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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코리아는 세계인의 옐로칩
[커버스토리] 코리아는 세계인의 옐로칩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2.03.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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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는 과연 바깥에서 안다리걸기로 후려쳐도 쓰러지지 않는 우람한 다리를 갖게 된 걸까?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일본 경제 3월 위기설, 나스닥 급락이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꺾임없이 쭉쭉 뻗어나가면서, 한국 경제는 세계의 ‘옐로칩’(중저가 우량주)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 경제의 성과에 쏟아지는 찬사는 황홀하기만 하다.
세계 유수의 투자은행인 JP모건은 2월말 ‘A등급을 재탈환하는 한국’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고 신용평가기관 무디스가 3월 안에 한국의 신용등급을 Baa2에서 Baa1으로 한단계 높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기관은 한국의 경제등급이 사실상 이미 A급에 도달해 있다고 평가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대외채무 비율이 1998년 50%에서 최근 28%로 크게 떨어져 A-등급 국가의 중간치인 26%보다 높아졌고,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20% 수준으로 A-등급 국가의 중간치인 39~41%보다 낮아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올해 말이나 내년 초 한국의 신용등급이 Baa1에서 한단계 추가 상승해 A등급에 이를 것이라고 이 기관은 예측했다.
신용평가회사들 가운데 가장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무디스가 신용등급을 상향조정하면 S&P, 푸치 등 다른 신용평가회사들도 한국의 신용등급을 높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해외 금융기관들의 한국 경제 전망은 핑크빛으로 물들고 있다.
투자은행인 도이체방크는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웃도는 6.5%에 이를 것으로 내다본다.
ING베어링도 성장률 전망치를 4.0%에서 6.0%로 올려 잡았으며 UBS워버그와 JP모건도 최근 5.3%로 수정했다.
국내 기관들도 조심스레 전망치를 올려 잡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올해 성장률이 한국은행이 예상한 3.9%나 한국개발연구원이 예상한 4.1%다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삼성경제연구소와 LG경제연구원은 이미 거시경제 지표 호전, 반도체 가격 인상을 근거로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5%대로 수정했다.


이런 전망들 덕분일까? 설 연휴 이후 한국증시는 보기 드문 강세를 보여줬다.
엔론 파산과 IBM 분식회계 논란 속에 나스닥지수 하락이 계속됐는데도 한국증시만 독야청청 상승장을 펼친 것이다.
반도체 경기의 영향이 크고 신흥시장의 쌍두마차란 점에서 한국 KOSPI지수와 비슷하게 움직였던 대만 가권지수조차 이 기간에 하락세로 돌아섰던 데 비하면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다.
이렇게 세계 증시의 역풍을 시원스레 헤쳐나가고 있는 한국 경제의 ‘굳건한 다리’를 툭툭 두드리며 낙관론자들은 말한다.
“이 정도면 더 비싸질 수 있겠어?”

지난 2월말 UBS워버그증권은 지수가 850~900대에 머무를 가능성을 종전 10%에서 30%로 올리고 700~850대에 머무를 가능성은 65%로 낮췄다.
ING베어링증권은 2월말 종합주가지수 12개월 목표치를 880에서 960으로 높였다.
살로먼스미스바니(SSB)증권도 “한국증시가 지수 800선에 안착한 이후에 부동산시장 안정과 펀드자금의 강한 유입에 힘입어 강세장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기업가치에 비해 싼 주식을 잘 발굴하기로 유명한 템플턴투신운용 이해균 팀장은 1000을 넘어가면 앞으로 3자릿수 지수를 구경하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들이 마음 든든하게 바라보고 있는 ‘우람한 두 다리’는 IMF 구제금융기를 거치면서 우량해진 한국 기업들의 개선된 체질과, 세계경기 불황에도 경제를 단단하게 받쳐준 한국 내수시장이다.
UBS워버그는 2월말에 펴낸 ‘재평가는 계속된다’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세계경제가 가혹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데도 한국에선 메디슨 외엔 큰 기업 파산이 일어나지 않고 있으며 그 부채 규모도 96년부터 2001년 사이에 파산선고를 받은 재벌들에 비하면 심각하지 않다”고 칭찬한다.


