넝쿨이 쩍쩍 감겨드는 대리석 기둥도 없고, 고색창연한 청동상도 없다.
대신 빼곡히 들어앉은 컴퓨터가 연신 삐빅거리며 신경을 자극한다.
사람들은 대여섯명씩 무리를 지어 바쁘게 일손을 놀린다.
차라리 ‘그림 공장’이란 표현이 어울릴 법하다.
150여명의 애니메이터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그림 이상의 것'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소리 없는 열기가 뜨겁다.
작품별로 대여섯명이 한팀을 이뤄 영상 에너지를 뽑아내는 중이다.
감독·작가·원화제작자·음향전문가 등 전문가들의 솜씨가 합쳐져 새롭게 열리는 인터넷 애니메이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무기를 벼른다.
“디지털 애니메이션 전문가들이 다 모였어요. 시나리오를 쓰고, 콘티를 짜고, 원화를 그리고, 디지털 화면을 손질하고 프레임을 제작하고, 그렇게 해서 하나의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죠. 날마다 수백 프레임이 생산되니까 ‘맨 파워’만은 남부럽지 않아요.” 클럽와우의 홍보팀장 안경신(30)씨가 서울 양재동 옥토빌딩 7층의 널찍한 작업실을 안내하며 “이 모든 것이 `플래시' 기술을 토대로 이뤄진다”고 자랑했다 신감각 ‘초중딩’ 마니아들도 급증 인터넷 이곳저곳에서 `플래시'가 펑펑 터지고 있다.
초기화면에서 글자들이 휘리릭 날아다니고, 빵빵한 스테레오 음향이 고막을 때린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애니메이션은 순간순간 황홀경으로 안내한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예고편이나 화려한 뮤직비디오, 어쩔 땐 격조높은 단편 애니메이션을 감상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폭스 www.fox.com, 코카콜라 www.cocacola.com, 소니 www.sony.com 등 신세대를 소비자로 겨냥한 사이트치고 플래시를 쓰지 않은 곳은 찾기 힘들다.
플래시 열기의 주역으로 ‘초중딩’까지 참여하고 있다.
“플래시를 모르면 `파워 유저'로 인정받지 못하죠.” 인터넷 플래시 작품공모전에서 가작을 수상한 김진화(15·석천중3)군은 “인터넷을 돌아다니다보면 굉장한 실력을 갖춘 학생들이 많다”며 “서로 부러워하면서 기법을 교류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명준(14·익산동중2)군도 “멋진 플래시 작품을 보다보면 한편의 텔레비전 광고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면서 “누구나 노력하면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매력이 크다”고 말했다.
이들 초중딩은 플래시 전문 사이트마다 찾아들어 자기만의 개성을 살린 작품을 올려 전문 디자이너들한테서 귀여움을 독차지하기도 한다.
플래시 전문 웹디자인업체 `플래시옹골' www.ongol.com 의 박동진(25) 대표는 “뮤직비디오나 애니메이션, 텔레비전광고 등 영상문화에 익숙한 신세대일수록 놀랄만한 신감각의 작품을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정규교육을 받은 디자이너 못잖게 아마추어 플래시 디자이너들이 인터넷에서 활약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플래시 마니아들은 인터넷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수많은 동호회가 왕성하게 가지를 뻗쳐간다.
웹디자이너들에게 잘 알려진 디자인 웹진 ‘정글’ www.jungle.co.kr에서도 플래시는 단연 화제의 단어다.
플래시 작품공모전에도 많은 이의 발길이 이어진다.
전문 디자이너든 아마추어든 누구나 제각기 만든 독특한 플래시 작품들이 수시로 올라와 일반의 평가를 받는다.
최근에는 플래시 작품만을 전문으로 찾아주는 검색 사이트까지 생겨났다.
`베스트플래시' www.bestflash.com는 플래시 소스 검색 서비스를, `플래싱' www.flashing.co.kr은 플래시 사이트 50선을 제공한다.
최근엔 플래시를 이용해 움직이는 그림을 담은 전자카드(플래시 카드)도 신세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쇼크웨이브닷컴이 변화의 진원지 플래시가 도대체 뭐길래…. 플래시란 선명한 동영상과 스테레오 음향을 동시에 구현하는 인터넷의 새로운 멀티미디어 도구다.
기존 ‘비트맵 그래픽’ 방식이 아닌 ‘벡터 그래픽’이란 첨단 방식을 채택해 16분의 1 이상 데이터 용량을 줄일 수 있다.
인터넷이 그동안 하이퍼텍스트 파일(HTML)의 전성시대였다고 한다면, 플래시는 HTML의 절대권력을 흔드는 도구로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HTML이 멀티미디어 제작엔 한계를 지닌 반면, 플래시는 애니메이션, 게임, 뮤직비디오 등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데이터 용량의 큰 부담 없이도 고화질과 고음질로 펼쳐보이는 신통한 능력을 지녔다.
