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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 다시 불지핀 ‘경제 기관차’
[세계경제] 다시 불지핀 ‘경제 기관차’
  • 박종생/ <한겨레> 국제부
  • 승인 2002.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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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업 생산활동 지표 큰폭 호전… “재고감소 영향”“경기회복 신호” 분석 엇갈려 세계경제의 기관차인 미국 경제가 회복 조짐을 보이면서 지난해 동시불황에 빠졌던 세계경제가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났다는 낙관론이 차츰 고개를 들고있다.
최근 미국의 2월 경제지표가 경기회복에 긍정적 신호를 나타내면서 시작된 낙관론은 유럽과 신흥 경제국가들로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다 10년간의 장기불황에 빠진 일본 경제도 최근 일본 정부의 증시 부양책과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의 통화공급 확대를 계기로 최악의 상황은 끝났을지 모른다는 해석이 대두되고 있다.
물론 경기회복에 부정적인 경제지표들도 여전히 나오고 있어 샴페인을 터뜨릴 때는 아니라는 점도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긍정과 부정의 경제지표가 혼재된 시기가 흔히 경기순환의 ‘터닝포인트’였다는 과거의 사례를 감안할 때,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가 아니냐는 해석은 충분히 가능하다.
미국 경제에 대한 낙관론은 2월말 발표된 2월 공급관리자협회의 제조업지수가 1월의 49.9에서 54.7로 급상승한 것이 기폭제가 됐다.
미국 제조업 동향의 주요 지표로 간주되는 이 지수가 경기 팽창을 의미하는 50 이상을 기록한 것은 19개월 만에 처음이다.
경기순환의 터닝포인트? 이 지수의 호전이 요즘 미국 경제에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지난해 경기침체가 90년대 후반기 기업들의 과잉투자와 이에 따른 거품 붕괴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미국 기업들의 생산활동 호조가 경기회복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신호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 경제활동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소비는 지난해 경기침체 기간에도 줄어들지 않았고, 현재 상태에서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경기회복의 중요 신호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불과 몇주 전에 올해 미국 경제가 2.75%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던 도이체방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피터 후퍼는 4% 성장으로 수정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그린스펀 의장은 올해 미국 경제 성장이 2.5~3%의 ‘강도가 약한 반등’(Subdued rebound)일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월스트리트저널>은 월가 전문가들의 말을 빌어 “미국 경제의 회복이 예상과 달리 ‘강력할’(Strong)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공급관리자협회가 3월6일에 발표한 2월 비제조업지수도 58.7을 기록해 전월의 49.6보다 크게 높아졌다.
이는 전문가들의 예상인 51을 크게 상회하며 지난 2000년 11월 이후 15개월 만의 최고 수준이다.
반면 부정적인 지표도 나오고 있다.
컨퍼런스보드와 함께 미국 소비동향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미시간대학의 소비자심리지수는 1월 93.0에서 2월에 90.7로 떨어졌다.
또 향후 12개월간의 소비자 태도를 나타내는 소비자기대지수는 1월 91.3에서 2월에는 87.2로 감소했다.
앞서 미국 상무부가 소비지출이 1월에 0.4% 증가하고 가처분소득이 1.6% 증가했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감세 영향이 컸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미국 소비자들은 사상 최고 수준의 부채를 안고 있어 소비의 지속 여부는 현재로선 단정할 수가 없다.
기업들의 생산활동 호전 기미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진 재고 감소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 측면이 있고, 기업들의 수익 전망도 결코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기업들의 경기회복에 대한 대표적 비관론자인 모건스탠리증권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스티븐 로우치는 “더블 딥(이중 침체)은 하나의 경제법칙이나 마찬가지”라며 발생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기존 입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미국 <비즈니스위크>는 경기지표가 좋게 나오고 있지만 수요증가가 크지 않고 실업이 증가할 전망인 만큼 성장이 강력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도 미국 경제가 회복은 하겠지만 완만한 성장일 가능성이 높다며 샴페인을 얼음에 더 넣어두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유럽에서는 영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경기 낙관론이 솔솔 나오고 있다.
유럽 최대의 경제대국인 독일은 지난해 3분기와 4분기에 각각 -0.2%, -0.3% 성장해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이는 독일이 공식적인 경기침체에 빠졌음을 의미한다.
영국도 10년 만에 처음으로 지난해 4분기에 제로 성장을 기록했다.
그렇지만 독일의 대부분 경제전문가들은 독일 경제가 올해 2분기부터 플러스 성장을 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도 2월 보고서에서 “경기회복의 중요한 조건들이 충족되고 있다”며 올해 독일 경제가 안정을 되찾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의 구매·공급협회가 최근 발표한 2월 구매관리자지수는 전달의 46.5에서 50.1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 영국의 제조업도 회복될 조짐이다.
이 지수가 50을 넘어선 것은 1년 만에 처음이다.
유럽 전체적으로도 제조업 생산활동이 회복될 기미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유로존 소속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로이터-NTC연구소의 구매관리자지수가 1월의 46.3에서 2월에는 48.6으로 증가했다며 “제조업 회복이 경기침체가 끝났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낳게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프랑스의 2월 소비자심리지수는 전달의 -12에서 -15로 떨어졌다.
세계 제2위 경제대국인 일본은 경제를 침체에 빠뜨린 디플레이션을 타개하기 위해 2월말 통화공급 확대와 부실채권 처리, 증시부양을 핵심으로 한 디플레이션 종합대책안을 발표했다.
그렇지만 일본 닛케이 평균주가가 이 대책 발표를 계기로 폭등을 했지만 이 조처가 일본 경제의 회생을 담보할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무엇보다도 일본의 기득권 세력들이 개혁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마저 인기가 하락해 개혁을 강력히 추진하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만 일본은행이 통화량 조절의 가장 중요한 수단인 본원통화를 25% 이상 확대하고 있어 기업과 가계가 지금보다 활발하게 투자와 소비를 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본원통화 증가율은 1974년 이후 최고치다.
또 1월 기업 재고가 90년 10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줄어든 상태여서 기업들이 재고투자를 늘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조처도 일본 경제의 구조개혁이 없는 상태에서는 99년(0.9%)과 2000년(2.4%)처럼 반짝 성장에 그칠 공산이 높다.
신흥경제국들, 미국 경제에 달렸다 미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신흥경제국가들은 미국 경제의 회복 조짐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홍콩, 말레이시아, 대만, 멕시코, 아르헨티나, 터키 등의 국가들은 지난해 모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특히 아시아의 대표적인 호랑이인 싱가포르는 지난해 -2% 성장해 65년 이후 최악을 기록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그러나 이들 국가들 대부분이 미국에 대한 정보기술 수출 의존도가 큰 만큼 미국의 성장 여부에 따라 플러스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세계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 세계 반도체 판매는 지난해 12월에 견줘 1.7% 감소했다.
이중에서 미국, 유럽, 일본 등이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한 반면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만 0.4% 증가했다.
아시아는 세계 전자제품 생산량이 가장 많은 곳이라는 점이 작용했다.
미국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미국 경기회복, 재고 감소와 수출감소율 둔화 등을 근거로 “이미 지난 12월 중순에 아시아 경기가 바닥을 쳤다”고 밝혔다.
1월 수출 주문과 산업생산이 11개월만에 처음으로 증가세를 보인 대만의 경우 올해 2.3%의 완만한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물론 이들 신흥 국가들도 자체 성장 동력이 약하고 외부 외존도가 높아 큰 폭의 성장은 기대하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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