, 4분기에는 1206억달러에 이르렀다.
이는 올해 1분기 이후 미국 기업들이 본격적인 재고투자를 실시할 것임을 예고해 경기회복의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이다.
지속적인 생산성 향상도 이 기간의 빠뜨릴 수 없는 특징이다.
지난해 3월부터 경기침체에 들어선 미국 경제는 지난해 2~4분기에 2.6%의 생산성 증가를 기록했다.
미국 경제가 50년대 이후 8번의 경기침체 기간 중 생산성이 평균 -0.6%를 기록한 것에 견주면 이는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이는 정보기술 도입으로 미국 기업들의 효율성이 높아진데다 대대적 인력감축에도 신속히 나섰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여러 요인 중 재고 감소와 생산성 증가는 정보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것으로 풀이된다.
첨단 정보기술의 도움으로 실시간으로 사내외 정보를 획득할 수 있게 된 기업들은 재고감축을 신속하게 단행하며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그린스펀 연준 의장은 올해 1월11일에 한 연설에서 경기순환의 수축국면에서도 지속적인 생산성 향상이 이뤄지고 있는 데 대해 “우리 경제구조는 90년대 중반에 변했다”며 “이런 놀라운 변화의 핵심적인 기제는 정보 획득의 비약적 증가”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오늘날 경기위축은 초기에는 더 가파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불균형에 좀더 준비된 형태로 대응하기 때문에 경기침체는 전반적으로 이전보다 덜 심각하다”고 말했다.
미국 경제분석 전문회사인 이코노미닷컴의 수석 경제학자인 마크 잔디도 미국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신경제의 특징 중 하나는 경기침체가 있지만 이것이 짧고 상대적으로 덜 심각하다는 것”이라며 “지금 경제는 좀더 생산적이고 유연해졌다”고 말했다.
수정치 발표에서 마이너스로 바뀔수도 물론 미국 경제의 성장 반전에는 저금리 기조를 유지한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인하 정책,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노동시장의 유연성, 세금인하를 포함한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 등도 큰 역할을 했다.
경기침체는 소득이 줄고 실업이 늘어나 경제에 고통을 안겨주는 기간인 만큼, 그 기간이 짧아지는 것은 모든 경제주체들이 바라는 바다.
그렇지만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다.
신경제 옹호론자들의 주장은 아직 사실로 판명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의 지난해 4분기 GDP 성장률은 앞으로 두번의 수정을 거치게 된다.
이번 발표 수치가 0.2%인만큼 수정치에서 마이너스로 돌변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지난해 3분기 GDP도 애초 -0.7%에서 -1.3%로 하향조정된 바 있다.
물론 기업들의 재고투자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올해 1분기에는 개인의 소비지출이 지난해처럼 지속된다면 대략 1% 안팎의 플러스 성장이 가능한 만큼, 경기침체 기간이 짧아졌다는 주장이 당분간 설득력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경기침체기에 나타나는 더블딥(Double-dip:2중침체) 현상이 재발하고 엔론 사태로 촉발된 미국 기업들의 투명성 문제가 ‘신뢰의 위기’로 악화하는 등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에는 다른 시나리오가 전개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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