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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메모] 사치품와 명품의 경계선
[편집장메모] 사치품와 명품의 경계선
  • 편집장 이주명
  • 승인 2002.04.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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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자와 공급자, 소비자와 기업의 관계는 마치 닭과 달걀의 경우와 같다고들 합니다.
어느 쪽이 먼저이고, 어느 쪽이 나중이라고 단정해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기업이 이미 있는 소비수요를 쫓아가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존재하지 않던 제품을 개발해 시장에 던지면서 그 제품을 찾는 소비자집단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지난 수십년간에 걸쳐 대중소비 사회가 자리잡으면서, 공급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소비자의 모습이 점점 더 강조돼 왔습니다.
그러나 시장에는 기업들의 의도대로 춤추기를 거부하는 소비자들이 여전히 폭넓게 존재하고, 그들은 여전히 구매 선택권 행사를 통해 기업쪽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온갖 매체를 통해 쏟아지는 광고에 일방적으로 세뇌당하지 않고 현명한 선택을 할 줄 아는 소비자들의 존재는 시장경제를 건강하게 유지해줍니다.
이번호 커버스토리인 명품에 관한 기사도 이런 관점에서 준비했습니다.
국경이 갈수록 흐릿해지는 글로벌 경제 시대에 해외 명품을 선호하는 국내 소비자들의 태도를 무조건 ‘비애국적’이라고 비난할 일은 아닙니다.
능력과 노력에 따른 소득의 편차를 인정하는 체제인 우리 사회에서 국산이든 외국산이든 고가 명품만 골라 사는 일부 부자 또는 고소득자들의 소비행태를 ‘사회적 위화감 조성’을 이유로 비난만 할 수도 없습니다.
어차피 상품 자체의 실용성 외에 그 브랜드의 상징성까지 소비의 목적이 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벌이가 시원찮은 사람일지라도 한번쯤은 그동안 절약해 모은 돈을 털어 좀 비싼 명품 의류를 호기있게 사 입고 한번 으스대보는 것도 전적으로 무익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분수에 넘치지만 않는다면, 명품 소비경험은 소비자로서의 안목을 길러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품질이 입증되지 않은 외국산 ‘사치품’을 수입해다가 폭리 수준의 마진을 얹어 버젓이 ‘명품’이라고 시장에 내놓고 소비자를 속이는 상행위는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제품 자체의 품격은 보지 않고 브랜드만을 맹목적으로 좇는 무분별한 명품 소비는 시장과 사회를 부실하게 만들기 십상입니다.
명품 시장에서도 소비자들의 분별력이 발휘됨으로써 외화내빈의 어설픈 명품 마케팅이 기를 펴지 못하게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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