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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1. 중국 부동산 열풍
관련기사1. 중국 부동산 열풍
  • 베이징=황훈영 <한겨레21>
  • 승인 2002.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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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은 춘지에(설)를 제외하고는 1년 내내 공사중이다.
밤새도록 불을 밝혀놓고 레미콘을 돌리는 소리에 건축현장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주말이 되면 신축 모델하우스는 길게 늘어선 줄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베이징에서 최다 판매부수를 자랑하는 <베이징만보>는 금요일마다 수십장의 섹션신문을 발행한다.
섹션은 대개 신축 아파트 분양 소식과 뜨거운 주택구매열을 보도하는 기사로 장식돼 있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베이징은 온통 회색빛 도시 그 자체였다.
우중충하고 칙칙한 낡은 아파트들이 도시 한복판에 부조화를 이루며 서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아파트 굴뚝에서 뿜어나오는 연기는 모래바람과 엉키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기관지를 오염시켰다.
그런데 불과 몇년 사이에 도시의 건물들은 깨끗하게 새 단장을 하고 있다.
20, 30층의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도로를 새로 닦고, 도로 주변엔 파릇파릇한 잔디가 깔리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국인들은 ‘내집 마련’과 ‘부동산 투자’에 대한 욕망으로 꿈틀거리고 있다.
부동산 열풍은 통계치로도 금방 나타난다.
1978년 중국의 신축주택 면적은 3800만㎡에 불과했다.
그런데 2000년에는 5억1천만㎡로 자그마치 13배나 늘어났다.
도시의 1인당 주택면적은 7㎡에서 20여㎡로 넓어졌다.
주택소비는 이미 자동차, 통신, 관광소비를 제치고 주민들의 최대 소비항목으로 떠오른 상황이다.
주택, 그 가운데도 아파트나 신축 빌라를 구입하는 사람들은 아직까지는 중국에선 상류층이라고 할 수 있다.
평범한 월급쟁이라면 아무리 정부나 기업에서 대출을 해줘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가격이 아니다.
주택 구입자들은 최근 개혁개방으로 국가 기관에서 나와 사업을 하다가 성공한 사람이나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최근 <신화통신>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민간에서 분양한 상품주택의 평균 가격은 선전이 평방미터당 5275위안(약 83만4천원)으로 가장 높고, 베이징이 4633위안, 광저우가 4천위안으로 나타났다.
상하이도 지난해 11월 이미 평방미터당 3584위엔을 넘어섰다.
전국 35개 중대도시 가운데 샤먼, 항저우, 난징, 선양, 다롄, 텐진 등지의 상품 주택 가격은 평방미터당 2천위안에서 3천위안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베이징의 경우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2008년 올림픽 개최 등 호재에 힘입어 평방미터당 1만6천위안을 호가하는 고급 아파트까지 선보이고 있다.
교통이 편리하거나 상업지역이라면 평균 7천에서 8천위안을 넘어선다.
아무리 변두리 지역이라 하더라도 주택시가가 평균 4600위안을 넘어선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 베이징 서민들에겐 자신의 수입으로 아파트를 마련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2000년 베이징 시민의 1인당 연간 소득이 1만350위안(약 164만원)이므로 3인 가족의 연간 수입을 모두 쏟아부어도 80㎡짜리(약 24평형) 소형 아파트를 사려면 대략 11년이 걸린다는 얘기다.
중국의 부동산 열풍은 상류층을 중심으로 불고 있다고 봐야 한다.
베이징의 부동산 열풍은 표면적으로는 2008년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국제 도시’로 탈바꿈하겠다는 베이징시의 야심찬 계획과 맞물려 있다.
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건축열’을 부추겨 중국 부자들의 호주머니 속에 있는 돈을 끌어내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
내수시장을 확대해 경기에 불을 지피겠다는 것이다.
실제 전국정치협상회의 위원이자 베이징대학 경제학과 교수인 샤오주어지(蕭灼基)는 지난 3월8일 전국인민대표자대회에서 “국민 개개인의 소비를 늘리기 위해 국민들에게 주택 구입과 차량 구매를 더욱 장려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부동산과 자동차 산업의 활성화가 관련 산업을 확대시키며 다른 산업부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게 그의 논리였다.