클럽와우의 인기작품 ‘플래스틱 플라워’의 감독 박종오(26)씨는 “플래시가 인터넷을 소리와 동영상이 살아있는 멀티미디어 매체로 급속히 바꾸고 있다”고 말한다.
플래시 소프트웨어는 미국의 매크로미디어가 개발해 지난해 봄 성능을 대폭 개선한 4.0판을 낸 이후,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플래시가 이런 속도로 퍼지리라는 것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매크로미디어의 플래시 개발자와 정보를 주고받아온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플래시 전문업체 ‘로미오 디자인’의 로미오 신(30) 사장은 “98년 3.0판을 냈을 때만 해도 플래시는 1000개 가까운 웹브라우저의 플러그인 소프트웨어 가운데 하나인 ‘괜찮은 제품’쯤으로 알려졌을 뿐이었다”고 회고한다.
심지어 매크로미디어조차 이런 열풍을 예상하지 못했다.
당시 매크로미디어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놓고도 제품 기능을 설명하는 매뉴얼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웹디자이너들이 스스로 공부하면서 사용법을 깨쳐야 했을 정도였다.
플래시는 4.0판을 내면서, 그리고 웹브라우저들이 플래시 기능을 기본으로 내장하고 초고속통신 환경이 넓어지면서부터 급속도로 확산됐다.
로미오 신 사장은 “플래시가 순식간에 확산돼, 지금은 90%의 PC에 지원 기능이 내장됐다는 통계도 있다”고 말했다.
플래시의 본산은 ‘쇼크웨이브닷컴’ www.shockwave.com이다.
플래시를 개발한 매크로미디어가 직접 운영하는 만큼 사실상 공인된 플래시 표준 사이트인 셈이다.
이곳에선 플래시로 만들 수 있는 실험적 기법의 애니메이션과 카툰, 게임, 뮤직비디오가 선보이고 있다.
조만간 확산될지도 모를 인터넷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미래모습을 예감할 수 있다.
요즘엔 플래시를 처음 개발한 미국보다 독일과 영국 등 유럽에서 플래시 열풍이 더욱 거세다.
전통적으로 오프라인 디자인산업이 발달해온 유럽에서 플래시의 매력을 알아채고 웹디자인산업의 무기로 삼아 공세를 취하는 형국이다.
`아이포유' www.eye4u.com나 `엔아르지' www.nrg.be 사이트는 세계 웹디자이너들의 플래시 디자인 교본 구실을 하고 있다.
일본도 오프라인에서 발달한 애니메이션과 만화산업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에서 상당한 수준의 플래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몇몇 웹디자이너는 플래시 스타로서 빛을 발한다.
웹디자이너들 사이에선 일본의 나가후지 www.nagafuji.com나 미국의 힐만 커티스 www.hillmancurtis.com 같은 인기작가들이 예술작가 수준의 추앙을 받을 정도다.
“한국 플래시 화이팅!” 한국의 플래시 수준도 만만찮은 기세다.
플래시를 활용한 인터넷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본격화한 클럽와우 직원들은 최근 자신의 플래시 기술이 미국에서 인정받자 한껏 고무돼 있다.
지난달 클럽와우의 애니메이션 작품 ‘플래스틱 플라워’를 본 매크로미디어 소속 애니메이터가 “어떻게 플래시로 이런 작품이 나왔느냐” “연출력이 놀랍다”며 대단한 호평을 전해온 것이다.
박종오 감독은 “현재 매크로미디어와 작품 계약이 진행중”이라고 귀띔했다.
클럽와우는 앞으로 플래시를 응용해 뮤직비디오, 드라마, 시·소설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영상문화에 익숙한 젊은 인터넷 세대의 등장도 한국 플래시의 크나큰 자산이다.
로미오 신 사장은 “한국 초중고 학생들의 작품을 보면 상당한 잠재력을 느낄 수 있다”고 평가했다.
국내에서는 요즘 플래시 전문 사이트나, 자신의 플래시 기술을 한껏 뽐내는 개인 홈페이지가 한창 늘어나고 있다.
`플래셔' www.flasher.co.kr 등 최근 개설되는 전문 사이트들마다 작품공모전 등 플래시 이벤트를 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아마추어와 전문가들이 참여할 공간과 기회가 넓어졌다.
인터넷방송과 언론 사이트엔 플래시를 응용한 만평 작품도 많아졌다.
플래시 카드는 인터넷 세대들만의 새로운 문화가 되고 있다.
플래시옹골의 박동진 대표는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인터넷에 플래시를 응용한 게임, 애니메이션 등 멀티미디어 사이트는 물론이고, 온라인 기업설명회와 기업 광고 등 다양한 분야가 활성활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한다.
클럽와우의 박종오 감독은 “이젠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기술보다, 플래시에 적합한 작품을 만들 창의력 있는 아이디어와 구상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역시 콘텐츠 싸움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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