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8 23:01 (목)
[e비즈니스] 열린 디지털경제와 그 적들
[e비즈니스] 열린 디지털경제와 그 적들
  • 임채훈
  • 승인 2001.05.3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관련 법률 부지기수… 정부 부처간 불협화음도 걸림돌

지난해 9월 한 정부부처의 재무담당 관계자는 프린터 잉크, 사무용품 등 기업소모성자재(MRO) 조달에 인터넷 역경매 방식을 도입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경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자신이 속해 있는 부서만 1년에 4억5천만원 가량 지출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윗사람들은 물론 다른 부서에서도 적극 환영하고 나왔다.
사업계획을 작성한 이 관계자 역시 신이 나서 일을 진행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걸림돌을 만났다.
당시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 39조에 따르면 조달과정에서 입찰서 제출은 직접하거나 우편으로만 하도록 돼 있었다.
온라인으로 제출된 입찰서는 법적으로 인정을 받을 수 없었다.
이 관계자는 막막하기만 했다.
인터넷 역경매 방식을 도입하면 분명 지갑에서 빠져나가는 돈을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지만 법이 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주변에서는 감사에 걸릴 수 있다며 역경매 조달 계획을 포기할 것을 권했다.
애써 나서서 자기 몸을 다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사업을 밀어붙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6개월 만에 17억원의 경비를 절감한 것이다.
공로를 인정받아 이 관계자는 모범공무원으로 선정됐고 2천만원이 넘는 성과급까지 받았다.
“다행히 최근 시행령이 바뀌었습니다.
하마터면 좋은 결과를 내고도 감사에서 걸릴 뻔했습니다.
온라인 시대, 오프라인 법률 위의 얘기는 아주 작은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디지털 경제로 가는 길목마다 법적 걸림돌에 걸려 우왕좌왕해야 하는 기업들의 하소연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위 공무원의 사례처럼 온라인을 통한 문서제출이나 거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 새롭게 등장한 용어에 대한 개념정의가 명확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경우, 억지춘향식으로 오프라인 법률의 적용을 받아 사업영역을 제한받는 경우 등 사례도 다양하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 해도 관련 법률이 아직 존재하지 않아 사업자 등록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는 업체도 있다.
전자상거래의 대표격인 인터넷 쇼핑몰 업체들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법률이 아직도 많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인터넷 쇼핑몰이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방판법)’ 제3장 ‘통신판매’ 부분에 따라 규제를 받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라고 꼽는다.
95년에 전문이 개정된 이 법률은 오프라인 비즈니스를 전제로 제정한 것이어서 전자상거래를 규율하는 데서는 한계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만일의 경우 분쟁이 발생했을 때 온라인 거래와, 고객에게 e메일로 발송한 문서에 대한 법적 효력을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인터넷 경매업체들은 상황이 더 좋지 못하다.
그나마 적용받을 법률도 없다.
기본적으로는 쇼핑몰과 마찬가지로 방문판매법의 적용을 받고 있지만, 이 법에는 C2C(소비자간 전자상거래)를 다루는 부분이 전혀 없다.
대표적 C2C 모델인 인터넷 경매는 옥션 한 업체만 해도 하루 10억원이 넘는 물품이 거래될 정도로 거대 규모로 성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C2C를 규율하는 법이 없다보니 문제가 생기면 서비스 업체들이 하나하나 중재에 나서야 한다.
소비자 보호와 반품 등이 명확히 정의가 돼 있지 않기 때문에 경매사이트 이용자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도 다반사다.
옥션 김선희 과장은 “C2C와 관련된 법률이 하루빨리 제정돼야 업체와 소비자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터넷 쇼핑몰 업체들은 정부가 전자상거래를 활성화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신용카드 결제 부분에도 신경을 써달라고 이야기한다.
인터넷 쇼핑몰은 신용카드로 결제를 할 경우 카드의 비밀번호 가운데 앞의 두자리와 주민등록번호 가운데 뒤의 7자리 숫자를 입력하게 되어 있다.
다른 사람의 신용카드를 부당하게 사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본인확인 절차를 거치는 것이다.
모든 정보를 입력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개인정보 유출문제가 있어 제한된 정보만 받는다고 이들은 이야기한다.