샤오 교수에 따르면 중국은 79년부터 2000년까지 국내 평균 소비율이 65%에 머물렀다.
그런데 지금은 59%에 지나지 않는다.
이같은 수치는 세계 평균 수준에도 못미칠 뿐 아니라, 지난 20년 동안의 국내 평균 소비율보다도 낮은 수준이라는 게 샤오 교수의 지적이다.
중국 정부가 국민들의 소비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은 가히 필사적이라고 할 정도다.
정부는 10월1일 국경절, 5월1일 노동절, 정월 초하루 설날에 법정 공휴일을 넘어서 일주일을 공식적인 휴일로 정하고 있다.
이 장기간의 휴가가 지나고 나면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들은 일제히 휴가기간중의 소비량을 앞다투어 보도한다.
또한 낮은 소비율에 불을 댕기기 위한 조처로 국민들에게 공적 기금을 풀어 ‘대출’을 해주고 있다.
20, 30년 장기 저리로 주택구매용 대출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 약 6천억위안의 신용대출이 이뤄졌는데, 이 가운데 약 4천억위안이 주택구매용 대출이었다.
규모가 큰 기업들도 정책적으로 내집 마련을 지원하고 있다.
97년부터 주택마련 공적기금를 만들어 직원들이 주택을 구매하는 데 보조하고 있다.
일반 직장인들에게 이 공적기금은 내집 마련을 위한 동아줄이다.
공적기금은 회사와 본인이 반반씩 부담해 적립하는데, 대개 직원 기본급의 10%를 매달 적립한다.
이 공적기금에서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할 경우 대출이자는 일반 은행보다 훨씬 싼 3%대에 지나지 않는다.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내집 마련 열풍이 부는 것은 이런 정책들 때문이다.
정부와 기업이 이처럼 정책적으로 부동산 구입을 지원하면서 대출을 이용한 주택구입 열기는 멈출 줄 모르고 있다.
덕분에 주택시장이 국내총생산(GDP) 증가에 상당한 공헌을 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GDP 증가율은 8.1%였다.
이 가운데 주택시장 기여율은 자그마치 1.1%에 이른다.
중국 경제에서 주택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만큼 큰지 단박에 알 수 있다.
이제 중국인들의 ‘내집 마련’에 대한 욕심은 우리나라 국민들을 능가한다.
80년대 중국에선 ‘컬러텔레비전’이 생활수준을 재는 척도였다.
이제 2000년대는 ‘집’이 그 잣대가 되고 있다.
여성들이 결혼 상대를 구할 때 제일 먼저 묻는 말도 “집과 차가 있느냐”는 것으로 바뀌었다.
집과 차는 훌륭한 배우자 선택의 필수조건이 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최근 들어선 비싼 신축 상품주택 대신 중고 주택 시장을 기웃거리는 사람도 늘고 있다.
물론 부동산 구입이 단지 ‘내집 마련’ 차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부동산 투자 열기가 과열되면서 점점 ‘투기화’하는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대출을 받기 쉽다는 것은, 게다가 금리까지 낮다는 것은 종잣돈이 풍부한 거부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재테크 기회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외국계 생명보험 회사에 다니고 있는 리아무개는 베이징 시내에만 10채가 넘는 집을 갖고 있다.
그가 살고 있는 집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장기 신용대출을 받아 구입한 것이다.
그는 이 주택을 모두 외국인이나 외지인들에게 세를 놓았다.
세입자들에게 받는 월세만으로도 몇년 안에 대출금을 다 상환할 수 있다는 게 그의 계산법이다.
상환만 하면 엄청난 투기성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 대출은 저소득층의 ‘내집 마련’에 목표를 두고 있다기보다는 내수 확대에 초점을 두고 있다.
때문에 다른 자본주의 국가에서처럼 부유층들의 부동산 투기에 대한 비난도 전혀 없다.
‘내수 확대’라는 기치아래 불붙고 있는 ‘주택건설 열기’는 당분간 중국 경제발전의 기동대가 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지나친 투기열풍은 그러한 성장 과정에서 빈익빈 부익부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아울러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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