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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지역경제 현장을 가다 (12)-부산
[기획] 지역경제 현장을 가다 (12)-부산
  • 부산 = 최우성 기자
  • 승인 2002.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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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봄, 국내 제2의 도시 부산은 무척 분주한 모습이다.
도시 곳곳에는 월드컵 행사와 부산 아시안게임 막바지 준비가 한창이고, 21세기 동북아시아의 중심항만(Hub Port)으로 발돋움하겠다는 가덕도 신항만 공사현장에는 공사차량이 먼지를 가르며 꼬리를 문다.
녹산공단, 신호공단, 신평공단 등 지역 내 여러 산업단지는 높은 조업률을 기록하며 활기를 띠고 있다.


각종 경제지표도 부산경제의 현재를 오랜만에 밝게 드러내주는 듯 보인다.
지난 2월 기준으로 부산지역 산업생산은 전년 동월 대비 18.6%의 증가율을 기록해, 전국 평균치(10.2%)를 훨씬 넘어섰다.
특히 중소기업 조업률은 평균 80%를 유지하면서 지난 98년 2월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 틈에 전국 최고 수준을 맴돌던 실업률 역시 몇단계 떨어졌다.
한국은행 부산본부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서도 올해 1분기 중 부산지역 기업경기는 생산, 매출 및 설비투자 등에서 크게 호전되고 있음이 잘 드러나고 있다.


지금까지 부산 지역경제는 국내 제2의 도시라는 이름값에 걸맞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2001년 11월 현재 부산지역의 산업구조(취업자 기준)는 1차 2.0%, 2차 22.5%, 3차 75.5%의 비율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3차 산업비중이 높은데도 지역내 총생산(GRDP) 규모는 2000년 기준으로 약 30조원에 머물러 전국 대비 6.0%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1인당 지역내 총생산이라는 잣대를 사용할 경우, 그 규모는 796만원으로 전국 평균 1065만원을 크게 밑돈다.


게다가 제조업 총생산은 전국 대비 3.3%로 지역내 총생산의 비중에도 미치지 못한다.
제조업체 수가 전국 대비 9.1%에 이르는 것을 감안한다면 부산지역 업체들의 생산규모가 얼마나 작은지 여실히 드러난다.
부산시청 경제정책과 김기영 경제기획담당관은 “이같은 초라한 수치는 부산지역 제조업체의 99.6%가 중소기업이라는 현실과 잘 맞닿아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현지에서 꼽을 수 있는 대기업이라고 해봤자 르노삼성자동차, 삼성전기, 한진중공업, 연합철강 정도뿐이다.


80년대 부산경제의 꽃이었던 신발산업의 몰락은 부산지역 경제 침체를 상징적으로 드러내준다.
지난 90년 1123개였던 신발업체 수는 2000년에 894개로 줄어들었다.
90년에 35억 달러였던 수출액은 2000년에 4억8천만 달러로 주저앉았다.
더이상 중국, 동남아 업체들과의 가격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던 탓이다.


부산시 당국이 지역을 크게 동부산권, 중부산권, 서부산권으로 나누어 각각의 특성에 맞는 중장기 발전전략을 채택한 것도 이처럼 침체된 부산지역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한 시도에서 비롯했다.
현재 부산시는 ‘아시아태평양 비즈니스 중심의 국제 거점도시’로 탈바꿈하겠다는 중장기 비전을 수립하고 산업구조의 재편과 인프라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우선 해운대, 기장 등 전통적인 관광휴양지역인 동부산권은 문화관광위락단지로 개발될 예정이다.
영상산업과 컨벤션 산업 등 새롭게 떠오르는 산업 기반이 이 지역에 집중적으로 건설되고 있는 중이다.
3만평 규모의 문현금융단지를 중심으로 금융기능을 떠맡게 될 중부산권에서도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다.
특히 부산시는 오는 2004년까지 국내 선물거래 기능을 이곳에 모두 집중시킨다는 목표 아래 관련 업체들간의 이해조정에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부산 지역경제의 미래는 서부산권에 달려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신평공단, 신호공단, 녹산공단 등 대규모 산업단지가 이곳에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되어 정부가 직접 개발에 나선 녹산공단은 최근 단지분양이 거의 마무리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녹산공단을 관리하는 한국산업단지공단 부산지사의 황석주 기업지원팀장은 “원자재 공동구매, 판로 공동개척 등이 용이해 조선기자재, 신발, 염색 등 같은 업종의 업체들을 중심으로 활기를 띠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움직임은 지역내 신규 창업 법인 수가 크게 증가하는 것과 맞물려 부산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어줄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관심을 끄는 게 서부산의 가덕도 신항만 건설사업이다.
현재 부산항의 컨테이너 물동량은 912만 TEU(20feet 컨테이너 기준)에 머물러 장차 급증하는 교역물량을 원활하게 소화해낼 수 없다.
김기영 경제기획담당관은 “신항만이 완공될 경우 물류비용이 급격히 싸지면서 녹산공단의 비중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평당 가격이 60만원선으로 상당히 높은데도 기업들이 앞다퉈 입주하는 것은 이를 잘 반영하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정부가 경부축에 집중된 국내 물류수송 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부산항·광양항을 동시 개발하기로 하고, 특히 부산신항 건설 사업에 예산을 집중 편성하고 있는 것도 부산시로서는 큰 이점을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부산지역 경제는 여전히 많은 과제를 안고 있는 게 사실이다.
예컨대 싱가포르, 홍콩 등 세계적인 항구도시의 경우 물류량이 부산항의 2배에 이를 뿐 아니라, 특히 순수한 수출입물량보다는 환적물량의 비중이 무척 높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에 반해 부산항은 환적물량의 비중이 극히 미약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항만정책과 김정곤 담당관이 지적하듯, “21세기 동북아시아의 항만 물류도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인프라 건설뿐 아니라 종합적인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시험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역경제의 발전전략과 관련하여 중앙정부와 권한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가의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총액예산제를 도입해 중앙정부는 지방자치단체별로 발전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한 후 예산총액만을 배정하는 데 머물러야 한다”는 지역 현장의 목소리는 자칫 중앙정부와 긴장관계를 몰고올 수도 있다.
부산시의 재정 자립도가 76%대에 머물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은 부산시의 행동반경을 좁혀놓는 게 분명해 보인다.