하지만 카드사고가 났을 경우 전부 온라인 쇼핑몰이 그 책임을 떠안게 돼 있다.
‘여신전문금융업법’ 19조에 따르면 가맹점은 신용카드를 본인이 정당하게 사용하고 있는지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주민등록번호와 비밀번호 일부를 받는 것만으로는 본인임을 완전히 확인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인터넷 쇼핑몰이 책임을 떠안게 되는 것이다.
인터넷 쇼핑몰 업체들은 사용자를 직접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오프라인과 달리 온라인 거래에서 이루어지는 카드결제의 특수성을 인정하는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신기술 있어도 사업 못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러한 것들은 비교적 사소한 부분이라고 말한다.
이미 문제의 원인과 배경이 명확해졌고 나름대로 다양한 처방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 부처에서 조금만 신경을 쓰면 금세 해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것들보다는 새로운 기술과 그 기술을 응용한 비즈니스가 등장했을 때 이를 뒷받침할 법률이 없어 사업을 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경우 기존의 오프라인 환경의 법률을 억지로 적용하게 되고 결국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펼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에 제약이 가해진다는 설명이다.
새로운 전자결제 서비스로 주목받고 있는 e메일 결제 업체들의 하소연이 대표적이다.
e메일 결제는 말 그대로 e메일로 대금을 청구하고 송금하는 새로운 결제방법이다.
이때 중간에서 실제 현금을 중개해주는 것이 e메일 결제업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다.
미국의 대표적 e메일 결제업체인 페이팰(paypal)은 이용고객에게 결제금액의 일정비율을 돌려준다.
사용자끼리 e메일로 결제를 한다고 해도 자금이 즉시 이체되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페이팰의 계좌에 잠시 머무르기 때문에 이때 생긴 이자소득을 다시 고객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국내 e메일 결제업체인 페이레터도 페이팰과 같은 고객보상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러한 서비스가 ‘은행법’ 2조1호에 규정되어 있는 ‘불특정다수에 대한 채무를 부담해 자금을 조달’하는 은행업에 해당된다.
결국 은행이 아닌 인터넷 서비스 업체가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법률위반이 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페이레터는 고객보상 서비스는 실시하지 못하고 있다.
또 e메일 송금시 신용카드로 결제를 하는 경우 이른바 ‘카드깡’의 우려가 있다는 지적 때문에 페이레터는 신용카드를 이용한 결제서비스는 선뜻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페이레터 서진석 실장은 “새로운 기술이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는 관련 법률이 없는 것이 아쉽다”고 말한다.
은행이 아닌 이상 은행업무를 할 수 없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기존 법률을 적용해 새로 개발한 서비스를 펼쳐볼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페이레터는 이런 법적 제한으로 특정회사가 이용자의 신청을 받아 이용자 계좌에서 돈을 긁어오는 서비스인 CMS 서비스 사용에도 못받고 있다.
페이레터처럼 신기술을 선보이고도 기존 법률의 적용 때문에 사업에 장애가 있는 경우는 최근에도 있었다.
최근 알려진 대로 휴대전화를 통한 결제가 ‘여신전문금융업법’에 위배된다는 신용카드사업자의 주장으로 한때 휴대전화 결제 서비스 업체가 긴장한 적이 있었다.
물론 정부만을 나무랄 수는 없다.
급변하는 디지털 경제환경을 법률이 적절히 따라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 관계자들도 디지털 경제의 확산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며 너무 몰아붙이지 말라고 말한다.
일찌감치 99년부터 전자거래기본법을 비롯해 전자서명법 등 관련 법률을 만들어왔다는 것이다.
때로 부처 사이에 협의가 어려워 법률 제정에 장애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그런 경우 이미 제정돼 있는 법률을 개정·보완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때로 법률에 문제가 있을 경우 업체들이 유권해석을 부탁하면 충분히 합의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말한다.
다만 관련 법률을 검토하고 세부사항을 살피다보면 법률 제정시기가 다소 늦춰질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인정했다.
