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6:34 (금)
[초점] 컨테이너 기다림은 끝났다
[초점] 컨테이너 기다림은 끝났다
  • 백우진 기자
  • 승인 2002.03.2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타이어가 펑크났을 때 꼭 그 구멍으로 바람을 불어넣으란 법은 없다.
” 정보기술(IT)부문 거품 붕괴로 인한 경제침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해 그동안 나왔던 말이다.
과잉투자의 늪에 빠진 IT부문을 끌어올리려 애면글면하기보다는 소비와 건설 등 내수 위주로 경기를 부양하는 편이 효율적이라는 설명이었다.


지난해 한국 경제는 이같은 처방을 성공적으로 운용했다.
IT부문 과잉투자로 반도체와 컴퓨터 등의 수출은 급감했지만, 저금리와 건설경기 부양으로 내수를 받쳐 다른 나라에 비해 경제상황이 상대적으로 나았다.
이가 없으니 잇몸으로 잘 버틴 격이다.
해외에서는 “내수진작 정책은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의 밑바탕이 있었기에 주효했다”며 일본과 견주어가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4분기에 3.7%를 기록했고, 연간으로는 3.0%로 집계됐다.
2000년 성장률 9.3%에 비해서는 뚝 떨어졌지만 미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 다른 주요 국가들보다 돋보이는 성적표였다.
미국 경제는 97년 이후 4%대 팽창세를 보였으나 지난해에는 1.2%로 성장이 둔화됐고, 일본 경제는 0.5% 위축됐다.


그러나 수출은 부진을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해 수출은 금액 기준으로 2000년보다 12.7% 감소했고, 올해 들어서도 1~2월 중 13.2% 줄었다.
GDP에 집계되는 물량 기준으로는 1.0%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수출의 GDP 성장기여율이 57.8%에서 22.8%로 대폭 낮아졌다.
반면 내수의 성장기여율은 42.2%에서 77.2%로 큰 폭 높아졌다.


이처럼 ‘천덕꾸러기’로 눈총을 받아온 수출이 3월부터 살아나고 있다.
3월 들어 20일까지 통관기준 수출은 76억8천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 증가했다.
1일부터 20일까지의 수출이 전년 같은달에 비해 증가세를 보이기는 지난해 4월 이후 처음이다.
올 들어 3월30일까지 수출은 302억달러를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교한 감소율이 10.0%로 완화됐다.
이에 따라 지난해 3월 이후 줄곧 내리막을 걸어온 수출이 증가추세로 반전하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산업자원부 박봉규 무역정책심의관은 “현 추세를 감안할 때 4월 이후에는 분명히 수출이 증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 심의관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기 회복이 가시화하면서 하반기부터는 수출 증가세가 본격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산업별로는 지난해 거의 반감했던 반도체 수출이 올해 뚜렷한 증가세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자동차 수출도 10%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반면 철강은 미국이 관세장벽을 둘러친 탓에 지난해 규모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산업협회는 올해 수출이 지난해 143억달러에서 170억달러로 18.9%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도체산업협회 김성호 조사홍보팀 과장은 “최근 반도체 값 강세는 공급량 조절에 힘입었지만, 3분기부터는 수요가 뒷받침된 가격상승과 시장확대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자동차업계는 지난해 정체상태를 보였던 수출이 올해 136억달러로 10.8% 증가하리라고 보고 있다.
수출 대수는 150만여대에서 163만대로 8.6% 늘어난다는 전망이다.
자동차산업협회 김준규 정보CALS팀 차장은 “현대 등 브랜드 이미지가 개선되고 중소형차의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차장은 세계경기 반등과 유럽시장을 겨냥한 신차 개발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들었다.
경기가 3분기에 저점을 통과한 가운데 수출도 증가세에 합류할 경우 우리 경제는 기존 예상보다 큰 폭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사실상 상향조정했다.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최근 “상반기 3% 이상, 하반기에는 5% 넘게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경제운용 계획을 내놓을 때엔 상반기 3%, 하반기 5%대 성장을 예상했었다.
일각에서는 6% 이상 성장을 장담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성장률 수치보다 더 주목해야 할 대목은 경제운용의 틀이 바뀐다는 점이다.
경기 호조세가 확산되면서 기업수익이 증가하고 가동률도 높아진다.
노동시장에도 ‘봄바람’이 불어 청년실업이 해소되기 시작한다.
경기회복을 미리 반영하며 한때 종합지수 900을 넘은 증시는 수출주를 앞세워 1000 고지를 공략할 것이다.
환율은 완만한 하향곡선을 그릴 것으로 보인다.
반면 물가상승 압력에 대응한 통화당국의 선제적 금리인상이 예상된다.
그동안 유지해온 저금리 기조가 수정된다는 얘기다.
즉 경기에 대한 정책적인 대응이 ‘부양’에서 ‘조절’로 선회하게 된다.
따라서 정책당국이 경기가 살아나는 속도를 어떻게, 어느 정도의 강도로 관리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변수로 등장했다.
정책당국이 강수를 둘 경우 경기 곡선이 다시 우하향할 가능성이 지적되고 있다.
최근 경기상승이 부채를 늘린 소비증가에 주로 의존했다는 취약성을 안고 있다는 설명이다.
삼성경제연구소 홍순영 경제동향실장은 “경기가 반환점을 돈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내수에 이어 수출과 투자가 얼마나 성장을 견인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홍 실장은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부동산 등 자산시장에 거품이 형성된 상태에서 금리가 상승하면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수출 및 투자 증가가 소비 감소에 의해 상쇄될 수 있다는 것이다.
LG투자증권 이덕청 금융시장팀장은 “해외 불안요인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어 수출이 애초 전망보다 활발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이 팀장도 금리 인상을 ‘복병’으로 꼽았다.
그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공공요금을 중심으로 고조되고 있어 통화당국이 선제적 금리인상을 고려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요컨대 수출 회복에 따른 경기 상승곡선의 기울기는 정책당국이 브레이크를 언제 얼마나 강하게 밟느냐에 달려 있다.
경제가 재진입한 성장가도를 안전주행할지, 아니면 성장엔진이 과열될지와 관련해 정책대응을 주시해야 하는 까닭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