관련기사1. 부산항 육성 최대 쟁점, 항만공사 설립

부산항을 동북아시아의 중심항만으로 육성하는 계획과 관련하여 현재 가장 커다란 쟁점이 되고 있는 게 바로 ‘항만공사’(PA) 설립문제다.
항만공사 설립 논의가 불거진 배경은 항만을 국가에서 직접 관리, 운영하는 현재 시스템의 한계가 속속 드러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도 국가 주도의 항만관리 체제를 기업방식의 전문경영 체제로 바꿔 경쟁력을 높이는 게 대세로 자리잡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국가와 부산시가 각각 담당하고 있는 항정(港政)과 시정(市政)을 일원화해야만 조화로운 도시개발이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현재 부산시와 해양수산부는 항만공사 설립의 기본골격에는 합의한 상태다.
조직인사재정 등에서 자율성을 가진 항만공사를 설립해 항만관리를 맡기는 게 주요 골자다.
해양수산부 항만운영개선과 김성용 과장은 “관계부처간의 협의가 모두 끝나 지난 3월말 법제처에 법안심의를 의뢰했기 때문에 4월 중에 최종 정부안이 확정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새로 설립되는 항만공사의 의사결정기구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의 문제는 여전히 관련 당사자 사이에서 큰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부산시는 의결과정에 지방자치단체의 참여가 확실하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정부는 이같은 부산시의 입장에 난색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성용 과장은 “항만공사가 100% 정부 투자기관인만큼 ‘정부 투자기관 관리기본법’ 규정에 따라 비상임 이사의 2분의 1 수준 이내에서 부산시와 항만 이용자의 참여를 보장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와는 달리 부산시는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항만위원회(총 11인)를 구성해 중앙정부 4, 부산시 4, 항만이용자 3의 비율로 의결권을 나눠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부산시 항만정책과 김정곤 담당관은 “국가적 관점의 항만정책과 지방자치단체의 도시정책 사이에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의결권 구성에서도 지자체의 참여가 적극적으로 보장되는 방향으로 항만공사법이 조속히 제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2. 지역경제 확력소, 르노 삼성자동차

국내 중형차 판매시장에서 르노삼성자동차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부산지역 경제에 대한 파급효과도 점차 커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부산 생산공장의 조업률은 90%를 넘어섰다.
지난 95년 논란 끝에 탄생한 삼성자동차는 2000년 9월 르노삼성자동차로 재출범하면서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
재출범 이전인 99년도에 6772대를 기록했던 판매 대수는 2001년도에 7만755대를 기록할 만큼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별다른 대기업 기반이 없는 지역경제의 현실상 삼성자동차를 바라보는 지역여론이 매우 우호적이었던 점도 큰 몫을 했다.
현지의 한 택시운전사는 “지역 내 택시 가운데 40~50%는 모두 SM5”라며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에 큰 기대를 표시했다.


르노사의 인수 당시 1967명에 불과했던 현지 고용인력 역시 2002년 2월말 현재 약 4천명으로 늘어났고, 1, 2, 3차 협력업체가 모여 있는 신호지방공업단지에서는 약 3만명 정도의 고용 창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커뮤니케이션본부 천영환 차장은 “오는 2005년까지 연평균 2조2천억원의 생산유발 효과(부산지역 제조업의 12.6%)와 연평균 3만8천명의 고용 창출 효과(부산지역 경제활동 인구의 2.2%)가 생길 것”으로 전망했다.
회사측은 24만대 생산에 이를 때까지 현재의 2조1교대 생산방식을 유지하되, 손익분기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오는 2004년 이후에는 2기 공장을 건립해 현행 1조 생산방식에서 2조 혹은 3조의 2교대 생산방식으로 전환할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천영환 차장은 “2교대를 할 경우 최소한 30% 이상의 지역내 고용 창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럼에도 우수한 산업인력을 적기에 확보하는 방안은 여전히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회사측은 직업훈련생 모집 등을 통해 추가고용에 대비한 인력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자동차 관련대학과 특성화고교에 대한 지원 등 지자체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주거단지 건설과 도로망 확충사업 등이 함께 보조를 맞춰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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