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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지역경제 현장을 가다 14회-대구
[기획] 지역경제 현장을 가다 14회-대구
  • 김호준 기자
  • 승인 2002.04.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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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는 IMF 이후 경제회복이 가장 더딘 지역으로 꼽힌다.
1995년 산업생산을 100으로 할 때 지난해 대구의 산업생산지수는 87.7에 지나지 않았다.
전국 평균은 156.7이고, 이웃 경북은 192.5다.
대구상공회의소 임경호 기획조사 부장은 “99년부터 우리나라 경기가 회복되기 시작했지만 그것은 반도체 등 정보기술(IT)과 자동차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며 “대구지역의 경제회복이 느렸던 것은 대구의 주력산업인 섬유가 뚜렷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섬유산업은 대구 제조업 종사자의 41.3%, 부가가치 생산의 35.4%, 수출의 69.7%를 차지한다.
섬유산업이 대구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섬유업계 불황이 대구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대구 섬유업은 올해 1월을 제외하고 20개월 연속 두자릿수 감소율을 기록했을 정도로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다.
수출은 대구세관 통관실적 기준으로 95년 48억8200만달러에서 2000년 33억7200만달러로 줄었고, 2001년에는 22억9200만달러에 그쳤다.
대구 섬유산업은 부가가치가 낮은 제직, 염색 업종에 치중돼 있으며, 저가 제품을 중심의 소품종 대량생산 방식에 머물고 있다.
때문에 90년대 중반부터 거세진 중국, 인도네시아, 대만 등 후발 주자들의 도전을 극복하지 못하고 위기에 봉착해 있다.
96년부터 2001년까지 30~40%의 기업이 도산했을 정도로 대구 섬유기업들은 중병을 앓고 있다.
밀라노 프로젝트는 대구 섬유산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을 재탄생시키기 위한 사업으로 99년 3월에 시작됐다.
밀라노 프로젝트는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의 대구지역 섬유산업 구조를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로 바꾸고 원사, 제직, 염색 등 가공공정을 패션, 디자인과 함께 묶어 대구를 세계적인 섬유산업 단지로 육성하기 위한 사업이다.
대구시는 “이탈리아 밀라노도 60년대 말에서는 프랑스, 영국, 독일 등에 주문자상표 부착생산(OEM)의 하청생산 기지에 불과했지만, 70년대 과감한 구조조정을 실행해 15년 만에 원단은 독일을 능하고 패션, 디자인 분야에는 20년 만에 파리를 추월하는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든 바 있다”고 선전한다.
이 사업에는 품질 고급화, 패션디자인산업 활성화, 기술개발과 생산성 향상 등 4개 분야 17개 사업에 총 6800억원이 투입된다.
개별 업체 지원보다는 산업 인프라 구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금까지 신제품개발센터, 섬유종합전시장, 염색디자인실용화센터, 패션디자인개발지원센터 등을 설치해 지역 섬유산업의 구조고도화를 위한 기반을 조성했다.
또 한국섬유개발연구원과 염색기술연구소 연구지원 사업 등 기술지도와 신소재와 제품 개발에도 많은 예산을 투입했다.
대구시는 2002년 3월 현재 4538억원을 투입해 66% 종합진도를 기록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섬유업계에서는 사업의 성과에 대해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대구 섬유산업이 여전히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 성서공단내 Y산업 우아무개 전무는 “시에서는 밀라노 프로젝트가 원활히 추진되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혜택받은 것이 하나도 없다”며 “오히려 밀라노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후 섬유업계 불황은 더 심해졌다”고 불평한다.
산자부가 98년 9월에 확정한 ‘대구지역 섬유산업 육성방안’에 따르면 밀라노 프로젝트가 완료되는 2003년에는 선진국 대비 90%의 품질과 80%의 패션 디자인 수준을 갖춘 국제 섬유도시로 발돋움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패션, 디자인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고 있고 기술개발도 부진한 편이다.
특히 2003년까지 대구 지역 섬유수출 실적이 2003년까지 100억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는 2001년 대구지역 섬유수출의 4배가 넘는 목표치다.
지역 경제전문가들은 밀라노 프로젝트가 대구시 주도로 추진되면서 기업활동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경산대 권기대 교수는 “그동안 밀라노 프로젝트는 하드웨어 중심으로 투자가 이루어졌다”며 “대구시에서는 건물을 짓고, 장비를 들여온 것을 실적으로 내세우지만 기업들의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는 데는 별다른 기여를 못했다”고 지적한다.
권 교수는 지역 섬유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신제품 개발능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2000년 11월에 설치된 신제품 개발센터는 지금까지 신소재와 제품 개발에 754건, 기술지도 638건 등의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섬유개발연구원 관계자는 이중 실질적으로 신제품 출시와 연결된 것은 1~2%에 불과하다고 꼬집는다.
대구시는 아직 눈에 보이는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대구광역시 섬유진흥과 조주현 과장은 “밀라노 프로젝트는 개별기업에서 단기적인 자금 지원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섬유산업의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산업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며 “기업 입장에서 당장 해택이 없다고 불평하는 것은 밀라노 프로젝트에 대한 오해 때문”이라고 말한다.
조주현 과장은 생산량이 줄어드는 것도 산업구조 고도화 과정에서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덧붙인다.
성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성과는 3월 중순에 개최된 대구 국제섬유박람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것이다.