이것은 기업체질과 내수시장 여건이 개선된 덕분이다.
한국의 기업채무는 98년부터 2001년 3분기까지 3.3%가 늘었는데,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이 12%였던 점을 감안해보면 실질적인 채무는 크게 줄어들었다.
UBS워버그는 지난 4년 동안 한국이 각별한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한다.
부실자산을 분리시키고 그것을 155조원의 공적자금으로 안아들이면서, 과거에 자본을 남용했던 기득권과 정면승부를 벌였다는 것이다.
아울러 소비지출 상승은 수출 의존적인 한국 경제가 세계 경제의 춘궁기에도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든든한 자양분이 되어주고 있다.
단단한 내수 기반은 한국 경제가 더이상 수출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되도록 받쳐준다.
이런 근거로 UBS워버그 이승훈 상무는 한국 기업의 주당순이익(EPS)이 올해 73.6%, 내년에 41.7%씩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게다가 한반도 바깥으로부턴 경기 해빙의 봄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있다.
2월말 미국 상무부는 지난해 4분기 미국 경제가 애초 예상보다 훨씬 높은 1.4% 성장했다고 밝혔다.
이는 상무부가 한달 전 발표한 0.2%보다 훨씬 높은 것이고, 전문가들의 예상치 0.9%보다도 높은 것이다.
이것은 미국이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사이에 경기침체에서 벗어나 회복국면에 접어든 것을 의미한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에 앞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앨런 그린스펀 의장은 “미국의 경기침체가 끝났음을 증명하는 조짐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미국의 실질 경제성장률이 지난해보다 높은 2.5~3.0%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정도의 경제성장률은 그린스펀의 말마따나 ‘경기가 회복됐다’고 말하기엔 미흡한 수준이다.
그린스펀은 2.5% 안팎의 경제성장률은 일반적인 나라들이 경기침체에서 회복되는 속도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고 평했다.
경기회복을 확고히 하기 위해선 기업투자가 계속 증가해야 하나 그 증가세는 완만하며 미국 경제의 원동력인 소비지출은 아직 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린스펀은 따라서 미국 경기회복의 속도는 아주 완만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미국 경기엔 시원치 않은 봄바람일지라도 한국 경기엔 오뉴월 초복 더위를 몰고 온다.
한 홍콩계 기관투자가는 미국의 정보기술(IT) 수요가 1.5% 늘면 한국의 수출은 10%가 는다고 추정한다.
그러므로 미국 경기가 올해 2분기부터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면 한국은 하반기부터 4~7%의 경제성장률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신흥시장 펀드의 경우 올해 아시아, 그것도 신흥산업 국가에 투자를 확대하는 전략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한국투자 비중 확대를 암시했다.
수출 경기회복은 한국 경제에 날개를 달아주는 셈이다.


여기까지는 걱정할 일이 별로 없어 보인다.
한국 경제를 위협하던 외부 요인들은 하나둘 사라져가고 있다.
그러나 위험은 안에 숨어 있다.
내수 기반, 양호한 기업실적이라는 ‘우람한 두 다리’에는 결정적 아킬레스건이 있다.
내수시장의 아킬레스건은 비정상적으로 급상승한 부동산 가격과 가계대출이다.
금융연구원 최공필 선임연구위원은 “가계부채가 과도하게 증가해 자산시장을 자극하기 시작했으며, 투기적 요인이 가세한 부동산 기대수익률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렇게 자산가격 상승이 또 다른 가계부채의 증가요인으로 작용하는 악순환이 방치되면 추가적인 부채 증가는 경제의 거품화로 이어질 우려가 높다.


한국 기업의 아킬레스건은 정부 주도로 이뤄진 구조조정이다.
최 위원은 “기업 경쟁력이 향상되어 보이는 건 IMF 구제금융기에 정부가 구조조정을 강하게 추진하면서 기업들이 감량경영을 했던 덕분”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저금리, 유동성 확대 등 거시경제정책이 잘 먹혀들어가면서 국가 신용등급이 상향될 만큼의 성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사실 외국 신용평가기관의 신용등급 상향조정은 잔치의 시작이 아니라 끝을 알려준다.
신용등급 조정은 경제에 후행해 나타난다.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A급에서 B급으로 떨어진 것은 한보그룹과 삼미그룹이 부도나고 한국이 IMF 구제금융을 받은 지 한참 뒤인 97년말의 일이었다.
또 BBB-급에서 ‘-’부호를 뗀 것은 10%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99년 11월이었으며, ‘+’부호를 붙인 것은 8.8%의 경제성장률로 2년 연속 고도성장을 보인 2001년 11월이었다.
그동안 한국의 가치를 알아본 외국인투자가들은 17조원어치의 주식을 샀다.


굿모닝증권 홍춘욱 수석연구원은 “신용평가기관들의 국가경제 예측력이 훌륭하다면 한국이 IMF 구제금융을 받기 전에 신용등급을 내렸을 것”이면서 “신용등급 조정은 경제 변화에 후행하고 지수 조정은 신용등급 조정에 후행한다”고 지적한다.
MSCI 선진국 지수 편입도 마찬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 경제와 기업이 좋아졌기에 외국인투자가들이 주식을 사들였고, 그러기에 한국이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지수가 벤치마크해야 할 시장으로 꼽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 경제의 업그레이드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외환위기 전의 국가신용등급인 AA-를 받으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85년 국가신용등급이 B급으로 떨어졌던 이스라엘은 A급을 다시 받는 데 12년이 걸렸다.
최공필 위원은 심지어 ‘낙관대세론은 착각’이라고 잘라 말한다.
낙관대세론은 그만큼 위험하다는 속뜻이다.
그는 지금부터는 기업, 개인 등 경제 주체 스스로가 구조조정을 시작해야 하는 시기라고 지적한다.
그렇지 못하면 외국인투자가들한테 단기적으로 차익을 실현하기에나 좋은 투자대상으로 취급받을 뿐이다.
캘리포니아 연기금 등 장기투자로 유명한 외국 투자가들의 주머니엔 변동성 큰 신흥시장 주식이 아니라 안정적 수익을 주는 선진시장 주식이 들어 있다.


주식으로 치면 한국은 이제 세계시장에서 관리종목의 이미지를 겨우 벗고, 옐로칩 대열에 끼어든 셈이다.
주식시장에서 옐로칩은 고가인 블루칩에는 속하지 않지만 실적이 좋고 상승 기회가 많은 대기업의 중가권 주식, 업종 대표주를 가리킨다.
옐로칩의 주가는 경기가 좋아질 때에야 뜨고 경기가 나빠지면 가장 먼저 빠진다.
장기 투자를 받아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은 옐로칩이 아니라 블루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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