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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부시 에너지정책 ‘집중포화’
[포커스] 부시 에너지정책 ‘집중포화’
  • 최욱(와이즈인포넷)
  • 승인 2001.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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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환경단체 거센 반발… 정경유착 논란 겹쳐 의회 통과 불투명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5월17일 에너지 공급을 확대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새로운 에너지 정책을 발표했다.
딕 체니 부통령을 팀장으로 하는 ‘국가 에너지정책 개발그룹’이 지난 4개월 동안 만들어낸 이 새로운 에너지 정책은 미국 내 유전 개발과 발전소 건설 확대, 그리고 원자력 발전소 증설 등을 통한 에너지 공급 확대를 골자로 하고 있으며, 에너지 생산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새로운 에너지 정책의 구체적 내용은 우선 알래스카 야생동물 보호구역 내 8%를 유전과 천연가스 개발을 위해 개방하고, 앞으로 20년간 1300~1900개의 신규 발전소를 건설하며, 현재 미국 전력수요의 20% 가량을 담당하고 있는 원자력 발전의 비중을 높이고, 에너지 설비 현대화와 에너지 소비 절감을 위해 100억달러 규모의 세금우대 방안을 실시한다는 것이다.
원자력 확대·환경 규제 철폐가 핵심 알래스카 야생동물 보호구역 중 8%를 유전과 천연가스 개발을 위해 개방할 경우 앞으로 40년간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원유량은 하루 60만배럴에 이르러, 현재 이라크에서 수입하는 규모와 맞먹을 것으로 예상된다.
원자력 발전소 확대건설 계획은 지난 20년 가까이 동결돼왔던 핵연료 개발을 재추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앞으로 국제적 논란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새로 설립되는 신규발전소 가운데 90%는 천연가스를 동력원으로 삼을 전망이며, 이에 따라 외국에서 천연가스 수입과 관련된 규제도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그동안 에너지 시설 건설에 걸림돌이 돼왔던 각종 규제와 환경 관련 규제도 없애거나 완화한다는 것이 이번 정책의 핵심이다.
부시 대통령은 캘리포니아주 전력난 사태로 대변되는 현재의 미국 에너지 위기를 “지난 70년대 오일 쇼크 이후 최대 위기”라고 규정하고, 그 원인을 ‘에너지 수급 불균형’에서 찾고 있다.
즉 수요는 많은데 공급은 부족하고, 따라서 공급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에너지 생산시설을 확충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부시는 미국 내 에너지 생산 확대를 강조함으로써 에너지의 해외 의존도를 낮출 계획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지나친 에너지 해외 의존이 국가안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을 반영한 것으로, 부시는 이번 정책을 계기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입김도 약화시키겠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부시의 이번 에너지 정책은 환경을 도외시하고 일부 기업들에게만 유리하다는 점에서 즉각적으로 환경단체와 국제사회, 야당인 민주당 등에서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세계적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이날 “이번 보고서 내용은 석탄과 석유, 그리고 원자력 업계만 살찌우는 것”이라며 딕 체니 부통령 관저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다른 환경단체들은 “환경파괴 정책”이라고 혹평하면서 “석탄을 비롯한 화석연료 사용 증가로 지구온난화가 더욱더 가속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럽연합(EU) 각국 환경장관들 역시 “세계 환경보호를 무시한 처사”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EU 의장국인 스웨덴의 셀 라르손 환경장관은 “기후변화협약을 생각할 때 이번 정책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밝혔고, 네덜란드의 얀 프롱그 환경장관 역시 “이산화탄소 방출량을 줄여 온실효과를 막으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을 무시한 처사”라고 엄중 경고하고 나섰다.
덴마크와 캐나다 환경장관들도 비난성명을 발표했으며, 17개 국가와 지역 과학원들은 교토의정서에 대한 지지 입장을 재확인함으로써 부시의 이번 정책을 간접적으로 비난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역시 5월17일치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을 통해 “현재의 석유공급 구조로 볼 때 70년대 오일 쇼크와 같은 에너지 위기는 없다”며 부시의 주장이 근거없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원자력 발전소 문제에 대해서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5월17일치 사설에서 “원자력 발전소들의 크고 작은 사고들을 고려할 때 핵 에너지가 온실가스를 방출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대체에너지로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현재 최대 전력난을 겪고 있는 캘리포니아주도 부시의 이번 정책에 발끈하고 있다.
그레이 데이비스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이번 정책에서 캘리포니아에 대한 대책이 빠진 것에 대해 “수시로 단전사태를 겪으면서도 천문학 전기료를 부담하고 있는 캘리포니아를 무시하고 석유업계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대통령은 과연 누구 편이냐”며 부시를 강하게 비난했다.
캘리포니아주는 지난 5월9일 전력부족에 따른 단전조처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일부 기업들에게 전기요금을 52%나 인상하는 방안을 발표한 바 있으며, 데이비스 주지사는 5월10일 전력난 해결을 위해 134억달러 규모의 채권을 발행하는 법안을 승인하기도 했다.
민주당 역시 환경문제를 거론하는 동시에 에너지 기업들만 이익을 보게 하는 이번 정책은 정경유착의 대표적 산물이라며 정치적 공세도 취하고 있다.
민주당의 딕 게파트 하원 원내총무는 “이번 정책은 석유회사의 사업보고서와 같다”며 부시의 친기업 성향을 비꼬았고, 다른 민주당 상원의원들 역시 “이번 제안이 상원의 승인을 얻기는 힘들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의회통과 과정에서 수정 불가피 전망 사실 부시 행정부가 기업들, 특히 석유업계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부시 자신이 텍사스주 석유재벌 출신이며, 딕 체니 부통령은 세계 최대 석유시추 회사인 핼리버튼의 최고경영자 출신이다.
도널드 에번스 상무장관 역시 정유회사 출신이고, 앤드루 카드 비서실장도 부시의 이번 에너지 정책에서 환경 관련 규제완화로 이익을 보는 자동차 업계 출신이다.
정경유착도 이만하면 ‘드림팀’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정책으로 이익을 보는 기업들이 비단 에너지 업체들만은 아니다.
신규발전소와 수송관 등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는 엄청난 민간자본을 끌어들여야 하기 때문에 관련 업계의 투자가 활발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발전소 건립은 건설업체들에게도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며, 핵 발전소 관련 업체들도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일부 관련 업체들에게만 이익이 돌아가고 국민들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환경문제는 고려하지 않은 탓에 부시의 새 에너지 정책이 순조롭게 진행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단 공화당 안에서 다수 의원들이 이번 보고서 내용을 지지하고 있긴 하지만, 일부가 환경 관련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 당 내부의 의견조율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부시 대통령 또한 “충분한 논의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함으로써 정책변화의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게다가 이번 보고서는 어디까지나 미국 정부가 에너지 위기상황을 검토한 것을 발표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실제 정책이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논의가 불가피하다.
또 앞서 언급한 캘리포니아 단전사태와 전기요금 급등과 같은 현안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들 당면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다시 제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번 정책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지지가 저조한 상황임을 감안한다면 새로운 에너지 정책이 의회를 통과한다고 하더라도 시행에서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새로운 에너지 정책은 정책화를 위한 논의와 의회통과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부분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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