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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도서정가제 명분 벌써 잊었나?
[기자수첩] 도서정가제 명분 벌써 잊었나?
  • 이희욱 기자
  • 승인 2002.03.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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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 논쟁이 1999년부터 지금까지 2년 넘게 이어져오고 있다.
이 논쟁은 지난해 11월 국회 문광위 소속 의원 32명이 ‘발행 1년 이내 간행물에 대해서는 할인율을 10% 이내로 제한한다’는 내용을 담은 ‘출판 및 인쇄 진흥법안’을 국회에 상정함에 따라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그러나 해를 넘기고도 그 해법은 찾아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서점의 대표격인 교보문고가 인터넷 교보문고를 통해 책을 최고 50%까지 할인판매하는 이벤트를 실시하겠다고 지난 2월28일 발표했다.
3월1일부터 한달간 실시되는 교보문고의 이번 할인행사를 ‘고객감사 차원의 일회성 이벤트’로 가볍게 보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벤트를 개최하면서 내세우는 교보문고의 명분이 영 마뜩찮다.
“도서정가제가 지연되는 사이에 인터넷 서점들의 지나친 할인판매로 고객들이 상대적인 불이익을 보고 있기 때문에 고객불만을 해소하고 신학기 가계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이벤트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애당초 대형 서점들은 도서정가제를 주장하면서 “책은 문화상품이므로 가격경쟁에 의해 움직이는 시장경제 논리로부터 보호돼야 한다”는 논리를 일관되게 펼쳤다.
지난해 문광위 소속 의원들이 법안을 상정할 때도 대형서점들은 똑같은 주장을 내세워 이들을 지지했다.
그런데 이제 교보문고가 ‘고객의 손해’란 경제논리를 전면에 내세워 ‘책은 문화상품’이라는 지금까지의 주장을 슬쩍 허물어버리는 행동을 보인 것이다.
할인율을 적용하는 책의 종류를 보면 더욱 가관이다.
출판된 지 1년이 지난 책은커녕 <셜록홈즈 전집>이나 <반지의 제왕>처럼 신간과 베스트셀러 소설이 골고루 섞여 있다.
비록 행사기간이 한달에 불과하고 할인율을 단계적으로 적용하고 있다고 해도 스스로 명분을 깨뜨렸다는 점에선 변명의 여지가 없다.
‘도서정가제의 입법화가 지연되고 있기’ 때문에 인터넷 서점과 같은 논리를 내세워 최고 50%까지 할인행사를 하는 게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일까? 교보문고의 할인행사를, 대형서점들의 ‘물타기 수법’으로 확대해석하고 싶지는 않다.
도서정가제 논쟁에서 한쪽의 손을 들어주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도서정가제를 두고 다시금 논쟁이 벌어질 때도 교보문고는 ‘도서정가제를 지켜야 한다’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물론 ‘망각’을 자기방어의 무기로 삼을 수는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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