정부 늦장에 속타는 기업 정부 관계자들은 오히려 업체들의 주장에 약간의 무리한 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디지털 경제가 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발달해야 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앞장서서 지원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무분별하게 생겨나는 업체 때문에 소비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일정 정도의 규제는 필요하고 업체들은 이런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디지털 경제를 이끄는 산업현장에서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지 못하는 정부의 자세가 안타깝다고 지적한다.
경매사이트가 나온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관련 법률이 없는 것은 정부의 성의부족이라는 것이다.
디지털 경제의 원활한 흐름을 제어하고 이끄는 데는 아직 미진한 면이 많다는 얘기다.
이처럼 미비한 법률이 많은 데는 부처간의 영역다툼도 한몫했다고 업체들은 생각한다.
전자상거래기본법을 통해 입지를 다지려는 산업자원부와 IT산업기본법을 새로 만들면서 영역을 다지려는 정보통신부 사이의 싸움이 전자상거래 관련 업체들을 짜증나게 만든다.
또 디지털 콘텐츠 산업발전법을 새로 만들어 콘텐츠 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정통부와 저작권법을 개정하기만 하면 된다는 문화관광부 사이의 싸움도 관련 업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지난해에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전자거래 및 통신판매에 관한 법률(안)’을 만들었지만 관련 부처의 밥그릇 싸움으로 입법이 보류된 상태다.
업체들은 서로의 영역을 주장하려고 관계 부처들이 싸우다보니 법이 졸속으로 제정되고 업무의 비효율을 가져온다고 지적한다.
이런 밥그릇 싸움으로 행정이 난맥을 보이면서 가장 피해를 보았던 분야 중 하나가 인터넷데이터센터(IDC)다.
지난해까지 IDC 업체들은 산업시설임에도 불구하고 부동산임대업으로 분류되어 세제혜택을 거의 받지 못했다.
수도권에 부지를 마련할 경우 300%의 등록세를 고스란히 납부했을 정도다.
정부에서는 업계 관계자들의 요구를 반영해 하루빨리 디지털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정부의 모든 조달업무를 온라인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하는 것보다는 현재 이것을 막고 있는 법들을 바꾸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진정한 벤처 육성책은 자금지원이나 공공지원 정책보다 정부가 앞장 서서 법이나 제도를 정비해주는 일”이라는 업계 목소리에 정부가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는 법들
IT 관련 업체들은 꾸준히 관련 법령을 정비하라는 요구를 정부에 해왔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나 기타 민간기관들이 법 개정을 요구하는 항목은 크게 전자거래 일반, 전자서명과 인증, 전자결제, 지적재산권, 소비자보호, 개인정보보호, 세제지원, 공공조달 등 8개 분야다.
‘전자거래기본법’ 5조에는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자적 형태로 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문서의 효력이 부인되지 않는다’라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기존 법령에서는 대부분 ‘서면’으로만 문서를 교환하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업체들은 이 서면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전자문서도 서면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자결제만을 다루는 국내 법률이 전혀 없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는 여신전문금융업법, 신용정보법 등이 전자결제를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예전에 생긴 법들은 최근 동향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또한 전자지불과 관련된 권리나 의무는 금융기관의 약관에 따라 규율하고 있지만 약관에 미흡한 점이 많아 이용자보호에 미흡하다는 점도 함께 지적되고 있다.
업체가 보유하고 있는 고유의 데이터베이스가 저작권법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저작권법 6조에는 ‘소재의 선택·배열의 창작성이 인정되는 편집물의 경우에만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라고 규정돼 있다.
데이터베이스는 창작성이 없는 것으로 간주돼 저작권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코리안클릭 이기훈 과장은 “노하우가 들어가고 어느 정도 가공된 데이터베이스라면 저작권이 당연히 인정돼야 한다”고 말한다.
전자도서관도 정보의 디지털화 작업에 막대한 시간과 제작비용이 소모되지만 상대적으로 제작자의 권리가 부족하다는 것도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공공조달에도 온라인 거래를 가로막는 걸림돌은 여전히 있다.
최근 시행령이 일부 바뀌어서 전자문서로 입찰서를 제출하는 것을 허용했다.
하지만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 39조2항에는 입찰자가 제출한 입찰서를 교환·변경 또는 취소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수시로 입찰조건을 변경해야 하는 경매인 역경매 방식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