이번 박람회에는 210개 섬유업체, 해외 바이어 4121명 등 2만여명이 참가해 40억달러의 상담 실적을 기록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지난해 서울 국제섬유박람회에서는 19억달러 상담에 5억달러의 계약실적을 올렸다”며 “이번 대구 박람회에서는 7억달러 가량의 계약실적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한국섬유개발원 관계자는 “수주 계약 성과보다는 기업들이 자기 상품으로 전시회에 참가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 대구 섬유업체들은 자기 제품을 전시회에 가지고 나오는 것을 기피했다”며 “기업들이 독자적으로 제품을 개발하는 것보다는 다른 회사 제품을 복사하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산대 권기대 교수도 “밀라노 프로젝트의 최대 성과는 기업들에 인식의 전환을 가져다준 것”이라며 “기업들이 제품을 적당히 복사해 대량생산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신소재와 제품 개발, 마케팅 등 기업 핵심역량을 키우는 데 이전보다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고 밝힌다.
신제품 출시 주기도 짧아졌다.
한국섬유개발원 관계자는 “과거에서는 제품 1개 가지고 1년을 먹고살았지만, 지금은 2~3개월이 지나면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으로 변화하는 추세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대구시 섬유진흥과 조주현 과장은 “밀라노 프로젝트의 목표 달성은 5년간의 단기투자로는 불가능하며 최소한 15년 내지 20년의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다.
대구지역 2171개 섬유업체 가운데 OEM 방식의 하청기업이 60~70%를 차지하고 있다.
기업내 연구실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 7~8곳에 불과하다.
또 부가가치가 낮은 원사, 제직, 염색관련 업체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부가가치가 높은 봉제, 패션관련 업체는 12%에 불과하다.
조 과장은 “하루아침에 저부가가치 섬유 산업구조를 고부가가치쪽으로 뜯어고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대구시는 내년 말에 끝나는 밀라노 프로젝트의 다음 단계로 ‘포스트 밀라노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대구시는 연말까지 산자부에 건의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조 과장은 “지금까지 밀라노 프로젝트가 하드웨어 투자에 집중했다면 포스트 밀라노 프로젝트는 이미 구축된 인프라를 이용해 기획기능, 핵심기술 확보, 인력양성 등 소프트웨어 중심 사업이 될 것”이라고 밝힌다.
또 대구시는 동구 봉무동 일대에 30만평 규모로 봉제, 패션, 다지인 등 부가가가치가 높은 산업을 특화한 단지인 ‘패션, 어패럴 밸리’를 조성할 계획이다.
총사업비가 3천억원이 넘는 패션, 어패럴 밸리 조성은 지역 섬유산업을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고급의류 산업과 연계시키기 위한 사업이다.
가장 덩치가 큰 사업인만큼 논란도 많다.
경산대 권기대 교수는 “아직 제직, 염색 부문에서도 충분한 기술 혁신을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고급 의류 생산기반을 확보하는 것은 순서가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한국섬유개발원 관계자도 “패션, 어패럴 밸리는 대구지역 산업 기반을 도외시하고 새로운 산업을 심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반대의사를 밝힌다.
대구에서는 섬유를 사양산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동안 섬유산업에만 목을 매서 메카트로닉스, 바이오 산업 등 첨단산업 육성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대부분 지역 전문가들은 밀라노 프로젝트를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섬유는 대구의 전통 주력산업이기 때문이다.
권기대 교수는 “과거처럼 지역에서 특정 산업을 집중 육성하는 것은 어렵다”며 “섬유산업 고도화는 대구경제에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말한다.
세계 10대 섬유수출국 가운데 7개국이 선진국이다.
이들이 우리나라보다 앞선 것은 섬유산업을 독창적인 패션산업이나 정밀화학 기계산업과 연계함으로써 부가가치를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대구상공회의소 임경호 부장은 “섬유의 생산량이 줄고 있다고 사양산업이라고 부르는 것을 옳지 않다”며 “섬유도 기술개발과 기업혁신을 통해 얼마든지 첨단산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관련기사2. 시장이 발벗고 삼성에 '러브콜' 대구에는 거래소, 코스닥을 합해 상장사가 10곳이 안 된다.
300인 미만 중소기업 종사자 비중은 88%로 7대 도시 평균(77.3%)보다 높고, 서울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수준이다.
상공회의소 임경호 부장은 “IMF 이후 경기회복이 대기업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며 “대구에는 대기업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시민들 가운데는 청구, 우방, 갑을 등 섬유, 건설 분야 토착 대기업들이 힘을 잃으면서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던 중 삼성그룹의 삼성상용차 퇴출 결정은 대구시민의 상실감을 더욱 깊게 했다.
한때 삼성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을 정도다.
대구 문희갑 시장은 4월2일 삼성 이건희 회장이 만나 대구지역에 투자해줄 것을 요청했다.
문 시장은 삼성상용차 퇴출에 따른 지역 여론을 설명하고 대체투자 방안으로 차세대 디스플레이 등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연관 산업단지의 조성과 첨단산업분야 연구소 설립을 제의했다.
대구시는 이건희 삼성 회장도 삼성과 관련된 대구지역의 민원을 직접 해결하겠다는 방침을 전달했다고 전한다.
대구시 관계자는 “이 회장은 대구시의 달라진 투자여건을 감안해 그룹내 팀을 현지에 보내서 삼성상용차 부지에 대한 대체투자, 협력업체 피해 보상, 삼성 전용야구장 건립 등을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삼성 구조조정본부 정원조 상무는 “이 회장의 답변은 검토해보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일 뿐”이라며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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